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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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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가을비
2022년 11월 29일 14시 56분  조회:1579  추천:0  작성자: 살구나무
<연변문학> 2022년11호
 
 
 
중편소설
 
가을비
 
 
박명선
 
 
 
 
쾌청한 날씨가 련며칠 지속되더니 비가 내린다.토요일이라 늦잠이나 실컷 자려던 나는 비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아홉시를 넘은 시간이였다.가을비가 내릴 때면 어쩐지 모르게 기분이 울적해진다.
나는 팔베개를 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어느덧 일본에 온 지 8년이 되였다.먼저 일본어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우체국은행에 취직했다.한주일 전 증권회사 면접에 합격하여 우체국은행을 그만두고 도꾜에서 사이다마현 가와구찌시로 이사를 왔다.가와구찌(川口)역과 도꾜 아까바네(赤羽)역은 한 정거장 거리이다.철교 건너편 아까바네에 아버지가 일하던 숯불갈비점과 스즈끼리에의 옛집이 있다.
스즈끼리에(鈴木理恵),내가 일본에 올 때 신원보증인이 되여준 일본녀인이다.당시 나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이 신원보증인이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를 찾기 위해 대학시험도 보지 않고 일본어학교 류학수속을 했는데 일본에 와서야 숯불갈비점 점장인 그녀가 나의 신원보증인이고 주방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그녀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였다.3년 전 아버지는 그녀의 고향인 시즈오까(静岡)에 가서 그녀와 같이 해산물가게를 경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대학시험을 보지 않은 것이 다시 후회되였다.고중 3학년 후학기에 들어와서도 나는 성적이 좋았기에 중점대학은 문제없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그때 성적이 비슷하던 고중동창생들이 중점대학을 졸업하고 큰 도시 좋은 회사들에 취직한 것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나도 그들처럼 중국의 큰 도시에서 발전하고 싶다.
증권회사는 우체국은행보다 업무가 적성에도 맞고 재미도 있었지만 마뜩잖으면 때려버리고 중국에 돌아갈 것이다.
나는 그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갔다가 방에 들어와 텔레비죤을 켰다.날씨를 보려고 채널을 돌리다가 한 젊은 녀인이 눈물을 머금고 어린 아들의 생일케익에 초불을 켜는 장면이 나오기에 멈추었다.재방송하는 어느 드라마인 것 같았다.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아버지는 내가 소학교 4학년 때 려행사 대표팀 일원으로 일본에 려행을 갔다.같이 간 다른 사람들은 모두 기한 내에 귀국했지만 아버지는 어딘가로 도망갔다고,그 후 아버지는 려행사에서 해고당했고 아버지 때문에 려행사도 큰 손실을 입었다고 어머니한테서 들었다.어머니는 아버지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한동안 감감무소식이였다.나도 아버지가 혹시 일본에서 사고를 당해 죽지나 않았을가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이였다.
전화벨소리에 옆에서 주무시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방전등을 켜고 수화기를 들었다.밤 열한시였다.나는 대뜸 아버지라고 짐작했다.
“...동우 아빠,왜 이제야 전화해요?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과연 아버지였다.
“...동우는 잘 있어요.지금 자고 있어요...려행사에서 찾아온 사람은 없었어요...려행사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면 여기서 다른 회사를 찾으면 되잖아요?...그럼 언제 와요?...흑흑흑...”
수화기를 맥없이 놓은 어머니는 베란다에 가서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리고 있었다.찬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비물이 집안까지 튕겨왔다.
“어머니,감기에 걸리겠어요.”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어머니한테 다가갔다.
“안 자고 있었나?동우야,엄마는 지금 밖에 나가 비라도 콱 맞았으면 좋겠다.너 먼저 자거라.”
나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려는 어머니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요.저를 봐서라도 이러지 말아요.우리 누워요.”
어머니는 누워서 나를 꼭 끌어안고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아버지 언제 온대요?”
“나도 몰라.”
어머니의 눈물이 나의 얼굴에도 흘러내렸다.뜨거운 눈물이라 하지만 어머니의 눈물이 가을비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그날 밤,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 사람들이 일본에 가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일본에 간 한 학급 학생들의 부모들도 여럿이 있었고 부모의 요청으로 일본에 간 학생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커서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일본에 가서 아버지를 꼭 찾고 말겠다고 결심을 내렸다.
제약공장 로동자인 어머니는 밤대거리를 할 때도 많았다.어머니가 밤대거리를 할 때면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외삼촌이나 이모네 집에 가라고 했지만 나는 혼자 집에 있겠다고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두주일이 지난 금요일은 나의 생일이였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어머니가 료리들을 밥상에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생일 축하한다.아침에 미역국은 잘 먹었나?”
“네,잘 먹었어요.”
“저녁엔 네가 좋아하는 소고기료리도 해놓았다.어서 옷을 갈아입거라.”
아침에는 어머니가 엊저녁에 끓여놓고 간 미역국을 덥혀 먹었다.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간 후에 집에 들어오고 내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 공장에 나가군 했다.
옷을 갈아입고 주방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케익에 초불을 켰다.
열한개 초불이였다.
“생일 축하해요.사랑하는 내 아들 생일 축하해요...”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는 어머니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눈 감고 두 손 모아 바라는 걸 속으로 말해보거라.”
나는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고 속으로 말하려다가 제꺽 초불을 불어 껐다.
“어머니,나 공부를 잘할게요.” 
“그래,공부를 잘해서 이제 좋은 대학에 가야지.오늘은 네가 집에 들어오는 걸 보고 출근하겠다고 했다.지금 공장에 가야 한다.래일은 쉬고 모레부터 다시 낮일을 한다.생일인데 엄마가 미안하구나.”
“저를 근심하지 말고 빨리 일하러 가세요.”
어머니가 집문을 나간 지 얼마 안 되여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동우야,생일 축하한다.”
“일본이 그렇게 좋아요?”
나의 입에서 인사 대신 곱지 않은 말이 나갔다.
“일본이 좋아서 있는 게 아니다.네가 크면 돈을 많이 주려고 있는 거다.”
“돈은 커서 절로 벌 테니 빨리 돌아와요.저는 돈이 필요없어요.아버지가 필요해요.”
“어머니는 아직 퇴근 안 했나?오늘이 생일인데 저녁은 뭘 먹나?”
“어머니는 요즘 밤대거리를 하고 있어요.제가 오늘 뭘 먹든 상관하지 말아요.말하기도 싫어요.”
“너 오늘 왜 이러니?너 성격이 변했구나.아버지 때문이니?”
아버지 때문이라고 대답하면 속시원하련만 아버지와 먼저 약속을 하고 싶었다.지금까지 약속을 잘 지킨 아버지였다.
“오늘 저와 약속해요.언제 와요?”
“언제 갈지 모르겠구나.미안하다.저 그리고...”
“약속하지 않으면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어요.”
“너 오늘 진짜 왜 이러니?”
“이제 제가 커서도 오지 않으면 아버지를 찾으러 일본에 가겠어요.”
나는 수화기를 덜컥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끊겼다가 다시 울리기를 여러번 반복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베란다에 비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늦게부터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선생님과 학생들한테서 선물도 받았다.작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이 뀀점에도 갔다.
생일날에 쓸쓸한 가을비도 내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없는 집에 혼자 있으니 울고 싶었다.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밖에 나가 비라도 콱 맞을가?
문득 술이나 마셔볼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오늘은 제정신으로 혼자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3분의1 정도 남긴 술병을 꺼내 유리컵에 술을 따랐다.
열한살 생일은 꼭 기억해두리라!
나는 술을 조금 마셔보았다.
와,독하다!이런 독한 술을 어떻게 마시지?
입안이 쓰거워나고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안주를 먹어야지!
나는 소고기를 먹었다.소고기가 여느 때보다 구수하고 맛있었다.
그래,술과 고기를 먹으니 나도 이젠 사내가 다 되였구나!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집안이 들썽하게 미친 듯이 웃고 싶었다.
이번엔 건배해야지!
나는 단숨에 술잔을 굽내버렸다.
생일날에 약속도 하지 않은 아버지가 미웠다.일본에 있는 아버지가 정말 미웠다.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이 술은 마실 수 없잖은가.까짓 술을 남겨선 뭘 하겠는가.
나는 나머지 술을 유리컵에 몽땅 쏟아부었다.
이튿날,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왜 케익과 료리들은 먹지 않고 술만 마셨는가고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여 우시는 어머니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나도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그 후부터 나는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담배도 피우지 않았다.열심히 공부만 했다.
일본에 온 날 밤,아사히(朝日)맥주를 처음 마셨다.
 
원룸이고 3층으로 된 아빠트,나의 집은 3층 1호실이다.2호실은 비여있고,3호실에는 브라질에서 온 30대 초반 부부가 살고 있고,4호실에는 외국인을 혐오하는 듯한 50대 중반 뚱보녀인이 혼자 살고 있다.
점심무렵에 비가 그쳤다.
드라마를 한참 보는데 밖에서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창밖을 내다보니 파란 유니폼을 입은 남자 셋이 길옆에 세운 이사센터차에서 이사짐을 부리우며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었고 여나문살 돼보이는 남자애의 손을 잡은 키 큰 녀인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본에 와서 지금까지 이사센터차를 보면 오늘 누가 오는가,누가 가는가 무심히 지내왔다.한 아빠트에 살면서도 층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저 례의적인 인사만 하고 스쳐지나기에 누가 오든 누가 가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 집에 있기 싫어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곤니찌와(안녕하세요).2호실에 이사 온 스기모도(杉本)예요.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일군들을 층계까지 바래주고 뒤돌아선 녀인이 집문을 나온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염색하지 않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긴,30대 중반을 넘어선 갸름한 얼굴의 예쁜 녀인이였다.  
“하야시(林)입니다.잘 부탁드립니다.”
일본에 온 첫날부터 림씨인 나를 모두 하야시상이라 불렀다.일본 성씨 중에도 하야시라는 성씨가 있었다.이젠 일본어도 잘하기에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를 외국인으로는 여기지 않고 있었다.그렇다고 일본인이라고 자칭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야시상은 언제 여기에 이사 왔어요?”
“한주일 전에 이사 왔습니다.”
“가족은요?”
“독신입니다.”
“하야시상은 대학원생인가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라와에 있는 증권회사에 근무합니다.”
사이다마현 현청소재지인 우라와(浦和)는 가와구찌에서 네 정거장 거리였다.우라와에서 세방을 구하려다가 가와구찌에서 구하게 되였던 것이다.일본에서 네 정거장 거리는 먼 거리가 아니였다.   
“그래요?”
4호실에서 뚱보녀인이 나오더니 이쪽으로 뚱기적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인사하고 층계를 내려갔다.
오늘 스기모도라는 녀인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남편이 출장이라도 갔을가?
동네를 한바퀴 빙 돌고 슈퍼에서 점심에 먹을 두부를 사가지고 층계를 다시 올라오니 2호실 출입문은 닫겨있었지만 식기 전에 빨리 먹으라고 아들에게 하는 그녀의 말소리가 열어놓은 주방창문으로 들려왔다.
집에 들어온 나는 두부를 그릇에 담아놓고 어머니를 그려보았다.
어머니는 내가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되여 제약공장에서 인원감축을 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게 되여 이듬해에 천진에 갔고 지금 천진 어느 약업유한회사에서 일하고 있다.우체국은행에 취직한 해에 나의 요청으로 일본에 와서 열흘간 있다가 중국에 돌아갔다.일본에 온 이튿날 저녁,내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어머니가 떡볶이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일본에 와서 떡볶이는 처음이였다.전차에서 내려 20분이면 집에 들어간다고 전화를 했더니 내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해놓은 것이였다.
“슈퍼에서 떡볶이도 팔더구나.식기 전에 빨리 먹거라.”
어머니가 포크로 떡볶이 두개를 집어 나의 입에 넣어주었다.
뜨거워서 호호 불며 먹는 떡볶이는 세상 별미였다.
“정말 맛있어요.옛날 그 맛이예요.어머니 료리솜씨 정말 좋아요.”
“녀자친구나 빨리 사귀거라.”
어머니도 웃고 나도 웃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밥이나 국을 떠놓고는 식기 전에 빨리 먹으라고 했다.중학교 3학년 어느 추운 겨울날,퇴근길에 산 군고구마가 식을가 봐 가슴에 꼭 끌어안고 집에 달려와서 식기 전에 빨리 먹으라며 껍질을 제꺽 바르고 아직도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군고구마를 나의 입에 넣어주었다.나는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에 목이 메여 어머니 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다른 얘기를 나누다가 아버지를 만나보지 않겠는가고 웃으며 어머니에게 물었다.어제 오후 어머니를 마중하러 나리다공항에 가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는 요즘 가게도 바쁘고 스즈오까에 갈 준비도 해야 하기에 만날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보고 싶어할 거라고,만나겠다면 래일 저녁 어머니를 모시고 숯불갈비점을 찾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저가락을 밥상에 내려놓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 지금 상처한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고 터놓는 것이였다.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아버지가 그동안 한번도 중국에 가지 않았고 내가 일본에 온 후에는 어머니와 완전히 련락을 끊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버지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같은 도꾜에서 일본녀자와 같이 살고 있다고 사실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일본에 와서 어머니한테 두번째로 전화를 할 때 아버지는 지금 도꾜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예감은 언녕 들었지만 난 그래도 너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었고 늦어도 네가 대학시험을 보는 해에는 일본에서 돌아올 거라고 기다리고 있었다.네가 일본에 간 후에야 너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그래서 공장에서 밀려나왔기에 천진에 간 고향친구의 소개로 약업유한회사에 들어간 거다.이전의 제약공장보다 로임도 더 많고 한 회사에 다니는 그 분도 정직하고 선량한 분이시기에 나의 근심은 하지 말거라.”
나의 두 손을 꼭 잡은 어머니의 눈굽이 젖어들었다.
“동우야,나와 너의 아버지는 꼭 후회할 거다.못난 부모를 만난 너도 불쌍하지만 너는 앞으로 안해를 영원히 사랑하고 자식을 잘 키우면서 잘살아야 한다.”
“어머니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가 나의 손을 놓고 화장실에 들어갔다.수도물을 틀어놓고 한참이나 있다가 나와서 아무 일도 없은 듯이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화장실에서 울고 있었다는 것을 어머니의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그날 밤에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나는 세수나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까악~까악~
화장실을 금방 나왔을 때 난데없이 창밖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이사 와서 처음 듣는 까마귀 울음소리였다.
나는 방에 뛰여들어가 창밖을 내다보았다.까마귀들은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가 그쳐서인지 아니면 도꾜와 사이다마현을 이어놓은 철교 밑을 흐르는 강이 있어서인지 아까바네에 있는 스즈끼리에의 집에서도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었다.
나는 아버지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일본에 온 이튿날 아침,나는 까마귀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여기가 누구의 집일가?시계를 보니 여섯시도 안 된 시간이였다.중국에서는 까마귀를 미워했고 소학교를 졸업하는 해에는 어머니와 같이 농촌에 계시는 외할머니 집에 갔다오는 길에서 까마귀를 보고 침까지 뱉었기에 까마귀가 밉살스럽게 생각되였다.배가 슬슬 아파났다.화장실에 가려고 방에서 나와보니 꽤 큰 집이였는데 문이 좀 열려져있는 옆칸이 화장실인 것 같았다.옆칸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두 남녀가 창문 옆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웃통을 벗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스즈끼리에였다.
나는 못 본 척 화장실을 찾아들어갔다.
어제 나리다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일곱시가 거의 되였다.마중 나온 아버지의 핸드폰으로 먼저 어머니에게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고 아버지와 같이 주차장에 가니 웬 녀인이 하얀색 승용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얼굴이 통통한,밉지도 곱지도 않은 40대 초반의 실눈을 가진 녀인이였다.
“하야시상,곤니찌와.”
입국심사를 마친 후 컨베이어벨트에 실려나오는 트렁크를 찾아가지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전신무장을 한 경찰관이 다가와서 려권을 보여달라더니 하야시상은 짐이 이것 뿐인가고 상냥하게 웃으면서 저쪽으로 가라고 알려주는 것이였다.나를 린상이라 부르지 않고 하야시상이라 부르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도 나를 하야시상이라 불렀다.
“곤니찌와.”
나는 그녀에게 그저 한마디 인사만 했다.아버지가 숯불갈비점에 가서 저녁을 먹자며 그녀의 차에 앉아 고속도로로 오다 나니 어디가 어딘지 동서남북도 분간키 어려웠다.숯불갈비점에 들어서니 열시를 넘었다.아르바이트생들이 점장님이라 부르는 걸 보고 그녀가 이 가게의 점장이라는 걸 알았고 아버지가 주방에서 일한다는 걸 알았다.손님들이 가고 종업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도 퇴근하자 그녀와 아버지가 맞은켠에 같이 앉았다.
“하야시상,왜 갈비를 안 드셨어요?우리 맥주 한잔 같이 할가요?”
배가 고팠지만 나는 아르바이트생이 구워주는 갈비는 먹지도 않고 아버지와 그녀만 생각하고 있었었다.
그녀가 아버지와 나의 잔에 맥주를 따랐다.
아사히맥주였다.
아버지가 그녀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이 분이 바로 너의 신원보증인인 스즈끼리에이다.스즈끼점장님의 덕분에 네가 일본에 온 거다.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거라.”
나의 신원보증인이 어느 회사 사장님이 아니고 숯불갈비점 녀점장이였단 말인가!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신원보증인이 되여주셔서 고맙습니다.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외국어학원에서 석달간 일본어를 배우고 왔기에 이 정도 일본어는 할 줄 알았다.
“일본어 발음이 좋으시네요.”
그녀가 웃으며 나의 접시에 잘 구워진 갈비를 집게로 집어놓았다.
“동우야,아버지와 같이 한잔 할가?”
아버지가 잔을 들자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잔을 비워버렸다.일본맥주가 맛있다고 들었지만 무슨 맛인지 몰랐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는 일본어를 잘하는 것 같았다.
어느 진 중학교 일본어교원을 하다가 내가 태여난 해에 큰 도시 려행사에 들어갔고 일본에 가기 전까지 해외부 부장직을 맡았던 아버지였다.
스즈끼리에가 나의 잔에 맥주를 다시 따랐다.
“하야시상,갈비를 빨리 드세요.”
나는 스즈끼리에의 말을 못 들은 척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우산을 펼쳐든 행인들이 보여왔다.
오늘도 비가 오는가.
가을비,그것도 일본에 온 첫날이라고 생각하니 저으기 불쾌해졌다.
거의 세시간 되는 비행기에서 눈도 붙이지 못했고 숯불갈비점에서 정신적으로 피로했는지 처음 마시는 맥주를 얼마나 마셨고 어떻게 가게를 나왔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화장실을 나와서 방에 들어가자 아버지가 따라 들어왔다.
“동우야,너 어제 많이 취했더구나.아버지는 지금 스즈끼리에와 같이 살고 있다.여기가 스즈끼리에의 집이다.숯불갈비점에서 멀지 않다.”
“왜 일본녀자와 같이 살고 있어요?그리고 그 녀자가 왜 저의 신원보증인인가요?”
“일본인이 신원보증인이 되면 비자가 잘 나오잖아.”
아버지가 회사 사장님이 신원보증인이고 일본어학교 입학원서는 비서가 대필해준다고 하기에 나의 서류만 일본에 보냈었다.중국측 신원보증인의 수입증명서와 은행잔고증명서 등 서류에 신빙성이 없다고 일본법무성 입국관리국의 비자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캐묻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아버지는 이젠 림씨가 아니고 스즈끼인가요?일본녀자한테 시집 갔어요?”
“일본에 있자면 방법이 없잖아.후에 말해줄게.여기에 같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일본어학교를 다니기 불편해서 스즈끼리에가 학교와 가까운 곳에 세방을 구해놓았다.일본어학교도 스즈끼리에가 소개한 거다.엊저녁에 세방에 가려고 하다가 여기에 왔다.우리 아침 먹고 세방에 가보자.”
“아침은 여기서 먹지 않겠어요.지금 세방에 가요.”
아버지가 아무 말도 못하고 방을 나가자 나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이웃집 지붕들과 여러 갈래로 뻗은 골목길들은 물기를 촉촉히 머금고 있었고 여러 색상의 차량들과 나이 지긋한 로인 몇명이 낚시용으로 보이는 가방을 메고 빨간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까마귀들은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는 도꾜 어디일가?
“여기는 도꾜도 북구 아까바네(東京都北区赤羽)다.철교 건너편은 사이다마현이다.”
아까바네역까지 걸어나오면서 아버지가 하는 말에 류학서류를 보낸 주소와 수신인의 일본어 한자들이 언뜻 머리속을 스쳤다.나는 그제야 스즈끼리에의 집에 류학서류를 보냈다는 걸 알아차렸다.수신인이 녀자이기에 회사 사장님의 비서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너 엊저녁에 맥주만 마시더구나.배고프겠는데 우리 소바나 먹자.”
메밀국수를 일본어로 소바라 부른다.
아까바네역 작은 우동집의 소바는 국물이 시원했고 소바 우에 얹어놓은 덴뿌라도 맛있었다.
“맛있나?”
“네.”
“아버지도 일본에 온 이튿날 덴뿌라소바를 먹었다.참 맛있더라.”
피는 속이지 못하는가,내가 아버지를 닮았는가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까바네에서 일곱 정거장인 우구이스다니(鶯谷).전철역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2층 아빠트.
그날부터 나의 일본에서의 독신생활이 시작되였다.
한 정거장인 우에노(上野)에 있는 일본어학교를 다니다가 ××대학 경제학부 국제금융학과에 입학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이께부꾸로(池袋)에 있는 우체국은행에 취직했다.한주일 전 증권회사에 취직하여 3년 남짓 근무한 우체국은행을 때려버리고 가와구찌에 이사를 온 것이다.
세월이 빠르다더니 8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늘은 덴뿌라소바를 먹고 싶었다.아까바네 그 우동집을 다시 찾아가고 싶었다.
두부를 랭장고에 넣어두려고 주방에 들어가려다가 벽에 걸린 카렌터에 눈길이 갔다.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있는 다음 주 토요일은 아버지의 생일이다.음력으로 생일을 쇠는 아버지의 생일날자에는 해마다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놓군 했지만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어머니가 중국에 돌아가고 아버지가 시즈오까에 간 후부터는 아버지의 전화도 받지 않았고 메세지 회답도 하지 않았다.아버지는 지금 내가 증권회사에 취직하여 가와구찌에 이사를 온 것도 모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생일날인 다음 주 토요일이 일본에 온 지 8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아까바네에 가서 오랜만에 아버지한테 전화도 하고 덴뿌라소바도 먹을가?
 
나는 주방에 다시 들어가 두부국을 끓였다.엊저녁에 남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덥혀 김치에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점심을 먹고 나니 피곤기가 몰려와 잠자리에 누웠다.
증권회사 면접합격통지를 받은 날,우라와에서 세방을 구하려고 부동산 홈페지를 뒤적이다가 가와구찌역에서 멀지도 않고 원룸이고 방세도 합리한 세방이 있기에 부동산사무소에 문의했더니 가전제품들은 재작년에 사놓고 열흘 전에 이사를 간 사람이 두고간 걸 사용해도 된다고 하기에 그날 오후 집주인을 만나서 통쾌하게 합의를 보았다.우구이스다니 2층 아빠트는 1년이 지난 후부터는 한달에 한번씩 방세를 지불했기에 집주인에게 그저 래일 이사를 간다고,가전제품들은 모두 두고간다고,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전화를 했다.처음 이사를 하는 나는 토요일인 그 이튿날 옷가지들과 필수품들만 트렁크와 가방에 넣어가지고 마치 해외출장을 가는 샐러리맨처럼 양복차림에 전차에 앉아 가와구찌에 왔다.주방용품들과 이불과 요와 베개는 이사를 와서 새것을 사놓았다.
한주일 전 집주인에게 사례금,보증금과 반년치 방세를 지불했다.지금까지 지불한 방세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자였다.
그래도 일본에 금방 온 1년간은 방세도 지불하지 않았잖은가.
일본에 온 이튿날 아버지와 같이 우구이스다니 세방에 갔던 일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세방에 들어서니 집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여있었고 가전제품들과 주방용품들은 물론 이불,요,베개와 카텐들도 새것으로 갖춰져있었다.일본전통식 다다미방이 두칸인 세 식구가 살아도 될 만한 집이였다.
“모두 스즈끼리에가 마련해놓은 것이다.방세도 1년치를 지불했다.한달에 5만8천엔이다.일본어학교는 여기서 한 정거장인 우에노에 있다.월요일인 모레 오전에 보증인인 스즈끼리에가 너를 데리고 입학수속을 하러 갈 거다.우리 좀 있다가 시내에 나가서 쌀도 사고 맥주도 사자.점심에 한잔 해야지.”
“점심에 가게에 안 나가요?”
“오늘은 저녁에 나가도 된다.”
트렁크를 정리하고 아버지와 같이 시내에 나갔다가 점심에 집에 들어왔다.아버지가 료리 몇가지를 만들었다.중국에서 료리사자격증을 따고 큰 식당에서 료리사를 겸하던 아버지는 집에서도 료리를 자주 만들었었다.
아버지를 도와 밥상을 차렸다.
“동우야,오늘부터 너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앞으로 좋은 대학에도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도 취직하기를 바란다.아버지는 너 밖에 없다.전력을 다해 도와줄게.자,건배!”
아버지가 나와 잔을 부딪치고 잔을 굽냈다.
까짓 맥주도 마시지 못할가!오늘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잔을 비웠다.
“스즈끼리에는 어떻게 알게 되였어요?”
스즈끼리에를 빨리 알고 싶었다.아버지가 나를 보고 웃었다.
“좋은 날인데 맥주나 한잔 더 마시자.”
나는 아버지의 잔에 맥주를 다시 따랐다.캔맥주 한개가 어느새 거덜이 났다.잔을 다시 비우고 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너 담배는 안 피우나?”
“안 피워요.”
아버지가 라이터로 마일드세븐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 길게 빨고는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한숨과 같이 담배연기를 내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네살 때 아버지는 북경에 갔다.어느 려행사에서 반년간 가이드를 했는데 한번은 북경에 온 일본인 려행팀의 통역을 내가 맡게 되였다.스즈끼리에는 그때 알았다.작은 꽃방을 꾸리고 있고 중국료리를 특별히 좋아한다는 스즈끼리에는 어머니보다 두살 어리고 결혼도 했는데 애는 아직 없다더라.스즈끼리에가 일본에 돌아간 후  편지거래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련락을 끊지 않고 있었다.일본에 가고 싶었지만 학력과 나이 때문에 류학으로는 갈 수 없었다.그러다가 네가 소학교 4학년 때 일본에 려행을 가게 되였는데 스즈끼리에와 스케쥴 때문에 일본에 도착한 이틀 후에 만나자고 약속했다.그때까지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으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었다.스즈끼리에를 만난 날 저녁에 애도 없는 스즈끼리에가 이미 리혼했고 오빠가 하던 불고기점을 지금 숯불갈비점으로 변신시키고 있는데 사흘 후에 오픈한다는 걸 알게 되였다.그날은 려행팀이 주숙한 호텔에 돌아갔다.후지산에 갔다온 이튿날,그러니깐 숯불갈비점 오픈식이 있던 날 오전에 꽃을 사가지고 축하하러 갔는데 주방에 일손도 적고 주방장도 아직 없기에 내가 거들어주었다.그날 밤 스즈끼리에의 집에 갔고 자기를 영원히 사랑한다면 결혼해주겠다는 스즈끼리에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튿날부터 정식으로 스즈끼리에를 도와주었다.스즈끼리에가 감격해하면서 나를 주방장으로 채용하겠다고 신원보증인으로 나서서 먼저 나의 비자를 연장해주었고 후엔...”
“그럼 스즈끼리에는 지금도 애가 없어요?”
혹시 아버지와 스스끼리에 사이에 애가 있지 않을가 궁금해난 나는 다급히 물었다.
“스즈끼리에는 애를 낳지 못하는 녀자다.애가 생기지 않아 남편과 리혼한 거다.”
조금은 시름이 놓였다고 할가!
아버지와 스즈끼리에 사이에 남자애가 있으면 나와 형제간이 되는 것이다.배다른 형제,그런 형제는 싫었고 없기보다 못했다.
“이번엔 내가 한잔 따라주마.”
나는 맥주를 따르는 아버지를 의혹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네가 중국에서 대학시험을 보지 않고 일본에 빨리 오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스즈끼리에한테 부탁했더니 어느 일본어학교 사무국장과 친구라면서 쾌히 동의하더구나.”
아버지가 피우던 담배를 빈 맥주캔 안에 떨궈넣었다.맥주캔 안에서 바지직 소리가 나더니 연기는 더 피여오르지 않았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나?일본에서 처음 집에 전화를 했을 때 너의 어머니에게 지금 중국에 돌아가면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기에 일본에 있겠다고 했다.너의 생일날에 전화를 하고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제 커서도 오지 않으면 아버지를 찾으러 일본에 가겠다던 너의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아버지가 많이 미웠지?”
아버지가 허허 웃으며 절로 따른 잔을 들었다.
어릴 때 일이 생각난 나는 아버지 먼저 잔을 비워버리고 잔을 탁 소리나게 밥상에 내려놓았다.
“제가 일본에 온 건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어요.어머니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기에 대학시험은 명년에 보기로 하고 아버지와 같이 중국에 돌아가려고 했어요.그잘난 일본어학교를 다니고 싶어 일본에 온 게 아니란 말이예요.중국에서 대학시험을 봤더라면 지금쯤은 어느 중점대학에 갔을 거예요.아버지가 일본녀자와 결혼했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아들한테 부끄럽지도 않아요?어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아버지가 크게 놀란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너 성격이 정말 변했구나.다 큰 너한테 숨길 것도 없지.실은 너의 어머니와 이전부터 감정이 맞지 않았다.몇번이나 리혼하려다가 너한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많이 참으면서 살아왔다.아버지는 좋아하는 녀자도 없었고 려행사 로임카드도 너의 어머니한테 맡겼다.식당에서 나오는 돈으로 너한테 옷도 사주고 책도 사줬다.부부간은 감정이 맞아야 같이 살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스즈끼리에와 결혼하고 지금도 일본에 남아있다는 말이 아니다.일이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지금도 생각하면 꿈만 같다.그래도 아버지는 지금까지 집에 자주 련락을 했고 너의 어머니한테 생활비도 넉넉히 보냈다.너를 위해서였다.네가 돈에 쪼들리지 않고 공부를 잘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였다.공부를 잘하면 먼저 일본어학교에 왔다가 좋은 국립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잖아.생일날에 했던 너의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그래서 네가 고중 3학년 후학기에 들어서자 류학수속을 하라고 한 거다.네가 이젠 일본에 왔기에 아까도 말했지만 아버지는 너 밖에 없다.어머니한테 아버지가 지금 일본녀자와 같이 살고 있으니 좋은 남자를 빨리 만나라고 전화를 해도 된다.너의 어머니가 나를 증오하든 다른 남자를 찾든 상관하지 않겠다.생활비도 더이상 보내지 않겠다.”
아버지가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퀭하니 천정만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툼질하느라 집안 꼴이 말이 아닐 때도 많았다.그럴 때마다 나는 꽥 소리를 지르고 방에 들어가거나 옆집에서 다 들으라고 집문을 활 열어놓군 했다.다른 집 부모들과 달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목한 부부가 아니라는 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유순해보이지만 성격이 나쁜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많이 참았다는 건 사실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어머니와 감정이 맞지 않았다고 해도 어떻게 일본녀자와 결혼할 수 있단 말인가?그럼 스즈끼리에라는 일본녀자와는 그렇게도 감정이 잘 맞았단 말인가?
엊저녁에 메뉴를 보니 몇가지 중국료리들도 있었다.스즈끼리에가 아버지를 리용하려는 것이였고 아버지도 일본에 있기 위해 스즈끼리에와 결혼한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본에 간 후에는 아버지와 다툰 일을 몹시 후회하면서 지체장애인인 작은고모와 같이 농촌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한테 아버지가 있을 때보다 자주 다녔고 할머니와 작은고모를 집에 모셔와서 명절을 같이 쇠기도 했다.고중 1학년 음력설날,할머니는 전화가 걸려온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훌륭한 며느리라고 칭찬하면서 빨리 돌아와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말씀하셨다.내가 할머니의 눈물을 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할머니는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하시고 그해 여름에 돌아가셨다.할머니의 장례식날,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슬프게 통곡했다.
이런 말을 아버지에게 해야 하는가?
나는 할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불법체류이기에 일본에서 오지 못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기 싫어서 중국에 오지 않은 것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화해시키기에는 이미 늦었다.
너무나도 늦어버린 뒤였다.
안타깝다고 해야 할가,슬프다고 해야 할가?
덩그러니 혼자 남은 어머니만 불쌍하게 생각되였다.
그래도 어머니가 나를 키워오셨잖은가?이제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아버지가 일본녀자와 같이 살고 있다고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야 하는가?
아버지가 자리에 되앉아 나에게 맥주를 다시 따르려고 하자 나는 제꺽 아버지에게 맥주를 따랐다.
“지금까지 너의 어머니와 너를 속여서 미안하다.”
“그 후 숯불갈비점은 장사가 잘됐어요?”
나는 화제를 돌려버렸다.방금 전에는 미안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인기가 있어 1년 내에 스즈끼리에의 오빠한테서 빌린 돈을 다 갚았다.이제 스즈끼리에의 목표는 고향인 시즈오까에 가서 큰 해산물가게를 경영하는 것이다.”
그럼 아버지도 시즈오까에 가는가고 물으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가 가방에서 1만엔짜리 지페 열장을 꺼냈다.
“먼저 이번 달 생활비로 쓰거라.스즈끼리에가 일본어학교에서 입국관리국에 올려보낸다는 경비지불서에 한달에 5만엔씩 1년간 생활비를 지불하겠다고 싸인하고 도장까지 찍었다.돈 근심은 하지 말고 먼저 일본어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어를 잘 배우거라.아버진 네가 일본에 오니 정말 기쁘다.자,한잔 멋지게 마시자!”
“저녁에 일 보러 가시기에 맥주는 그만 마세요.”
“일본에 와서 낮술은 오늘 처음이다.그럼 이 한잔만 마실가?”
별안간 아버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목소리를 들으니 스즈끼리에였다.아버지가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스즈끼리에가 저녁은 너와 같이 먹고 싶다는구나.지금 손님들이 많기에 가게에 가야겠다.”
“저녁은 여기서 혼자 먹겠어요.일 보러 가세요.”
“저녁에 아버지와 같이 잘가?”
“오늘은 혼자 자고 싶어요.”
“그럼 래일 다시 올게.”    
아버지를 큰길까지 바래주고 집에 들어온 나는 10만엔을 어떻게 쓸가 궁리해보았다.
그 무렵 10만엔은 인민페로 7천원이 넘는 돈이였다.
3만엔만 이번 달 생활비로 남겨두고 7만엔은 어머니에게 보내드리고 싶었다.올여름부터 공장이 불경기여서 한달에 두주일 밖에 공장에 나가지 못하는 어머니였다.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한 첫 로임이라고 하면 어머니도 기뻐하실 것 같았다.아직 학생증도 발급받지 못했고 일본어도 잘하기 못하기에 당분간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겠지만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생활비를 더이상 보내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내가 앞으로 어머니한테 다달이 생활비를 보내드릴 것이다!
돈은 후에 어머니에게 보내드리기로 하고 나는 주방에 들어가 료리들을 맛보았다.
빨간 당근과 파란 피망을 넣어 색상이 보기 좋은 돼지고기료리와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에 감자를 넣은 료리는 참말로 맛있었다.오징어볶음도 맛있었고 달걀파전도 맛있었다.이전에 집에서 먹던 아버지가 만든 료리들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났다.
전기밥가마에서 취사완료음이 들려왔다.
오늘은 밥도 맛있었다.일본입쌀은 고향입쌀처럼 맛있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나는 접시들에 랩을 씌워놓고 집문을 나섰다.모레부터 매일이다싶이 드나들 우에노에는 가지 않기로 하고 전철역에서 로선도와 료금을 보고 도꾜역까지 가는 티켓을 끊었다.도꾜역에서 내려 역전광장이며 부근의 멋진 풍경들을 한참 구경하고 다시 신쥬꾸(新宿)역에 가서 서너시간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어둑컴컴한 밤에야 집에 들어왔다.좀더 일찍 들어올 수도 있었는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신쥬꾸역에서 야마노데센(山手線) 상행선과 하행선을 구별하지 못해 두번이나 전차를 갈아타다 나니 거의 한시간이나 지체했던 것이다.
나는 촌놈이구나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점심에 남은 밥과 나머지 료리들을 한데 비벼서 배가 터지게 저녁을 먹었다.저녁을 먹고 나서 텔레비죤을 한참 보다가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스즈끼리에는 도대체 어떤 녀자일가?아버지가 스즈끼리에한테 모든 걸 고스란히 바치고 있는 게 아닐가?
어쩐지 나의 앞날보다 아버지가 더 근심되였다.
아버지를 그냥 미워해야 하는가?일본에 류학으로 온 바엔 일본어학교를 다니다가 좋은 대학에도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도 취직해볼가?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자정이 거의 되여서야 잠들었다.
일본에 온 이튿날 신쥬꾸역에서 야마노데센을 두번이나 갈아탔던 일을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저도 모르게 허구픈 웃음이 흘러나왔다.
낮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잠기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나는 일어나서 방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반시간이 지났을가,집문을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에 문을 여니 옆집 스기모도였다.그녀의 손에 곱게 포장한 선물함이 들려있었다.이사를 왔다고 이웃에 나눠주는 선물인 것 같았다.
“하야시상,보잘 것 없지만 받아주시면 고맙겠어요.3호실에는 누구도 없더군요.4호실 다나까상한테는 드렸어요.”
4호실 뚱보녀인의 성씨가 다나까인지 나까다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3호실에는 브라질에서 온 부부가 살고 있어요.어제 요꼬하마에 놀러간다더군요.미안하지만 이게 뭔가요?”
“소까센베이예요.”
소까(草加)센베이는 사이다마현 소까시에서 만드는 일본의 유명한 과자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선물을 받았다.
“하야시상은 저의 동생과 나이가 비슷해보이네요.동생은 스물일곱살이예요.”
“저도 스물일곱살입니다.”
“그렇군요.부모님은 지금 어디에 계세요?”
“아버지는 지금 시즈오까에 있고 어머니는 중국에 있습니다.”
나는 그저 시즈오까에 있다고 대답했던 걸 인츰 후회했다.
“어머니가 중국에 계세요?”
“네.”
그녀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저의 어머니도 중국에 있어요.지금 북경에 있어요.”
“저의 어머니는 천진에 있습니다.헌데 스기모도상의 어머니는 왜 북경에 계세요?”
“북경이 고향이예요.”
환한 빛줄기가 섬광처럼 뇌리를 스쳐지났다.
“하야시상은 고향이 어딘가요?”
나는 주저도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중국어로 말했다.
“저의 고향은 길림성 연변입니다.저는 림동우라고 합니다.”
그녀가 흠칫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네?하야시상을 일본인으로 알았어요.그럼 류학으로 왔다가 증권회사에 취직했어요?”
그녀도 중국어로 물었다.
“네,저는 중국 조선족입니다.”
“그래요?반가워요.저는 장미진이라고 해요.일본인과 결혼했지만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이 듣기 좋았다.
“정말 반갑습니다.괜찮으시면 커피라도 같이 마시면서 얘기를 좀더 나눌가요?전철역 앞 큰길 건너편 빌딩 2층에 커피숍이 있더군요.”
“그래요.그럼 거기서 만나요.”
그녀가 돌아가자 나는 다시 옷을 챙겨입고 집문을 나섰다.
전철역 앞 큰길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면 영어로 멋지게 휘갈겨 쓴 간판이 한눈에 안겨오던 커피숍.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커피숍에는 잔잔한 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창문 옆 테블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녀학생 셋이 책을 보고 있었고 구석 쪽 테블에는 40대 남녀가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웨이트리스가 자리를 안내했다.
얼마 안 지나 그녀가 커피숍에 들어섰다.
나는 아메리카노를,그녀는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아드님은 몇살인가요?이름은 뭔가요?”
“열한살이예요.이름은 히꼬(彦)예요.”
“히꼬 아버지는 오늘 보이지 않던데요.출장 가셨어요?”
“석달 전에 차사고로 그만...”
“네?”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대단히 실례했습니다.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다나까상도 물어보기에 애아빠가 오사까지사에 파견되였다고 했어요.다나까상과는 둬마디 인사만 나눴을 뿐이예요.부모님은 지금 뭘 하세요?”
“아버지는 지금 스즈오까 어느 해산물가게에서 일하고 있고 어머니는 천진 어느 약업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먼저 간단히 자아소개를 했다.그녀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저의 고향은 북경 순의구(顺义区)예요.저도 먼저 일본어학교에 왔다가 ××대학 경영학부에 진학했어요.대학을 졸업하고 도꾜 이다바시(板橋)에 있는 마케팅회사에 취직했어요.히꼬 아버지인 스기모도는 저의 대학 2년 선배였어요.결혼해서 아까바네에서 13년 살았어요.히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출퇴근할 때마다 히꼬 아버지와 같이 거닐었던 추억이 떠오르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오고 동네사람들을 보기도 힘들었어요.히꼬도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기에 오늘 가와구찌에 이사를 온 거예요.”
“정말 안 됐군요.집은 아까바네역 서구 쪽에 있었어요?”
“네,왜요?”
“아,아닙니다.이전에 서구 쪽에 한번 가본 적이 있어서요.”
숯불갈비점이 서구 쪽에 있었던 것이다.
주문한 커피가 올라왔다.
나는 잠간 그녀의 아들 히꼬를 생각해보았다.
내가 열한살 때 아버지가 일본에 갔지만 히꼬는 열한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린 히꼬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겠어요.”
“히꼬가 불쌍하죠.”
“히꼬를 이 동네 소학교에 전학시키는가요?”
“한 정거장이니 괜찮겠지만 이제 전학시키려고 해요.히꼬는 중국어도 잘해요.저는 스기모도미진으로 호적에 등록되여있지만 히꼬한테도 어머니는 중국인이라고,이름은 장미진이라고 말해요.”
“일본인과 결혼한 외국인 대부분이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누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는 그녀를 누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누님이라 했어요?고마워요.그럼 저도 동우씨를 친동생처럼 대하겠어요.”
“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지금 북경 모 전력회사에 다녀요.저보다 네살 어린 녀동생 혜진은 소학교 교원이예요.한가지 여쭤봐도 될가요?지금 녀자친구 있어요?”
“없습니다.커피 드세요.”
그녀가 커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의 사촌녀동생이 지금 사이다마대학에 다녀요.명년 3월에 졸업해요.”
사이다마대학은 국립대학인데 우리와에서 한 정거장인 기다우라와(北浦和)에 있었다.
“그 애 이름은 장예진이예요.예쁘고 동우씨보다 세살 어려요.아까 집을 나오면서 오늘 가와구찌에 이사를 왔다고 전화를 했더니 오늘 저녁 우리 집에 놀러오겠다더군요.한번 만나보지 않겠어요?”
나는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시무룩이 웃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웃는 걸 보니 만나보고 싶어하는군요.만나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와 말해요.헌데 아까는 왜 집이 아까바네역 서구 쪽에 있었는가고 물어보셨어요?”
“그건 다름 아닌 아버지가 일하던 숯불갈비점이 서구 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아버지는 제가 열한살 때 일본에 와서 숯불갈비점 점장인 일본녀자와 결혼했습니다.주방장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3년 전에 점장과 같이 시즈오까에 갔습니다.”
그녀가 다시 놀라워했다.
“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숯불갈비점이 있었는데 점장이 녀자였어요.1년에 한두번 꼴로 다녔기에 인사를 나눌 정도는 아니였지만 성씨가 스즈끼라는 건 알아요.”
“맞습니다.스즈끼리에입니다.”
“그렇군요.그럼 키가 크고 잘 생기신 분이 동우씨 아버지였군요.두분이 같이 걸어가는 걸 여러번 봤어요.그러고 보니 동우씨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군요.”
“지금도 그 숯불갈비점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스시점으로 되였어요.그럼 오늘 저녁 예진이와 같이 거기로 갈가요?예진이가 스시를 좋아해요.”
나는 거기로 가보고 싶었다.장예진이라는 녀자를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였다.오늘 아까바네에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된 일이였다.
“그럼 그럽시다.저녁에 히꼬도 데리고 오세요.”
커피숍을 나와서 나는 서점에 들러보겠다고 말하고는 전철역 주위를 한참 거닐다가 집에 들어갔다.
 
그날 저녁,약속시간 먼저 아까바네역에 도착하니 플랫트홈에서부터 그 옛날 우동집의 덴뿌라소바냄새가 풍겨오는 듯했다.플랫트홈에서 계단을 내려가니 우동집이 보였다.이 시간대에도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며 서서 우동이나 소바를 먹는 사람들이 대여섯명이나 있었다.
덴뿌라소바는 다음 주 토요일에 먹기로 하고 출구를 나온 나는 그만 어리둥절해졌다.거리의 풍경이 너무나도 낯설었다.숯불갈비점이 어느 위치에 있었던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길치도 아닌 내가 왜 이럴가?
한참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그제야 기억이 떠올라 앞으로 내처 걸었다.이제 저 앞 자주색 빌딩을 지나 왼쪽으로 굽어들어 다시 노란색 빌딩이 보이는 큰길에서 신호등을 건너면 된다.
신호등을 건너 다시 앞으로 걷다가 오른쪽으로 굽어드니 옛 숯불갈비점이 보여왔다.간판은 이미 스시점으로 바뀌였다.     
장장 8년만이 아닌가!
가게 문앞에 서있노라니 스즈끼리에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일본에 온 지 사흘이 되던 날 오전,그녀와 같이 일본어학교 입학수속을 마치자 간단한 일본어시험이 있었다.초급,중급,상급반을 편성하는 시험이였다.시험이 끝나서 밖에 나오니 그녀가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뒤좌석에 다시 앉았다.그녀가 시험이 어떻게 되였는가고 묻자 상급반이고 래일부터 정식으로 학교에 간다고 대답했다.차가 학교 골목을 벗어나 드넓은 신작로에 들어서자 그녀는 룸미러로 나의 기색을 살펴보면서 쉴새없이 주절거렸다.
“학교가 마음에 들어요?”
“네.”
“선생님들도 상냥하시죠?”
“네.”
“상급반은 오후 세시 반에 수업이 끝난다고 들었어요.맞아요?”
“네.”
“아버지가 하야시상을 일본에 데려오겠다고 하기에 제가 신원보증인으로 나섰어요.아까 만난 사무국장은 저의 친구예요.”
사무국장은 그녀와 나이 비슷한 녀자였다.
“입학원서는 일본어학교 중국담당이 대필했어요.”
내가 대답이 없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신원보증인의 서류는 사무국장이 시키는 대로 작성했어요.중국에서 하야시상을 만난 걸로 했어요.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죠?”
아버지가 고중졸업예정증명서,성적표,일본어학습증명서 등 서류와 나의 증명사진 외에 어머니의 사진도 필요하기에 몇년 전에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도 보내달라고 했다.그래서 재작년에 어머니와 같이 백화상점에 갔다가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나를 만났다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작년에 볼일 있어 대련에 갔다왔어요.저의 려권 복사본도 입국관리국에 제출했어요.그 사진을 유용하게 사용했어요.무슨 뜻인지 알만 하죠?”
나는 무슨 뜻인지를 인차 알아차렸지만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일본에 왔으니 그 사진의 내막을 몰라도 좋아요.저는 하야시상의 아버님을 존중하고 사랑해요.하야시상을 하나 밖에 없는 아들로 받아들이고 싶었어요.저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돼요.”
자기를 어머니라고 불러달라는 소리가 아닌가!
왠지 그녀의 목소리마저 듣기 싫어졌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춰섰다.
“학생증은 발급받았죠?”
“네.”
“보여줘요.”
나는 책가방에서 학생증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아버지보다 더 멋지군요.아버지도 젊었을 때는 이렇게 멋졌겠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학생증을 받아서 가방에 도로 넣었다.
그녀와 같이 외국인등록수속도 하고 은행카드도 신청하고 핸드폰도 사다 나니 열두시가 거의 되였다.
“숯불갈비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으면 오늘 저녁부터라도 좋아요.”
“아닙니다.”
아르바이트를 빨리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가게에서는 하기 싫었다.
“호호호,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가 간드러지게 웃었다.
“그럼 지금 저와 같이 가요.”
“어디로요?”
“가보면 알 거예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가,한참 차를 내달리다가 그녀가 어느 주유소 앞에서 차를 멈춰세웠다.
“같이 들어가요.”
노란 유니폼에 노란 모자까지 쓴 주유소 종업원들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그녀와 같이 사무실에 들어갔다.
“아까 말하던 학생을 데리고 왔어요.하야시상,나오끼사장님이예요.”
핸드폰을 사고 화장실에 갔다가 주차장에 왔을 때 그녀가 누구한테 전화를 하면서 시급은 얼마인가고 물어보는 건 들었지만 주유소 사장한테 전화를 할 줄은 몰랐었다.
“중국 류학생 하야시입니다.잘 부탁드립니다.”
“나오끼입니다.어서 앉으세요.”
나오끼사장은 40대 좌우의 열정적이면서도 겸손해보이는 미남이였다.
나는 스즈끼리에의 분부 대로 려권과 학생증을 꺼냈다.그녀가 금방 외국인등록수속을 했다고 덧붙였다.
나오끼사장이 려권과 학생증을 복사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래일부터 나오라고 했다.아르바이트시간은 오후 다섯시부터 저녁 열시까지였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나는 나오끼사장에게 허리 굽혀 고맙다고 인사를 올렸다.
그녀가 조수석에 앉으라고 하기에 마지못해 조수석에 앉았다.그녀가 나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려고 하자 나는 절로 안전벨트를 채웠다.차가 다시 속력을 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조수석에 앉으니 뒤좌석에 앉았을 때와는 달리 우핸들이고 좌측통행하는 차가 중앙선을 날아넘어 마주오는 대형트럭과 충돌이라도 할 것 같은 막연한 착각까지 들었다.
“시급도 일본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800엔이예요.”
“여기가 어딘가요?”
“우구이스다니에서 두 정거장인 다바다예요.”
나는 주유소가 전철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면 아르바이트시간이 늦어지지 않을가 못내 근심되였다.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윽하여 그녀가 다바다(田端)라는 전철역 간판이 보이는 큰길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춰세웠다.주유소는 다바다역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이번 달 생활비예요.”
그녀가 돈지갑에서 1만엔짜리 지페 다섯장을 꺼냈다.
“제가 한달에 5만엔씩 1년간 생활비를 지불하겠다고 경비지불서에 싸인하고 도장까지 찍었어요.이제 카드가 나오면 카드번호를 알려주세요.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사양 마시고 전화하세요.”
아버지도 그녀도 거짓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나는 돈을 받았다.
“오늘은 모든 일이 순조로왔군요.하야시상은 운도 좋고 돈복도 있군요.아,벌써 오후 한시가 넘었네요.우리 점심 먹으러 가요.”
숯불갈비점에 가려는 게 아닐가?
나는 빨리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아닙니다.저는 배고프지 않습니다.일 보러 가세요.여기서 내려도 되나요?”
“여긴 안 돼요.저 앞에 가서 내려요.”
신호등을 지나서 그녀가 길옆에 차를 세웠다.
“아버지도 기다리고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어버리고 오늘 고마웠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몇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숯불갈비점에는 가지도 않았다.아버지도 그녀도 보기 싫었기 때문이였다.주유소 아르바이트는 한주일 하다가 우에노에서 다른 아르바이트를 절로 구했기에 때려버렸다.그녀한테서 전화가 걸려오자 생활비도 이젠 필요없다고 했다.그녀에게 내가 어떤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오늘 막상 여기에 오니 생각이 달라졌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년에 한번씩 비자를 연장할 때마다 신원보증인이 되여준 스즈끼리에,취직했으니 이젠 신원보증인의 임무를 완성했다며 홀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에 돌아가겠다던 스즈끼리에,3년 전 아버지와 같이 시즈오까에 간 스즈끼리에...
 
“니호우!”
어린이의 목소리에 와뜰 놀라 뒤돌아보니 히꼬였다.스기모도 옆에 날씬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녀자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히꼬쨩이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로 인사를 하는구나.”
나는 웃으며 히꼬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제가 삼촌이라 불러도 되나요?”
“되구말구.히꼬쨩이 중국어를 정말 잘하는구나.”
스기모도 옆의 녀자가 곱게 웃었다.
“림동우입니다.”
“장예진이예요.반가워요.”
“반갑습니다.자,들어갑시다.”
가게에 들어서니 테블마다에 낮게 드리워져있던 환풍기가 보이지 않고 테블이 새로 바뀌였을 뿐 구조도 변함이 없었고 카운터와 주방도 예전했다.천정에 달린 전등들과 벽에 걸린 장식품들도 그대로였다.안내하는 자리에 앉고 보니 면바로 이전에 내가 앉았던 자리였다.
나는 히꼬를 옆에 앉혔다.
주문을 하면서 스기모도가 뭘 마시겠는가고 나에게 묻자 나는 예진에게 물었다.
“예진씨는 뭘 마시고 싶어요?청주 마시겠어요,아니면 맥주 마시겠어요?”
“저는 청주는 마실 줄 몰라요.”
“그럼 맥주 마실가요?”
“그래요.”
주문한 스시들이 올라왔다.나는 맥주를 따르고 잔을 들었다.손님들이 있기에 목소리를 낮추었다.
“오늘 누님과 예진씨를 만나서 반갑습니다.중국어도 잘하는 히꼬는 정말 귀엽습니다.자,마십시다.”
내가 절반 마시자 스기모도와 예진이도 절반 마셨다.
“스시를 드세요.”
“네.”
예진이가 저가락을 들었다.스기모도는 나와 예진이를 번갈아보면서 흐뭇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히꼬쨩도 많이 먹어.”
“하이.”
히꼬의 입에서 하이,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히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일본어로 물었다.
“소학교 몇학년생이니?”
“4학년생입니다.”
스기모도가 잔을 들었다.
“이 잔을 마시고 제가 한잔 따를게요.예진이도 마셔.”
셋은 잔을 비웠다.스기모도가 맥주를 따랐다.
“오늘 동생을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요.자,마세요.”
스기모도가 잔을 비웠다.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괜찮으세요?”
“오늘은 좀 마시죠.예진이도 다 마셔.”
옆에서 부지런히 스시를 집어먹던 히꼬가 다시 일본어로 말했다.
“어머니는 어제밤에도 마셨어요.”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스기모도가 일본어로 히꼬를 꾸짖었다.
“그만 마셔라고 말렸는데도 아까바네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면서 맥주를 마시다가 울면서 위스키까지 마셨어요.저도 위스키를 마시고 싶었어요.어제밤에는 저도 취하고 싶었어요.”
예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히꼬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
“오늘 동생 앞에서 망신했네요.”
“아닙니다.누님.”
“저를 한잔 주세요.”
나는 스기모도에게 맥주를 따랐다.
“동생과 한잔 하고 싶어요.원샷해요.”
그녀가 단숨에 잔을 비우자 나도 잔을 비웠다.
“예진이가 마음에 들어요?”
나는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예진씨는 좋은 녀자로 보입니다.사귀고 싶습니다.”
“예진이에게 동생의 얘기를 했어요.예진이도 만나보고 싶어하더군요.”
예진이가 히꼬를 데리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히꼬쨩,빨리 먹어.”
히꼬는 먹을 념을 하지 않고 뿌루퉁해있었다.예진이도 웃으며 빨리 먹으라고 했지만 못 들은 척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히꼬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었다.
“저 먼저 갈게요.둘이 재미있게 얘기 나눠요.”
그녀가 히꼬의 손을 잡아끌고 가게를 나가려다가 카운터 앞에서 멈춰섰다.뒤따라간 나는 결산하려는 그녀를 말렸다.
“삼촌,또 만나요.안녕히.”
밖에 나가서 히꼬가 다시 중국어로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나는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그녀와 히꼬의 뒤모습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그녀는 오늘 나와 예진이를 위해 오고 싶지 않은,어제까지 13년 살았던 집 부근에 있는 이 가게에 온 것이였다.비록 8년 전 내 나이는 열한살이 아닌 열아홉살이였고 오늘 비도 내리지 않고 스즈끼리에가 앉았던 자리에 예진이가 앉아있었지만 히꼬의 모습이 스즈끼리에의 말을 못 들은 척 창밖만 내다보고 있던 그때의 나를 방불케 했다.히꼬가 방금 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만 했다.
그만 뒤돌아서서 스즈끼리에의 옛집에 가보려고 앞으로 걸어가던 나는 예진이가 기다리는 것 같아 가게에 다시 들어갔다.
“오늘 미안해요.언니는 형부를 잃고 나서 많이 속상해했어요.”
“저는 누님을 리해합니다.누님은 좋은 분입니다.”
“히꼬는 언니한테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어요.혜진언니가 중국에서 소학교 어문교과서를 보내와요.”
“누님의 녀동생이 소학교 교원이라더군요.”
“네,아,제가 한잔 따라드리죠.”
나는 맥주를 따르는 예진이를 눈여겨보았다.
옅은 화장만 했고,귀걸이도 걸지 않았고,매뉴큐어도 바르지 않았지만 정말 예쁘고 마음에 쏙 드는 녀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먼저 우체국은행에 취직했다가 우라와에 있는 증권회사에 취직했다고 들었어요.좋은 대학 경제학부를 나오셨군요.”
“예진씨는 사이다마대학 어느 학부인가요?”
“문학부예요.명년 3월에 졸업하는데 지금 석사시험준비를 하고 있어요.”
“문학부면 혹시 소설을 쓰는가요?”
“소설에 흥취는 있지만 아직 한편도 발표하지 못했어요.”
예진이가 잔을 들자 나도 잔을 들었다.
“저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해요.절반 마실게요.”
나는 웃으며 잔을 비웠다.예진이가 고개를 돌리고 절반 마셨다.
“예진씨도 고향이 북경인가요?부모님은요?”
“저의 고향은 북경 창평구(昌平区)예요.아버지는 고중 어문교원이고 어머니는 중학교 수학교원이예요.미진언니가 신원보증인이 되여 먼저 일본어학교에 왔다가 사이다마대학에 진학했어요.”
“누님이 신원보증인이였군요.”
“네,언니의 신세를 많이 졌어요.”
나도 신원보증인인 스즈끼리에의 신세를 많이 졌잖은가.
예진의 말에 나는 얼굴이 뜨거워났다.
“저의 학급에 길림성 연변에서 온 조선족 녀학생도 있어요.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는 리(李)상과 룸메이트예요.저는 지금 리상한테서 조선어를 배우고 있어요.조선어가 정말 재미있어요.”
“그래요?리상과 기숙사에 같이 있는가요?”
“세방에 같이 있어요.미진언니가 처음에 오오미야에 세방을 구해줘서 3년간 독신으로 있다가 금년 봄에 기다우라와에 이사를 오면서 리상과 같이 있어요.”
기다우라와에서 세 정거장인 오오미야(大宮)역은 우라와나 가와구찌역보다 규모가 엄청 컸다.작년에 볼일이 있어 오오미야에 두번 갔었다.  
“그렇군요.오오미야역은 굉장히 크더군요.”
“사이다마현에서 제일 큰 전철역이예요.”
얘기만 나누다 나니 예진이가 스시를 좋아한다던 스기모도의 말을 그만 잊고 있었다.
“어서 스시를 드세요.”
“스시를 좋아하세요?”
스시와 사시미를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합니다.같이 먹읍시다.”
예진이와 같이 먹어서인지 오늘은 스시가 맛있었다.오늘처럼 맛있는 스시는 처음이였다.
식사를 마치고 아까바네역에 도착했을 때 예진이의 핸드폰이 울렸다.예진이가 집 가는 길이고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하겠다는 걸 보아 스기모도한테서 걸려온 전화로 짐작되였다.
나는 예진이와 같이 기다우라와역에서 내렸다.
“사이다마대학은 동구 쪽에 있는가요?”
“서구 쪽에 있어요.”
“그럼 예진씨 집도 서구 쪽에 있는가요?”
“동구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요.저는 괜찮으니 이젠 돌아가세요.”
“괜찮습니다.집앞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예진이네 집은 우라와고중을 지나 패밀리마트가 있는 큰길 건너편 골목 안에 있었다.
“다 왔어요.저기 2층이예요.”
예진이가 가리키는 2층을 올려다보니 전등이 켜져있지 않았다.
“리상은 아르바이트하러 갔어요?”
“네,열시 넘어서 들어와요.오늘 고마웠어요.”
나는 예진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예진씨를 좋아합니다.”
“저도 오늘 많이 생각해봤어요.솔직히 저는 석사학위를 따면 중국에 돌아가서 교원을 하고 싶어요.”
“그럼 저도 중국에 돌아가겠습니다.일본에 그냥 있고 싶지 않습니다.중국 큰 도시에서 발전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북경이면 더 좋죠.예진씨와 언제든지 같이 있고 싶습니다.”
“동우씨,고마워요.”
나는 예진이를 꼭 끌어안았다.
첫눈에 반한 장예진을 사랑하고 싶었다.앞으로 장예진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예진씨를 사랑합니다.”
나는 입술을 천천히 예진이의 입술에 가져갔다.
처음 만난 련인들이 키스를 할가?
뜨거운 첫 키스였다.
 
이튿날 아침,나는 히꼬를 데리고 전철역 플랫트홈에서 예진이가 탄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어제 예진이가 스시점에서 히꼬를 밖에 데리고 나가 오늘 도꾜 디즈니랜드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스기모도는 오늘 집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겠다며 저녁에 예진이와 같이 집에 와서 식사를 하라고 했다.
마이하마(舞浜)에 있는 디즈니랜드에는 대학 1학년 때 한 학급 중국 류학생들과 같이 한번 와본 적이 있었다.히꼬도 두번째였지만 예진이는 처음이였다.일요일이여서 사람들이 많았다.먼저 히꼬가 다시 보고 싶다는 여러 곳에 갔다가 점심은 야외바베큐를 먹었다.철판에 구워진 소바를 예진이가 하는 대로 포크에 돌돌 감아서 먹는 히꼬를 보면서 나는 이제 어디에 가서 더 놀고 싶은가고 물었다.
“락타를 타보고 싶어요.”
“그럼 예진씨가 히꼬를 안고 같이 타요.”
“동우씨가 타요.저는 락타가 무서워요.”
내가 웃자 히꼬도 깔깔깔 웃었다.
디즈니랜드에서 히꼬를 데리고 재미있게 놀다가 스기모도네 집에 도착하니 저녁 다섯시가 넘었다.내가 사양하자 스기모도가 빨리 들어오라고 하고 히꼬도 나의 손을 잡아끌기에 할 수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나는 예진이와 같이 전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아버지와 스즈끼리에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아버님께서 많이 노여워하시겠어요.그리고 스즈끼상도 서운해하잖을가요?”
“저도 지금 마음에 걸려요.다음 주 토요일은 아버지의 생일인데 제가 일본에 온 지 8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해요.그날 아침 아까바네에 가서 아버지한테 전화도 하고 덴뿌라소바도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스즈끼리에와도 통화를 해야죠.같이 갈가요?”
“그래요.”
예진이는 오오미야역 동구 쪽에 있는 어느 세븐일레븐에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나흘간은 매일 예진이에게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예진이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금요일 저녁,예진이와 같이 기다우라와역 서구 부근에 있는 회전스시점에서 저녁을 먹고 밖에 나온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전화를 한 지 한주일이 되네요.오늘 좋은 소식 알려드릴게요.저 지금 녀자친구를 사귀고 있어요.북경녀자예요.”
“그래?정말 반가운 소식이구나.우리나라 수도 북경의 녀자를 사귀면 좋지.대학생이니?”
“네,명년에 졸업해요.제가 전화를 바꿔드릴게요.”
회전스시점에서 예진이의 동의를 거쳤던 것이다.
“그래,목소리라도 빨리 듣고 싶구나.”
나는 예진이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어머님,안녕하세요.장예진이예요.”
옆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흥분된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흐뭇한 심정으로 주위의 야경을 둘러보았다.
몇분이 지나서 예진이가 나에게 전화를 바꿨다.
“아버진 잘 있나?”
어머니가 아버지를 물어보는 건 천진에 간 후 처음이였다.
“잘 있겠죠뭐.이젠 전화를 한 지도 3년이 돼요.”
“뭐야?그러면 되나?그래도 친아버지가 아니냐?래일이 아버지의 생일이다.래일은 꼭 전화도 하고 저녁에 같이 식사도 하거라.”
어머니는 아버지가 시즈오까에 간 걸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 오늘 왜 이러세요?”
“혼자 있으니 너의 아버지가 생각난 거다.”
“혼자라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며칠 전에 그 분이...뇌출혈로 불시에 돌아가셨다.”
“네?...”
어머니가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어떻게 위안했으면 좋을지 몰라 잠간 생각해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그럼 일본에 오세요.제가 모실게요.”
“아니야.일본어도 모르는 내가 일본에 가서 뭘 하겠나?중국에 그냥 있겠다.오늘은 이만 끊어.”
어머니가 전화를 끊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이제 어머니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던 토요일 아침이였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큰비가 내린다고 했다.밖에 나와보니 먹장구름이 머리 우로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예진이와 같이 아까바네역에서 내렸다.
사실 그동안 덴뿌라소바를 먹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일본어학교와 대학을 다닐 때도 여러번 먹었지만 일본에 온 이튿날 아버지와 같이 먹었던 덴뿌라소바보다는 맛없었기에 덴뿌라소바 대신 다른 소바나 우동을 먹었었다.
오늘도 우동집에는 사람들이 많았다.계단을 내려가려다가 사람들이 없는 플랫트홈 제일 구석 쪽으로 걸어갔다.
“아버지를 놀라게 하고 싶어요.예진씨 핸드폰을 빌려줘요.”
나는 예진이의 핸드폰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버튼을 누르는 나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모시모시.”
아버지의 목소리는 예전과 달리 약간 석쉼했다.
“아,아...”
3년만에 하는 전화여서일가!
아버지라는 세 글자 쉬운 말도 나가지 않았다.
“모시모시.”
나는 이번엔 힘내서 말했다.
“아버지!”
“동우?내 아들 동우 맞나?”
“네,아버지.생일 축하해요.그동안 전화를 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해요.”
“생일?오늘이 나의 생일인가?고맙다.전화번호를 바꿨구나.그러기에 전화도 받지 않지.”
“아니예요.지금 녀자친구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요.”
“녀자친구 있나?”
“네,사이다마대학 문학부 4학년생인 북경녀자예요.”
“북경녀자?참 좋구나.며느리를 지금이라도 만나보고 싶구나.근데...”
“아니예요.다음 주 토요일에 같이 시즈오까에 가서 인사를 드리기로 했어요.”
아까 오면서 다음 주 토요일에 시즈오까에 가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예진이도 같이 가겠다고 했었다.
“여기에 오지 말라.”
아버지의 노여움이 아직 가셔지지 않았을가?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래일 갈게요.오늘은 좀 일이 있어서요.오늘 어떻게 보내세요?”
오늘 저녁 스즈끼리에가 집에서 해산물들을 푸짐히 차려놓고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아버지와 같이 어느 고급레스토랑에서 즐겁게 보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지금 어딘가요?혹시 편찮으신가요?”
“내가 아니라 스즈끼리에가...”
“스즈끼리에가 왜요?”
“지금 병원이다.석달 전에 스즈끼리에가 페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네?해마다 건강검진을 하잖아요?페암 말기라니요?”
“여기에 온 후 일이 바빠서 검진을 하지 않았다.이제 며칠 남지 않은 것 같다.마지막으로 전화를 바꿔줄게.”
예진이가 불안한 기색으로 나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나는 예진이에게 스즈끼리에의 병세를 알려주고 래일 시즈오까에 가보자고 말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핸드폰에서 스즈끼리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야시상?”
“네.”
“북경녀자를 사귀고 있다고 아버지한테서 들었어요.축하해요.”
스즈끼리에의 목소리가 너무 낮아 겨우 알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결혼은 언제 해요?”
“몇년 후에 하려고 합니다.”
나는 핸드폰을 귀에 바짝 가져다댔다.
“그럼 결혼하는 걸 보지 못하는군요.제가 이전에 하야시상을 하나 밖에 없는 아들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했죠...오늘 저를 어머니라고 한번만 불러줄 수 있어요?...흑흑흑...”
아버지가 스즈끼리에를 안정시키고 다시 전화를 바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 후회된다.이제 모든 걸 깨끗이 정리하고 중국에 돌아가려고 한다.북경 왕징(望京)에서 작은 음식점이라도 차리고 싶구나.동우야,어제밤 꿈에 너의 어머니를 보았다.어머니가 울고 있더구나.지금 이 시각 너의 어머니가 보고 싶구나.어머니와 같이 음식점을 차리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그 분과 잘 보내고 있나?”
아버지가 시즈오까에 가면서 어머니를 물어보기에 어머니는 지금 천진 어느 약업유한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상처한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 분이...”
나는 목이 메여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예진이도 눈물이 글썽해있었다.핸드폰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예진이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님,저 장예진이예요.지금 동우씨와 같이 시즈오까에 갈게요.”
전차가 서서히 플랫트홈에 들어섰다.
“도꾜역에서 신깐센을 타면 되나요?”
나는 예진이의 물음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엊저녁에 아버지를 그리워했고 아버지도 어제밤 꿈에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인가!
그 분은 이미 갔고 스즈끼리에도 이제 갈 것이다.결국엔 어머니도 혼자 남았고 아버지도 혼자 남게 되였다.
전차 지붕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비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을비,이 몇년간은 가을비가 내릴 때면 울적한 기분에 잠겨있었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눈물이 걷잡을 수없이 흘러내렸다.전차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어린애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를 소리높이 부르고 싶었다.
아버지!어머니!
찬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비물이 플랫트홈까지 튕겨왔다.
그 옛날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비물이 집안까지 튕겨오는 베란다에 서서 밤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다시 안겨왔다.
어머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가?내가 오늘 아버지에게 전화도 하고 저녁에 아버지와 같이 식사도 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을가?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방금 하셨던 말을 전해드리면 좋을가?
예진이가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버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아버지가 중국에 돌아가겠대요.어머니와 같이 북경 왕징에서 음식점을 차리고 싶대요.”
“그러면 어머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동우씨,아버님과 어머님이 잘될 것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나와 예진이는 서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이제 비는 그칠 것이고 하늘도 다시 맑게 개일 것이다.나와 예진이가 중국에 돌아갈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불렀다.
아버지!어머니!
이제 우리 함께 수도 북경에서 살아요!저와 장예진이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아 잘 키우는 모습을 늘 웃으며 지켜보세요!...
 
 
 
박명선
길림성 룡정시 출생.연변대학 일본어학부 졸업.요꼬하마국립대학 교육학 석사과정 졸업.연변작가협회 회원.중단편소설 다수 발표.현재 광주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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