서울의 오월은 빨간 장미들이 한창 뽐을 내는 계절입니다. 공원가나 골목길을 거니를 때면 어디에나 영락없이 담 밖으로 한껏 목을 내밀고 기다렸다는 듯이 길손을 반겨주는 넝쿨장미들의 유혹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방글방글 꽃잎을 피우며 빵긋빵긋 웃는 모습에 눈길이 사로잡히노라면 생각지 않던 감동과 사색이 몰려옵니다.
벚꽃나무, 철죽나무, 진달래…이른 봄을 알리는 봄꽃들이 한자취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 무렵, 서울의 들녘에는 온통 흰 눈꽃과도 같은, 아니 소복소복 가득담은 입쌀밥 그릇 같은 이팝나무 꽃들과 노오란 좁쌀을 중간에 살짝 섞은 조기밥그릇 같은 조팝나무 꽃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깊어가는 초여름의 짙은 녹음 속에서 하얀 별천지를 이루는 경관 중, 모닥모닥 피어나는 빨간 장미들의 요염하게 튀는 얼굴들이 선을 보일 때쯤 되면 봄날이라는 아름다운 한폭 유화의 마지막 완성품이 됩니다. 마치 다 그려진 물고기에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 넣어 살아난 눈부신 생명체를 발견하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아마 장미는 오월의 여왕으로 불리는 가 봅니다.
겹겹이 피어나는 장미 꽃송이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 순간 그 송이 송이들은 하나의 이름 모를 얼굴로 떠오릅니다. 그 얼굴 속에서 나는 잔잔한 숨결을 느끼고 그 속에 묻혀있는 희로애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슬을 머금은 아침 장미도 약동하는 생명의 구술 빛으로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슬픈 눈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숨겨놓고 있는 가시도 가끔은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여인의 신선한 매력으로 보이고 가끔은 또 옛날 춘향이 같이 절개와 자존을 지키는 수호천사와도 같은 아름다움으로 보이며 어떤 때는 독을 품은 여자의 한으로 보입니다.
내가 갓 한국에 왔던 한 20여년 전 일이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포들의 합법체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여서 중국에서 남 부럽지 않은 공직으로 일 하던 많은 친구들 까지도 생전 해보지 않던, 3D 업종에서 숨어서 일을 할 때였습니다.
그해도 넝쿨장미들은 봄을 맞아 어김없이 무덕무덕 피어나며 울바자 밖으로 빠끔빠끔 얼굴들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미꽃 얼굴을 보는 내 마음은 한없이 우울 했습니다.
어쩐지 울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장미의 모습은 울안에 갇혀 숨어서 일하는 우리의 얼굴 같았고 생계를 위하여 한국 늙은이에게 시집 온 고향 아줌마 고향 아가씨들 같다는 생각이 울컥하고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혹은 사랑하던 고향 머슴애를 버리고 한국 땅에 들어온 그녀들의 슬픈 영혼이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숨 막히는 담 벽 안이 싫어서, 그리운 고향 모습을 찾아 저렇게 매일매일 담 밖으로 한 많은 얼굴을 내밀고 뻗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얼굴을 다독여 주려 했습니다. 따끔하고 벌침에 쏘인 듯 손끝이 아팠습니다. 금방 빨간 피가 맺히더군요. 그때 나는 장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슬픈 얼굴엔 숨길 수 없는 독과 한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아아, 내가 가시장미의 아픈 상처를 건드렸구나!…”
나는 물 젖은 마음으로 장미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오늘 나는 또 넝쿨넝쿨 담 밖으로 뻗어 나오는 오월의 장미꽃 울바자 길을 산책하고 있습니다. 마침 5월 14일 로즈데이 날이군요. 로즈데이는 미국에서 꽃가계를 하던 청년이 자신의 연인에게 가계의 장미를 모두 바치며 사랑을 고백한 날이랍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들은 장미꽃을 선물하는 유래가 되었다는 군요. 열렬한 사랑의 빨간 장미, 첫 사랑의 주황 장미, 순결의 하얀 장미, 질투의 노란 장미…제가끔의 사연과 의미가 있다네요.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군요. 브러커에게 거액의 돈을 들여서 한국에 와서도 숨어서 일한다는 사연도, 돈 없는 동포 여자들이 혼인이라는 비극적인 절차를 밟아 한국 땅에 정착했다는 얘기도 이제는 모두 옛말이 되었습니다. 체류가 합법화된 고국의 땅에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동포여성들의 별빛 같은 얘기들은 무시로 우리의 가슴을 흥분 시킵니다. 그들은 자유로이 고향과 고국을 넘나들면서 금융계에서 상업계에서 학계에서 언론계에서 지어는 정계에서까지 능력과 활약을 돋보이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빌라를 사고 상가를 운영하며 축적된 부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며 대통령상까지 탄 여걸들도 있습니다. 특히 끊임없이 고국에 유학을 오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 분발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새로운 전망을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아이러니 한 것은 이제는 적지않은 고국의 젊은 남자들이 우리 멋진 동포 아가씨, 아줌마들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사색에 묻혀 장미꽃이 흐느러진 울바자 밖 길을 걷노라니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장미꽃 향이 물씬 가슴에 안겨 옵니다. 그 향은 저 멀리 서있는 아카시아나무와 라이락 꽃나무의 향과 어울려 정말 환상적입니다.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붉게 타고 있는 장미꽃송이를 들여다봅니다. 요염하고 화려하고 콧대가 잔뜩 높아 보입니다. 그 속의 가시를 한번 건드려 볼가요? 아니요, 자존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아픔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그 싱거러운 향기의 유혹을 물리치긴 쉽지 않네요.
빨간 장미는 열정 욕망 기쁨 아름다움의 상징이랍니다. 나는 지금 그 열정 욕망 기쁨 아름다움을 그 얼굴에서 분명 보아냈습니다. 그것을 수호하기 위한 숨어있는 가시의 깊은 뜻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도 아직 저런 열정 욕망 기쁨 아름다움이 남아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으며 꿈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을 새우며
타자를 하며 사색에 사색을 멈추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실패를 거듭할 때가 많지요. 그러나 이튿날이면 그 욕망은 다시 살아납니다.
어느 날, 자그마한 성과를 이루었을 때 그 찰나의 기쁨과 환희는 나를 미치게 하며 그 누군가에게 왕창 사랑을 주고 싶어집니다. 물론 나에게도 빨간 장미의 열렬한 사랑도 있지만 노랑장미와 같은 질투도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 하기도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창피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내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자나요.
그렇지만 이 노숙한 가슴에도 흰 장미와 같은 순수성과 천진성이 있답니다. 세상천지를 모르는 소녀같이 깔깔 거리곤 하지요. 그래서 자신에게 아직도 미래를 가진 동심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이 모든 속성 사색 갈망들은 분명 내 얼굴에 다 쓰여 있을 겁니다. 장미의 얼굴만큼 아름답진 못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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