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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류영자
2023년 03월 07일 11시 17분  조회:91  추천:0  작성자: 연변조선족녀성발전촉진회



우리 어머니


류영자

 

“밥 빨리 줘.”

어머니가 자꾸 재촉한다.

주방에서 팽이처럼 돌아치던 나는 

“알았어, 알았어. 좀만 기다려요.”라고 연신 대답하면서도 어머니 점심끼니까지 미리 준비해놓느라 하던 일을 멈추지 못한다. 

서둘러 과일을 깎으면서 어머니 쪽을 훔쳐보았다. 기다리다 못해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식탁을 가볍게 두드리며 초조한 눈길로 주방 쪽을 보고 있다. 

 

매일 아침, 어머니가 나한테 건네는 첫마디가 밥을 달라는 것이다. 내가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는 아침시간이면 90세 고령의 어머니는 어김없이 칭얼거리며 밥재촉을 한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내가 하는 일이 탐탁치 않은듯 잔소리가 많던 어머니가 언제부터인가 아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음식 투정도 하고 영양제를 무져놓고도 약 사오라고 생떼를 부린다. 귀도 점점 멀어져서 명령조로 높고 짧게 말해야만 그나마 알아듣는다. 어머니는 기억력도 쇠퇴해지고 점점 고집스러워진다. 

이런 어머니를 모시는 일은 직장인인 나로서는 버겁고 힘들다. 그러나 지금까지 입원치료 한번 안하고 이 딸의 이름을 똑똑하게 기억해주는 어머니가 옆에 있어서 나는 비록 몸은 피곤하나 마음속으로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운신이 힘든 어머니는 바깥출입이 거의 없다. 하여 주말에 어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를 하고 목욕을 시키고 맛집에 찾아가 어머니가 반기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나의 주말계획중에서 첫째 가는 일정으로 되였다. 어머니가 이젠 귀도 많이 어두워져서 예전처럼 내 얘기를 잘 들어줄 순 없어도 그냥 나를 쳐다보며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마냥 즐겁다.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 삼아 외식하는 주말의 어느 날, 

11시 쯤 되여 나는 마치 어린아이를 유치원에 데려가듯 어머니한테 옷 입히고 신발 신겨서 자가용차에 태웠다. 어머니가 반기는 우육면 먹으러 가려고 핸들을 잡았다. 

가는 내내 어머니는 차창 밖으로 거리를 구경하며 무척이나 기뻐하였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피크타임이라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는 벽 쪽 모퉁이 조용한 곳에 앉았다. 

음식이 올라오자 어머니는 냉큼 닭다리 하나를 쥐더니 드시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치아로 련속 닭다리 두개를 뜯고 나니 어머니의 손이고 얼굴이고 앞치마까지 기름범벅이 되였다. 어머니는 기름진 손으로 우육면에서 소고기를 집어 나의 접시에 갖다 놓으려 하였다. 그러다 그만 떨구는 바람에 국물이 나의 옷에까지 마구 튀여 말이 아니였다. 

외식할 때면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다. 어머니는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나의 눈치를 본다. 

이렇게 어머니의 약한 모습을 볼 때마다 한때는 남정네들 못지 않게 농촌에서 억세다고 소문 났던 우리 어머니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어 코등이 시큰해난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린근 향진에까지 이름이 날 정도로 손꼽히는 담배재배기술원이였다. 전 향 몇십명 되는 담배재배기술원중에 유일한 녀성이였던 어머니는 남성들 못지 않은 뚝심과 끈기로 담배농사를 지었다. 봄 모종부터 시작해서 입담배 건조까지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아 해마다 전 향에서 담배농사수입 일등이란 계관을 안아오군 하였다. 

아버지가 대대당지부 서기직을 맡고 일하다가 동란시기 심한 박해를 받고 중한 페질환 환자로 집에 누워있었기에 아버지 병시중이며 집 안팎 모든 일은 오로지 어머니 혼자 감당해야 했다. 

심지어 어머니는 웬만한 남정네들도 혀를 두른다는 발구로 나무를 나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 다니는 두 언니를 데리고 직접 나무를 하면서 억척스레 살아왔다. 그래서 내 인상 속의 어머니는 그 어떤 곤난에도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강인한 성격의 녀성이고 내가 제일 자부하는 훌륭한어머니였다.

 

집에서나 바깥에서나 억척스레 일해오던 어머니가 지금은 사고만 치는 어린아이로 변하다니...

착잡한 심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는 동안 어머니는 밥상 우가 범벅이 되든 말든 우육면만 드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화도 나지만 그래도  90고령의 어머니가 9살 되는 개구쟁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워보인다.

 

“천천히 잡숴, 체하겠수.” 

나는 웃으면서 휴지를 뽑아쥐고 어머니의 입이며 손이며 그리고 음식물이 떨어진 식탁 우를 깨끗이 닦았다. 

행여나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볼가봐 주위를 살피던 순간, 건너편 문어구에 앉은 회색 코트에 안경을 건 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흰머리를 정연하게 빗어 올린 그 할머니는 우리 옆집에 살던 교수할머니를 떠오르게 했다. 

 

교수할머니는 어렵게 오누이를 키웠는데 자식들 모두 공부를 출중하게 잘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을 졸업하였다. 아들은 미국류학을 갔다가 그 곳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딸은 상해 모 대기업 대표직에 있어 돈을 엄청 잘 번다고 들었다. 평소에 자식들이 자주 련락을 해온다고는 하나 설명절 때에 교수할머니가 늘 혼자서 쓸쓸히 보내는 모습이 많이 외로워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상해서 딸이 불시로 찾아왔다. 딸은 부랴부랴 많은 책과 짐들을 처리하고 교수할머니를 양로원에 모셔가는 것이였다. 

자그마한 트렁크를 들고 우리 집문을 두드리며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교수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보금자리를 떠나 자식 뜻에 따르는 그 할머니의 애절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교수할머니생각을 하다 말고 다시 고개를 쳐들다가 맞은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 할머니는 얼른 눈길을 돌려 내 눈을 피했다. 저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발끝을 내려다보는 것이였다. 

홀로 식당에 와서 점잖게 식사를 하면서 우리를 부럽게 바라보는 그 할머니의 정겨운 눈길이 점심식사 내내 나의 눈에 밟혀 마음을 아리게 했다. 남의 일이지만 남의 일 같지 않은 고독한 그 할머니를 보면서 참으로 안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나의 휴대폰이 울리더니 외지에서 사업하는 딸애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뭐하세요?”

“응, 할머니하고 밖에서 우육면 먹는다.”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어머니를 애 먹이지 않아요?”

“내가 사준 화장품 어때요?”

“요즈음 비타민은 꼬박꼬박 잡숫고 있어요?”

딸애가 련주포 같은 물음을 쏟아낸다. 나는 기분 좋게 딸애의 아양을 다 받아주었다. 

딸애는 “어머니, 오늘 점심값은 제가 보낼게요. 할머니하고 맛 있는 것 많이 드세요.”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이렇듯 늘 다정다감한 딸이다. 외지에서 제 사업하랴 바쁠 텐데 틈틈이 시간을 내서 전화로 곧잘 안부를 묻군 한다. 가끔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할머니 몫부터 시작하여 온 집 식구들의 선물을 가득 들고 와 어른들을 즐겁게 해준다.

이런 딸을 보고 직장동료며 친구들이 훌륭한 딸을 두었다고 엄지를 내민다. 아들 둘을 가진 둘째언니는 내가 효녀를 두어서 로년에 복 받을 거라며 부러워한다. 

정말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딸은 우리에게 지극정성이다. 남들 말대로 하면 나는 앞으로 어머니가 생활해온 것처럼 딸집에 가서 딸의 효성을 받으면서 만년을 근심걱정없이 행복하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딸이 아무리 심청같은 효심을 가진 효녀라 해도 나는 딸한테 기대지 않고 사회를 위하여 유익한 일도 많이 하면서 만년의 생활을 펼쳐나갈 로후계획을 하고 있다.

 

머지않아 나도 어머니처럼 천천히 늙어가고 쇠잔해지며 주름투성이로 변해가겠지만 어머니처럼 세월의 등에 엎혀 세월따라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의 손목을 잡고 세월 앞에서 세월을 주름잡으며 세월과 더불어 건강하고 생기가득하고 세상에 기여하는 존재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엮어나갈 것이다. 여러가지 취미생활로 자기성찰을 부단히 하면서  어느 류행가 가사처럼 “늙어가는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나의 모습을 흐르는 세월과 함께 즐기면서 지켜볼 것이다.

만약 인생의 끝머리에 서게 되면 사회와 자식들한테 부담 끼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로후 생활방식을 고안해 사회와 함께 즐기고 행복을 만끽할수 있는 멋지고 참신한 노후생활방식을 창조해나갈 것이다. 정말 혼자 상상만해도 입가에 느슨한 미소가 피여나는 스스로 설계한 로후생활계획이다.

 

“띵동” 하고 위챗으로 딸애의 문자가 날아왔다. 살짝 떨리는 손끝으로 딸이 보낸 붉은 봉투를  찍었다. 200원이라는 수자가 방긋 웃으며 사랑과 정이 넘치는듯 했다. 

“집 가자.” 

우육면 한그릇 굽을 낸 어머니가 집에 가자고 재촉하신다.

“알았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딸이 보내준 돈으로 밥값을 계산하고 만족스러워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따뜻한 이슬이 맺힌다.

어머니를 부축하여 조심조심 식당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금방 눈이 마주쳤던 할머니가 앉았던 밥상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언제 떠나갔는지 없고 할머니가 잡숫다 만 국수 사발만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마치 할머니의 서글펐던 심정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사발에서는 모락모락 가느다란 김이 피여오르고있었다. 

점점 식어가는 국수 사발을 보면서 나는 보다 많은  사회의 외로운 로인들이 사회와 가족들의 중시를 받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며 만년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당문을 나섰다.

 

식당문을 나서면서 나는 어머니의 손을 더욱 으스러지게 잡았다. 어린애가 되여버린 어머니가 나에게서 떨어질세라…

 

 《연변녀성》 2020년 1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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