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piaomingshan 블로그홈 | 로그인
박명선

※ 댓글

  •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소설

(단편)달려라 자전거
2019년 09월 14일 12시 26분  조회:1022  추천:0  작성자: 살구나무

<장백산>20193월호

 

 

단편소설

 

 

 

달려라 자전거

 

 

박명선

 

 

 

1.

 

 

방안에 켜놓은 텔레비죤에서 12시뉴스를 이어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오후 관동지방에 또다시 큰비가 내리겠습니다.각 지역의 예상 강우량은...”

요즘 들어 비가 자주 내리고 있었다.장마철에 들어선 것이다.

주방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나는 방에 뛰여들어가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먹장구름이 폭격기 편대처럼 머리 우로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지금 당장이라도 큰비를 퍼 기세였다.

베란다 줄줄이 내놓던 동네집 화분들은 자취를 감추고 사람 사는 정취를 느끼게 하던 빨래건조대들에도 양말 한짝 널려있지 않았다.대신 오늘은 첩첩이 둘러쌓인 지붕들과 물기를 촉촉히 머금은 서쪽 큰길이 훤히 내다보였다.

큰길 건너편 자전거방 옆에 있는 남새점에서 장화를 신은 다까하시가 트럭 안의 상자들을 부리우고 있었다.

한주일  토요일 오후였다.오랜만에 상준이와 같이 외식을 하고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던 서쪽 큰길로 집에 오다가 우연히 남새점에 들리게 되였다.상준이가 햇감자로 장국을 끓여먹으면 맛있겠다며 감자 몇개를 골라 들고 계산대로 갔다.

"이렇게 난전을 벌려놓은 남새점이 코앞에 있은 걸 몰랐구나."

"그래 말이다."

슈퍼와는 달리 간소한 남새점에서는 남새들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팔고 있었다.그렇다고 흙먼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 류학생들인가유?"

나와 상준이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 70세 좌우로 보이는 주인장이 상냥한 어조로 묻기에 나는 중국에서,상준이는 한국에서 왔다고 각자 대답했다.그러자 주인장이 환한 미소를 띄우더니 나에게 다시 물었다.

"중국 어디서 왔수?언제 일본에 왔수?"

"동북에서 왔습니다.작년 가을에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에 온 지 반년이 되는군.동북에서?그럼 만주에서 왔군.혹시 봉천인가유?"

만주와 봉천이라는 주인장의 말이 귀에 거슬리게 들려왔다.

"봉천을 알아요?봉천은 심양입니다."

나는 일부러 심양이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했다

"그렇지유.아,지금 1994년이니 50년이 거의 되는군.오랜만에 다시 중국인을 만나는구려.허허."

나는 의아한 눈길로 주인장을 스캔해보았다.키는 크지 않아도 쩍 벌어진 어깨며 굵직한 팔뚝을 봐선 젊었을 때 유도라도 한 것 같았다.

"나 스무살에 락하산병으로 봉천에 갔수다."

뭐라?락하산병?그럼 옛 일본군이 아닌가?!

순간,일본군에 대한 분노가 용광로처럼 끓어번지며 온몸의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쳐올랐다.저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여졌다.

 일본군을 여기서 만나다니?

헌데  령감쟁이가 중국인 앞에서 락하산병이였다고 스스럼없이 지껄대고 있지 않는가!

"중국에 몇년 있었어요?"

상준이가 옆에서 묻는 바람에 나는 중국인을 만나니 어떤가고 목구멍에서 나오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말았다.

"내가 중국에 가서 얼마 안돼 전쟁이 끝났으니 두달도 되나마나하지우.난 전쟁터엔 나가보지도 못했수다.저,여보.여기 귀한 손님들이 왔소."

령감쟁이가 집안에 대고 소리를 지르자 "하이!"하는 대답과 함께 약삭르게 생긴 녀인이 네댓살 어린애처럼 쫑드르르 달려나왔다.

"마누라인데 같은 부대에 있었수다.간호원으로 몇년간 조선에 있다가 봉천에 들어왔수다.이 두분은 중국과 한국서 온 류학생들이요."

"다까하시예요.만나서 반가워요."

령감쟁이의 녀편네가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해사한 웃음을 머금고 허리를 굽혀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일본군 락하산병과 간호원이라?

나는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그만 남새점을 뛰쳐나오려고 했다.

"잠간만!"

령감쟁이가 나와 상준이를 불러세우더니 하얀 비닐주머니에 오이와 도마도를 넣어서 상준의 손에 쥐여주었다.

"보잘 것 없지만 가져다 맛이나 보시우.아침에 터밭에서 따온 것이라 신선할 거우다.난 다까하시라 하우."

"전 오라 합니다.이쪽은 박이구요."

"박?박상은 고향이 어디우?지금 어디서 사우?"

나는 고향이 어딘가는 물음에는 못들은  맞은켠 골목을 턱질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저기 2층 아파트입니다."

어느 학교이고 지금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는가는 물음에 상준이가 고분고분 대답하자 다까하시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생들 하는구만.언제 시간 되면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천천히 얘기를 나눕세다."

다까하시 내외가 큰길까지 우리를 바래주었다.집 골목에 들어서자 나는 상준이를 흘겨보았다.

"일본군한테서 까짓 남새를 다 받아가지고 너 참..."

"일본군이라 해도 전쟁터엔 나가보지도 못했다잖아."

"전쟁터에 나갔더라면 저 놈도 아마..."

토요일이여서인지 아니면 을씨년스러운 날씨때문이여서인지 큰길에는 자동차 몇대가 지나갈  행인들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이윽하여 자전거방 주인이 다까하시한테로 다가가 웃으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지금 자전거방에 가보자!

큰길에  시선을 주고 있던 나는 부랴부랴 나갈 차비를 했다.

전번주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에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해놓았다.집에서 가까운 전철역에서 한 정거장을 지나 신작로 건너편에 위치한 미네제조공장인데 지난 일요일 밤에는 잔업을 하다나니 전차가 끊겨 반장이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는 해프닝이 있었다.그래서 오늘 저녁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공장에 가려고 어제 점심 자전거방에서 중고자전거 한대를 샀던 것이다.

자전거방에서 뭔가를 물어보는  하자.그러면 다까하시가 나한테로 다가와 먼저 말을 건넬 것이다.

어제는 남새점에 사람들도 별로 드나들지 않았고 다까하시도 어디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다까하시를 만난 지도 한주일이 지났다.

나는 층계를 내려와 마당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대문 밖으로 밀고 나갔다.

문득 이전에 중국에서 자전거를 처음 샀을  멀지 않은 변소에 가면서도 자전거를 탔던 생각이 떠올라 피씩 웃음이 나왔다

,일본군 적진을 향해 돌격!

 

 

 

2.

 

 

다까하시는 보이지 않고 트럭만 길옆에 세워져있었다.

"자전거에 고장이라도 생겼어요?"

가느다란 체격에 도수 높은 근시안경을  50대 자전거방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웃으며 물었다.

"아닙니다.지나가다가 들렸습니다."

어제는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보았다.중고자전거였지만 외관도 보기 좋았고 브레이크 성능도 좋았다.손전등처럼 깜찍한 전조등도 장치되여있고 변속기능도 있어 어두운 밤길과 가파른 길에서도 힘들지 않았다.평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이 40분 정도 걸렸지만 전차에 앉아 언뜰언뜰 스쳐지나가는 바깥풍경을 묵묵히 지켜보기보다는 비가 내려 한결 시원해보이는 밤거리를 흥미롭게 드라이브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나는 다까하시물산이라고 차문에 파란 페인트칠을  트럭을 건너다보며 주인에게 물었다.

"전번에 이 가게에서 남새를 산 적이 있습니다.남새가 신선하더군요.저 트럭은 남새점에 남새를 날라다주는 차인가 봅니다."

"주인할아버지가 농촌에서 남새를 실어오는 차입니다.이전엔 물산점을 차렸는데 몇년 전부터 요꼬하마 시내 여러 슈퍼에 남새를 제공합니다."

"그런가요?그 할아버지 아주 건강해보이더군요."

"군인출신이니 그렇겠지요."

"군인이였어요?"

"네."

갑자기 우르릉  하고 하늘에서 우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굵은 비줄기가 장대처럼 쏟아져내렸다.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시까지는 아직 네시간이나 남아있었다.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때 비가 그치면 좋으련만 비가 계속 내리면 어떻게 할가?

나는 그만 주인에게 인사하고 돌아섰다.비옷모자를 올려쓰고 남새점을 지나며 자전거에 오르려는데 밖으로 나오는 다까하시와 면바로 눈길이 마주쳤.

"박상,오랜만이네.허허.비 오는데 웬 일로 여기를 지나우?"

마침 나의 생각대로 다까하시가 먼저 말을 건네왔다.

"어제 산 자전거에 대해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자전거 타구 학교 다니려구?국대(요꼬하마국립대학)까지 가자면 여기서 멀겠는데...헌데 오늘은 혼자 왔수?오상은?"

기억력도 좋은 령감쟁이였다.

"아버지가 편찮아서 그저께 한국에 갔습니다."

수요일 오전 상준이는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요꼬하마입국관리국에 가서 재입국수속을 하고 이튿날 오전 비행기로 한국에 갔다.

"지금 시간 괜찮은거유?"

"저녁 다섯시에 일하러 가니깐 시간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그럼 여기 들어오시구려.로친이 아까 도꾜에 살고 있는 딸집에 놀러 가고 지금 나 혼자 있수다."

"그럼 잠간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다까하시를 따라 가게에 들어섰다.

"여기라도 괜찮습니다."

남새상자들 옆에 걸상 두개가 놓여있었다.

"그럼 변변찮지만 거기라도 앉으시우."

내가 앉은 자리에서 집안  구석이 들여다보였다.미닫이 옆 하얀 벽에 흑백사진액틀이 걸려있었는데 와후꾸와 기모노를 입은 젊은 남녀가 찍은 걸 보아 다까하시의 결혼사진 같았다.

"박상은 결혼했겠지우?애는 몇살이우?그리구 고향은 어디우?"

다까하시가 걸상을 가져다 나와 마주앉았다.

"네살 나는 아들이 있습니다.고향은 동북 길림성 룡정입니다.룡이라는 룡에 우물이라는 정입니다."

"그럼 혹시 이전에 간도일본령사관이 있던 곳이 아닌가유?"

"맞습니다.저의 집이 바로 령사관 동쪽마을에 있었습니다."

"그렇군.내 나이 이젠 칠십이 되는데 박상의 할아버지보다는 좀 나이가 어리겠구려."

나는 참다 못해 큰소리를 내서 웃었다.

"어려도 많이 어리지요.동생도 아닌 조카벌이나 되겠죠."

내가 웃는  보고 다까하시는 쑥스러웠던지 인차 말머리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지금 건강하슈?할아버지는 고향이 어디유?이전에 령사관 주위에 조선인들이 많았다고 들었소만..."

성이 박씨인 내가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인  뻔히 알면서 에둘러 물어보는 다까하시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잘 아시는군요.저는 중국 조선족입니다.저의 할아버지 고향은 한국 경상도입니다.전 할아버지를 뵌 적 없습니다.아버지도 뵌 적 없다고 했습니다."

"왜서유?일찍 돌아가셨는가유?"

나는 이번엔 정색해서 말했다.

"아버지가 한돐이 안돼 일본군과 싸우다가 돌아가셨답니다."

"억?!"

일본군이라는 말에 다까하시의 입에서 가벼운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큰할아버지도 일본군과 싸우다 돌아가셨답니다."

다까하시의 얼굴이 졸지에 홍당무우처럼 빨개졌다.

"어...어...참 안됐구려.일본이 조선과 중국에 많은 빚을 졌지유.저...쥬스라도 한잔 드릴가유?"

"아닙니다.전 이젠 가보겠습니다."

나는 바둑시합에서의 승자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가슴에 지지리도 맺혔던 저주와 원한을 한꺼번에 풀어버린듯 속이 후련해났다.지나간 옛일을 꺼내려고 가게에 들어온 것은 아니였다.하지만 정작 옛 일본군을 마주하고 보니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밖에서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나는 비옷모자도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씽하니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네시.

읽던 참고서적을 놓고 큰길을 내다보니 남새점 앞의 트럭은 그냥  자리에 멈춰있었다.아마 오전에 트럭을 몰고 슈퍼들에 남새를 날라다준 령감쟁이가 지금 가게에서 남새를 팔고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나한테서 받은 타격 때문에 머리를 싸쥐고 집안에서 끙끙 앓으면서 어디서 굴러온 죠센진(조선인) 후예가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는가고 투덜거릴 것이다.

오늘은 왠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싫어졌다.집에서 혼자 가만히 침대에 누워 텔레비죤도 보지 않고 깊은 명상에 잠겨있고 싶어졌다.

공장에 전화를 하려던 나는 들었던 수화기를 도로 놓아버렸다.일본에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쉬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택시를 타고 갈가?

비가 온다고 택시를 타고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바보도 있을가?

그럼 오늘은 전차를 타고 갔다가 다시 전차를 타고 오자.그 전철역에서 공장까지 걸어서 반시간 정도니깐 지금 집을 나가야겠구나.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우산을 들고 나가다가 창문을 닫으려고 밖을 다시 내다보니 트럭이 움직이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다까하시가 어디로 갈가?

혹시 같은 방향일 지도 모르지.가다가 어디에 들리는가 봐야지.

나는 바삐 층계를 내려왔다.대문  벽에 걸어놓았던 비옷을 다시 껴입고 잽싸게 자전거를 밖으로 끌어냈다.

,이번엔 일본군을 추격!

 

 

 

3.

 

 

생각과는 달리 다까하시의 트럭은 공장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허구픈 실소를 던지고 자전거를 돌려세웠다.반장과 같이 왔던 길이였고 거리를 봐서라도 공장까지는 반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절반 쯤 왔다고 짐작했을 때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비줄기도 점점 더 굵어지면서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자동차 스몰라이트처럼 전조등을 켜고 달렸다.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왠지 비속에서 전조등이 썩은 오렌지 같아보였다.하여튼 오늘은 기분 나쁜 날이였다.하지만 나의 기분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듯이 하늘에서는 차거운 비를 사정없이 퍼붓고 있었다.하얀 선으로 이어진 차선 옆 자전거길을 따라 한참이나 달리다가 문득 아까 교차로를 지나 굽인돌이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반장의 차에 앉아올 때는 좁은 길이 아니라 경사진 넓은 신작로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던 것이다.

제기랄

신발과 바지는 물론 비닐비옷에서 안장으로 흘러내리는 비물에 팬티마저도 후줄근히 젖고 말았다.젖은 팬티가 사타구니에 달라붙어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였다.

이게    같은 다까하시 령감쟁이 때문이야.하필이면 내가 집을 나가려고 할 때 트럭을 몰고 갈 게 뭔가.전차를 타야 하는데 자전거를 타서 그만 물병아리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자신을 탓하지 않고 듣지도 못하는 다까하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비물이 질거리는 신발과 젖은 걸레 같은 양말을 벗어 핸들  바구니에 던져넣고 맨발바람에 다시 자전거에 올라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잘못 들어선 길에는 행인은커녕 오가는 차량조차 보이지 않았다.비바람을 맞받아가는 길은 아득하기만 하고 비옷과 길바닥을 두드려대는 비소리만 처량하게 들려왔다.불쑥 공동묘지라도 있음직한 길옆 어느 어슥한 곳에서 일본귀신이나 미친개라도 뛰쳐나오지 않을가 더럭 겁이 났다.숨을 헐떡거리며 황황해서 내달리다가 어디까지 왔을가 잠간 멈춰서서 얼굴에 흘러내리는 비물을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요꼬하마에 원자탄이 떨어졌나 했더니 번개가 번쩍거렸다.그 번개빛 속으로 대여섯메터 앞 길옆에 도로표식이 신기루처럼 홀연히 솟아있었다.

!왔구나!

저도 모르게 흥분과 감탄에 뒤섞인 환호소리가 입에서 터져나왔다.

나는 도로표식대로 공장방향으로 꺾어들어 라스트를 향해 질주하는 자전거선수마냥 부리나 페달을 밟았다

공장에 도착하여 출근카드를 찍으니 5분전 다섯시였다.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자고 보니 젖은 팬티 우에 파란 로동복바지를 그대로 입을 수는 없었다.바지앞섶이 젖은 걸 보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는가.그러잖아도 걸죽한 롱지거리를 잘하는 아줌마들이 여럿이나 있었다.그녀들이 왜서 바지앞섶이 젖었는가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가.

마침 탈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나는 가만히 팬티를 벗고 로동복바지만 입었다.감촉이 좋지 않았지만 별수가 없었다.바지가 흘러내릴 것 같아 허리띠를 졸라맸다.이러면 되겠군.팬티를 입지 않은 걸 누가 보아내겠나.나는 입가에 느슨한 웃음을 빼여물고 팬티를 쥐여짰다.팬티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그 빌어먹을 다까하시 령감쟁이를 다시 만나기만 해봐라.네놈도 이렇게 꽉 비틀어놓으리다.나는 팬티를 옷걸이에 걸어 보관함에 넣어두고 차간으로 들어갔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왔던 일본인 학생들과 재미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다나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오늘은 벌써 퇴근시간이 되였다.나는 제일 먼저 탈의실로 달려갔다.옷을 제꺽 갈아입고 나가려는데 반장이 집까지 실어주겠다고 하기에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웃으며 대답했다.낮일을 하는 두 알바생이 래일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그들 대신에 래일은 오전 여덟시부터 저녁 다섯시까지 낮일을 하는 영광이 차려졌다.

빨리 집에 가야지.

공장 대문을 나오니 비는 이미 그쳤다.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날렸지만 채 마르지 않아 아직도 축축한 팬티와 바지는 거마리처럼 몸에 달라붙었다.  

집골목에 들어서서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다시 서쪽 큰길로 가보았다.남새점은 이미 문이 꼭 닫겨있었고 트럭도 나를 비웃는듯이 멈춰있었다.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와 입었던 옷과 바지를 벗어 세탁기 안에 집어넣고 팬티와 양말은 썩은 걸레 버리듯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그리고는 샤워를 하고 나서 인차 잠자리에 누웠다.

 

새벽 네시.

병사들을 실은 트럭이 어느 마을로 돌진해들어갔다.시퍼런 총칼을 비껴든 몇명 병사를 거느리고 소대장이 어느 집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갔다.손전등으로 집안을 비추니 누데기이불안에서 어른의 머리 하나와 어린애의 머리 셋이 동시에 나왔다.

"이불 안에 수류탄을 던져!"

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자 소대장이 나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었다.

"저 놈들이 살아남으면 이제 너를 죽일 것이다.그래도 수류탄을 던지지 않겠는가.던지지 않으면 너를 먼저 쏴죽이겠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없이 수류탄을 이불 안에 던져넣고 밖으로 달려나왔다.

!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

뒤이어 들려오는 총소리에 다시 놀라 뒤돌아보니 소대장이 피투성이가 되여 이불 안에서 기여나온  어린애의 머리에 권총을 쏘았다...

 

얼마나 잤는지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산  병사의 수기라는 책에서 나온  대목이 마치 금방 눈앞에서 펼쳐진 장면처럼 떠올라 그만 잠에서 깨여났다.

 병사의 수기 이미 칠십고개를 넘긴  일본군병사가 열여덟살에 징병으로 끌려가 한달간 군사훈련을 받고 중국 하북성 전장에 가서 자신이 껶었던 처참한 사실들을 적라라하게 폭로한,몇해 전에 일본전국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이였다.기자들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죽기 전에 일본군의 만행을 세상에 꼭 알리고 싶었을 뿐이였다고 토로했다. 

다까하시를 자꾸 생각하니 꿈에도  일본군 모습이 나타나는가 보다.

날은 이미 희붐히 밝아있었다.

상준이는 한국에  목요일 저녁에 전화가 오고 왜서 이틀이나 련락이 없을가.록음전화에도 음성메지가 들어오지 않았다.아버지가 무사해야 할 텐데.

그런데 다까하시가  이상하지 않는가.다른 일본인이라면 중국인 앞에서 자기가 일본군이였다는 말은 감히 입밖에 꺼내지도 못하겠는데 왜서 락하산병이였다고 자랑 삼아 말할가?

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흐린 날씨였지만 비는 당장 내릴  같지 않았다.

아직은 텔레비죤도 나오지 않는 새벽이라 좀더 자고 일곱시 쯤에 일어나자.

나는 알람을 맞춰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꿈속에서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까하시를 계속 추격하고 있었다.

 

 

 

4.

 

 

행인들의 우산이 기우뚱거리고 가로수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디스코를 추고 있었다.

일곱시반 전에 집문을 나선 나는 서쪽 큰길로 가지 않고 전철역으로 가는 길로 자전거를 내몰았다.큰길을 따라 달리다가 교차로를 지나니 반시간도 걸리지 않아 공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일인지 직원 여러명이나 나오지 않았다.차간이 엉망이  부장 서슬이 시퍼렇게 화를 내는  반장은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다.부장한테서 애매하게 꾸짖음을 당한 반장이 측은하게 생각되였다.한참이 지나서야 직원 셋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들어왔다.엇저녁에 술을 포근히 마신 얼굴들이였다.부장이 작은 유리창문으로 차간을 흘끔흘끔 들여다보군 했다.

휴식시간이 되자 담배가 마려웠던 직원들이 휴식실로  쓸어들어갔다.휴식실 테블 우에 빵과 우유가 놓여있었다.지난 토,일 저녁에도 빵과 우유가 간식으로 나왔다.우유는 나의 체질에 맞지 않는지 마시기만 하면 장마철을 맞은듯 배에서 우뢰가 울려터지고 소낙비를 쏟아냈다.아침을 거른 채 출근한 내가 걸탐스레 빵을 먹고 있는데 부장실에 불리워갔던 반장이 들어와서 나의 옆에 앉았다.

"퇴근길에 우리 둘이서 한잔 할가요?"

반장이 늦게 출근한 직원들이 들어라는듯이 나에게 말했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요."

"그럼 먼저 집에 갔다가 제가 전화하면 큰길에 나와요.우리 오늘 멋지게 마셔보죠."

반장이 나를 보고 웃자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여섯시.

자전거방 앞에서 반장과 만났다.남새점 앞에는 트럭이 보이지 않고 고급스러운 승용차가 멈춰있었다.남새점을 지나려는데 다까하시의 녀편네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녀인과 마주쳤다.다까하시 녀편네가 반색하며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박상이군요.오랜만이네요."

"오랜만입니다."

나의 입에서도 마지못해 인사말이 흘러나왔다.다까하시 녀편네가 옆의 녀인을 딸이라고 나에게 소개하고 나서 나의 신상을 잘 알기라도 하듯이 딸한테도 나를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오까다입니다.박상은 중국에 살고 계시는 조선족이네요.만나서 반갑습니다."

대부분 일본녀인들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씨를 따른다.성씨를 바꿨다고 다까하시의 피가 흐르지 않겠는가.일본군 딸년이 나를 만나서 반갑다고?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다.그러니 괜한 인사치레나 수작 따위는 집어치워라고 기분이 언짢아지려 할 때 그녀가 두손으로 명함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다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지금 볼일이 급해서요.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명함장을 받아 그대로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돌아섰다.

이자까야(居酒屋)에서 반장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안주도 들지 않고 술만 들이켰다.중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던 반장이 얼마 안되여 병든 닭처럼 앉은 자리에서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그만 반장을 부추켜서 밖에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세웠다.정신을 좀 차린 반장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나의 말에 연신 손사래를 치면서 미안하다며 택시에 올랐다.

멋지게 마신다는  고작  수준인가.토요일 저녁에 반장을 만나면 한바탕 골려줘야지.

돌아오는 길에 저절로 웃음이 나오려 했다.지금까지 사귀여온 일본인들이 술에는 모두 약했던 것이다.하긴 중국에서 술을 련마했으니 일본인들 앞에서 끄떡할 리가 있겠는가.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인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을 때 우리는 술이나 마시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였는가를 다시 한번 침통하게 느끼게 되였다.

집에 와서야 나는 호주머니에 넣었던 명함장을 꺼내보았다.

 

도꾜××국제일본어학원

오까다노리꼬 학원장

 

 무렵 도꾜는 물론 요꼬하마에도 일본어학교가 우후죽순처럼 늘어가고 있었다.한국과 대만,홍콩을 대상으로 하던 일본어학교들에서 점차 대륙에 눈독을 들이고 중국 류학생들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명함장을 쓰레기통에 던지려다가 명함케이스에 넣어두었다.일본어학원의 전화번호 뒤자리수가 어쩌면 어머니의 생일날자와 같았기 때문이였다.

나는 베개밑에서 편지를 꺼냈다.베개밑에는 어머니의 날을 즈음하여 어머니한테 보낸 편지의 회답으로 어머니한테서 온 편지가 있었다.어머니의 날이라고 하니 몇주 전의 일이 다시 생각났다.골덴위크련휴가 지난 금요일 오후,레포트를 작성해가지고 지도교수연구실로 가다가 문옆에 써붙인 <어머니의 날>이라는 포스터를 보고서야 5월 두번째 일요일이 어머니의 날이라는 걸 알게 되였다.중국에 있을 때는 세상에 어머니의 날이라는 명절이 있는 줄도 몰랐다.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을 축복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났다.비록 철자법이 조금씩 틀리고 소학교 산수용지에 쓴 어머니의 편지였지만 부모처자가 그립고 힘들 때면 베개밑에 넣아두었던 편지를 꺼내 읽어보면서 스스로 화이팅을 웨치군 했다.

눈꼬리를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만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주방청소를 하려다가 쓰레기통을 보니 이틀이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래일 지도교수의 강의가 없기에 아침에 늦잠을 자면 쓰레기를 또 버리지 못하게 된다.양말도 살 겸 쓰레기를 버리자.

쓰레기를 버리고 패밀리마트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차문에 파란 페인트칠을  트럭이 큰길을 지나갔다.다까하시의 트럭이였다.큰길까지 뛰여가 보았더니 트럭은 굽인돌이를 돌아서고 있었다.남새점은 좀 가다가 왼쪽에 있었다.가로등불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트럭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돌격총 같은 자물쇠가 적재함에 달려있는 똑같은 트럭을 공장으로 가던 도중에 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아침에 공장으로 가면서 일부러 어제 잘못 들어섰던 길에 들어가서 잠간 주위를 둘러보았다.인적기가 드물고 수풀이 우거진 저 앞치 길옆에 신사(神社)로 보이는 작은 건물이 있었고 돌격총을 멘듯한 트럭 한대가 거무틱틱한 대문 앞에 멈춰있었었다.

혹시 령감쟁이가  신사에   아닐가.일본고층정계인물들이 전쟁범을 참배하러 야스구니진쟈(靖国神社)에 자주 드나든다고 하지 않는가.그럼 저 놈도 신사참배하러 다니는 게 아닐가.

집에 들어오자 전화벨소리가 울려왔다.상준이였다.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상준이는 경기도에서  연구생인데 나와 같이 학교 기숙사에 있다가  집에 이사를 왔다.일본에 금방 왔을  우리는 제일 값싼 라면도,일인분 도시락도 나눠먹었다.우리는 저녁이면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도 같이 하고 이른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도 같이 했다.첫 월급이 나온 날 저녁 우리는 맥주를 사가지고 기숙사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그 날 상준이는 남북이 통일되면 자전거를 타고 중국에 와서 나를 만나겠다고 했다.상준이도 나처럼 네살 나는 아들이 있고 일본어교원을 하다가 일본에 왔는데 병환에 계시는 아버지를 위해 달마다 부인한테 송금하고 있었다.상준이는 지금까지 나와 같이 고난을 껶어온 동갑친구이다.

상준이가 돌아오면  위안해줘야지.

래일은 저녁에 평일 아르바이트를 하니깐 오후에  신사에 가볼가?다까하시가 신사에서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는지 꼭 알아내야지.일본군을 추격하다가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그리고 자전거를 샀다가 집마당에 처박아두고만 있겠는가.상준의 야구모자를 꾹 눌러쓰고 그라스를  걸면 령감쟁이가 나를 봐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아닌가.

오늘은 오전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반장과 멋지게 술까지 마셔서인지 소르르 잠이 몰려왔다.

다까하시,네놈은 이젠 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였느니라.

오늘 밤은 좋은 꿈이나 꾸자.

래일도 달려라,나의 자전거.

 

 

 

5.

 

 

이튿날은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내렸다.

비소리에 깨여나 시계를 보니 아직 일곱시도 되지 않았다.좀더 자려다가 나는 이불을 차고 일어났다.비 내리는 아침에 가만히 신사에 가보는 것이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오후보다 더 좋을 것 같아서였다.

,전신무장하고 출발!

신사에 도착하자 비줄기는 많이 누그러들었다.주위는 인기척이라곤 들리지 않고 대문은 짐승의 아가리처럼 활짝 열려져있었다.

발볌발볌 대문 안에 들어선 나는 그만 제자리에 못박혀버렸다.

 거인이 눈앞에 우뚝 서있었다.

유난히 붉은 얼굴에 길고 빨간 코를 가진,광대춤을 추는지 손에는 부채를 거머쥐고 하늘을 나는지 어깨에는 날개가 솟아있는 무서운 요귀였다.

요귀,아니 일본귀신이였다.

일본귀신이 이렇게 생겼구나!

아연실색한 나는 대문 밖으로 질질 뒤걸음질쳐나와 자전거에 뛰여올랐다.일본귀신이 뒤쫓아와서 목덜미를 와락 낚아챌가봐 자라목처럼 목을 움추르고 자전거야 날 살려라 줄행랑을 놓았다. 

"아이쿠!"

얼마 가지 못하고 나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큰길 길목에서 굽인돌이를 돌다가 자전거가 미끌어 자전거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오른쪽 팔꿈치와 엉덩이에서 심한 통증을 느꼈다.

"박상 아니우?"

 일본귀신의 부르짖음인가.

겨우 일어나 한쪽다리를 쩔룩거리며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켜세우려다가 소리 나는 쪽에 고개를 돌렸더니 언제 왔는지 다까하시가 트럭 차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마치 아까부터 여기서 나를 지켜보고 있은 듯했다.

"박상 맞구려.박상이 웬 일로 여기에 왔수?"

젠장!

망할 그라스는 나를 두고 벌써 어디로 내뺐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아,저...공장에서 야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섰습니다.헌데 당신은 웬 일로 여기에 왔어요?"

나는 아닌보살을 하며 제쪽에서 큰소리로 되물었다.다까하시상이라고 부르지 않고 당신이라고 불렀다.

다까하시가 트럭에서 내리더니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신사에 들려 덴꾸 주위를 청소해놓고 터밭에 가려구.비가 내려 나무잎들이 많이 떨어졌을 거유.신사 골목에 들어가려다가 누가 자전거를 타고 바삐 신사에서 나오기에 여기서 차를 세웠쥬.저기 보이는 게 터밭이우다."

다까하시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멀리에 비닐박막을 씌운 하우스가 있었다.아낙네들처럼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장화를 신은 남정 몇명이 벌써부터 상자들을 나르고 있었다.

"덴꾸?덴꾸가 뭔데요?"

"하하.덴꾸를 모를 수도 있지.일본 대학생들도 모르던데..."

 령감쟁이가 박식한  하지 않는가!

"비가 오는데 차에 들어가 좀 쉬였다가 가시우."

그러잖아도 숨이나 돌리고 가려던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없다는듯이 야구모자를 벗어쥐고 조수석에 들어가 앉았다.

"덴꾸라는 게 하늘의 개란 뜻이우다."

"아!"

덴꾸가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아차린 나는 속으로 자신을 꾸짖었다.

 일본군도 두려워하지 않던 내가 까짓 덴꾸가 두려워 정신없이 신사에서 뛰쳐나왔단 말인가.귀신도 아닌 덴꾸가 그렇게도 무서웠단 말인가.

"덴꾸는 중국문화를 일본인들이 활용한 거지유.이제 날씨가 좋아지면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찾아올 거우다.건강하고 날개도 있는 덴꾸에게 소원도 빌지유."

"..."

오른쪽 무릎이 아파나기에 손으로 무릎을 주무르려던 나는 흠칫 놀랐다.

"이 팔목..."

다까하시의 왼쪽 팔목에 흉물스러운 흉터가 있었다.칼자국 같아 보였다.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 다까하시의 왼쪽 팔목이 보였던 것이다.

"이 상처 말이유?"

다까하시가  한숨을 내쉬고 나서 지난날을 회억하듯이 말을 이었다.

"내가 중국에 가서 얼마 안되던1945년7월 중순 어느 날이지유.그 날은 식료품과 약품들을 수송하게 되였는데 공중에서 내리뜨린 통졸임상자가 락하산이 펼쳐지지 않는 바람에 산기슭에 잘못 떨어졌지유.그래서 나와 동료가 락하산을 타고 그리로 갔는데 상자가 깨져 통졸임들이 흘러나왔더군.그 때 광주리를 멘 어린 남자애 둘이 지나갔는데 광주리엔 이름 모를 나물들이 들어있더군.중국인을 처음 본 나는 어릴 때 형과 같이 산나물을 뜯으러 갔던 생각이 나서 애들 광주리에 통졸임을 세개씩 넣어주었지유.그런데 그 애들이 초소를 지나다가 붙잡혀 내가 추궁을 받게 되였지유."

"그래서요?"

호기심이 동한 나는 바투 물었다.

"끌려가 호되게 맞았지유.귀뺨은 얼마나 맞았는지 귀가 먹먹하더군."

"그럼 이 상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 침대에 누워있더군.구두발에 짓밟혀 얼굴은 볼꼴없이 되였고 팔목에는 붕대가 감겨있더군.다리뼈가 부러져 이튿날부터는 지팽이에 의지하게 되였지우.그 동료의 말에 의하면 깨진 유리가 팔목에 박혀들어가 땅바닥은 피가 랑자했다더군.노자끼라는 간호원이 간호했는데 그 간호원이 바로 지금 마누라지유.그 후 일본이 7월말에 발포된 포츠담선언을 무시하자 8월초에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떨어뜨렸지유.일본이 투항한 날 군관들은 하늘에 대고 총을 쏘면서 통탄했지만 병사들은 이젠 살아서 일본에 돌아간다고 속으로 기뻐했지유."

일하던 남정들이 하얀 수건을 손에 쥐고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럼 저는 이젠 가보겠습니다."

"그래유.야근을 하고 피곤할 테니 집에 가서 쉬시우.저...그리고...요꼬하마역 서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 남새점을 오픈하우다.지금 남새점은 래일 그리로 옮기기로 했수다."

래일 이사를 하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없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이상 묻지 않았다

"오늘 다른 다까하시상을 알게 되였습니다."

나는 트럭에서 내렸다.다까하시가 자전거를 내앞에 가져다주었다.

"주의해 가시우.그리고 몸 주의하시우."

이튿날 저녁무렵.

학교에서 집에 돌아온 나는 아르바이트하러 가려고 집을 나가려다가 서쪽 큰길을 내다보았다.대낮에 이사를 했으리라 생각했는데 남새점 앞에서 다까하시부부가 트럭에 오르는 모습이 보여왔다.

오늘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학교에서 보내다나니 다까하시한테 인사말도 하지 못했다.마지막으로 인사나마 올리려고 큰길까지 갔을  트럭은 서서히 떠나가고 있었다.

나는 멀어져가는 트럭을 오래도록 눈바램해주었다.

서쪽 하늘에서 한줄기 해살이 쏟아져나왔다.한동안 나를 혼란스럽고 곤혹스럽게 굴었 장마철이 어느덧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르바이트시간이 늦을가봐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장마철에서 벗어난 해탈감과 다가올 새 계절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달려라,자전거!

 

 

 

에필로그

 

귀국하여 외국어학원과 출국류학회사를 운영하던 나는 이듬해인 1998년 북경에서 열린 일본류학세미나에서 우연히 오까다를 만나게 되였다.

오까다의 일본어학원과도 교류하여오던 2002 가을,출장차 도꾜에서 오까다를 다시 만났을  다까하시가 한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였다.오까다는 아버지가 중국에 두번 다시 가보지 못한 것이 평생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병상에서도 여러번 말씀하셨다는 것이였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2 (중편) 가을비 2022-11-29 0 1620
11 (단편) 회귀(回归) 2022-01-19 0 1491
10 (단편) 해후(邂逅) 2021-09-17 1 1510
9 (중편)서른 살,그해 가을 2021-03-05 0 1668
8 (단편)어느 봄날의 기억 2020-08-05 0 1829
7 (중편)꿈 2020-08-04 1 1668
6 (단편)그 여름날의 소낙비 2020-01-11 0 1119
5 (단편)달려라 자전거 2019-09-14 0 1022
4 (단편)귀뚜라미 울던 밤 2019-09-14 0 1056
3 (단편)비닐우산 2019-09-14 0 997
2 (단편)돌아갈 수 없는 강 2019-09-14 0 841
1 (단편)우동집 2017-12-23 0 145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