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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설야

[수기] 2원 11전
2012년 10월 04일 16시 37분  조회:1342  추천:9  작성자: 설야
내가 소학시절 때의 일이다.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진급하니 《주산(珠算)》이라는 학과목이 불어났다.
그러니 공부하자면 수판이 있어야 했다,
허나, 그때 우리집 형편에서는 수판 살 겨제가 못 되였다.
 
그때는 온나라가 못 살고 전 국민이 굶주리던 시기라 특히 우리 집 같은 형편에서는 수판을 갖춘다는건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어머니는 고혈압으로 시름시름 앓는 장기환자다 보니 바깥일은 전혀 할수 없으셨고 내 아래로 동생 셋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혼자벌이로 온집 여섯식구가 간신히 살아가는 어려운 처경이였다. 그러니 집에 가서 수판을 사달라는 말도 번져보지 못했다.
 
그래도 학교 가보며는 주산시간이면 나같은 생활이 구차한 집 몇몇 애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모두 자기의 수판을 마련했었다. 수판이 없는 나는 주산시간이면 매양 옆의 애의 걸 갖고 함께 련습하거나 흑판에 걸어놓은 교수용 큰 수판에 매달려서 배운걸 익히군 하였다. 처음으로 주산을 배우는 나에게는 종이에 연필로 계산하지 않고서도 딸깍딸깍 수판알만 튕겨 놓으면 답을 뽑아내는 그것이 여간만 신기하지 않았다.
 
( 나에게도 자기 소유의 수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집에 가서도 마음대로 갖구 놀수 있게..)
 
난 다른 애들이 갖고 오는 그 수판이 참말로 부러웠다.
 
그때 우리가 사는 농촌집들에서는 겨울만 되면 집집마다에서 가마니를 짜서 팔아 부업을 했다.
온 가정이 총동원하여 가마니 짜기를 했는데 그래도 그때 형편에서는 그 수입이 짭짤했다.
가마니 한장을 짜서 꿰여 매 파는데 1등에 걸리면 한장에 45전, 2등이면 43전, 말등에 걸리면 39전이 되였다.
그래서 겨울이면 그때의 아이들은 동무집에 놀러가도 추려놓은 벼짚단을 안고 갔다.
그집에 가서 친구와 함께 한편으로 그 조꼬만 손으로 새끼를 꼬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시간을 보냈다.
 
우리집에서는 어머니가 가마니틀에 앉으셨고 나와 동생 둘이 새끼를 꼬아댔다.
막내도 후에 크면서 역시 새끼를 꼬았다.
어머니가 밥을 짓거나 빨래 씻을 때에는 내가 어머니 대신 가마니틀에 올라 가마니를 짰다. 이렇게 한주일간 짜서 모은걸 아버지가 짬짬이 꿰여 매서는 주말이면 장에 나가 팔아 집살림에 보탬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그 사이 일주일간 짠 가마니를 팔아 장을 보러가게 되였다.
큰장을 보자면 우리가 사는 마을서도 20여리 떨어진 평안이라는 역전시가지로 가야했다.
그때는 교통이 발달이 안 되여서 그 먼길을 도보로 다녀와야 했다.
먼길이라 어머니께서는 나더러 아버지 길동무해서 함께 다녀오라고 하셨다.
아버지도 나와 함께 같이 가줬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께 조건부를 하나 걸었다.
함께 가며는 꼭 내가 사달라는 걸 사주셔야 한다고...
아버지께서는 눈을 끔뻑해 보이시며 이내 응하셨다.
 
가는 길에서 아버지는 내가 조르는대로 재미있는 구수한 옛말들을 들려 주시였다.
한 컬레가 끝나면 또 다른 옛말을 이어 대시면서...
 
아버지께는 그때 정말로 옛말도 많으셨다.
저녁에 집에서 우리 형제들이 새끼 꼴때도 아버지는 한쪽으로 가마니를 꿰 매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시였었다.
 
가는 길에서 옛말 한컬레가 끝나면 아버지는 이따금씩 네가 오늘 바라는 조건부가 무엇이냐고 물으시였다.
그러나 나는 감히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수판을 사달라는 말은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 했다.
이윽고 우리 부자는 시가지에 도착하였다.
 
보아야 할 장을 다 보고나니 아버지께서는 날 데리고 식품진렬매대로 향하셨다.
아버지께서는 기껏해야 개눈깔사탕알이나 과자부스러기쯤으로 사달라는걸로 이 아들을 착각하셨던 것이다.
나는 애틋한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아버지의 옷깃을 부여잡고 다시 학용품매대로 이끌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이 아들을 대견스레 내려다 보시더니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를 띄우시였다.
 
아버지의 그한 표정을 보는 순간, 나에게는 용기가 불뚝 머리를 쳐들었고 얼마간 자신심도 생겼다.
학용품 매대에 이르자 난 첫 눈길에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수판을 발견했다.
새까만 비닐박막으로 만든 윤기도는 깜찍한 수판이 대뜸 한눈에 안겨왔다.
드디여 아버지께서는 내가 바라는것이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내 용기를 내서 주저없이 매대안에 진렬해 놓은 수판을 가리켰다.
가격표를 보니 2원 11전이라고 매겨져 있었다.
 
2원 11전, 이는 우리 가정 경제형편에서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였다. 돼지고기 한근에 80전씩 하는 그때 세월에 이 돈에다 조금만 보태면 돼지고기 서근은 살수 있었다. 돼지고기 서근이면 우리 온집 식구가 적어도 일주일간은 때마다 돼지고기국을 먹을 수가 있다. 이윽고 가격표를 보시던 아버지는 믿음이 가지 않으셨는지 판매원처녀한테 물으니 여전히 변함없는 2원 11전이다.
 
그러던 아버지께서 판매원 처녀더러 그 수판을 보자고 하시였다. 판매원 처녀가 꺼내주는 그 수판을 받아쥐는 순간, 내 손은 마치 금덩이에라도 닿은듯 격정으로 떨리였다. 반들반들한 새까아만 비닐박막틀, 진주같은 까마반드르르한 수판알, 그 알들을 튕겨보는 순간, 인젠 이 수판을 내 손에서 절때 놓칠수 없음을 절감했다.
 
내가 그토록 제정신이 없을 지경으로 수판에 황홀해있자 아버지께서는 호주머니에서 무겁게 돈주머니를 꺼내셨다. 장 보고 남은 얼마 되지 않은 돈에서, 이제 앞으로 가정생활에 보탬을 해야할 비상금액에서 아버지는 드디여 1원짜리 빨간 지페 한장과 50전짜리 두장, 그리고 5전짜리 엽전 한개와 2전짜리, 1전짜리 엽전을 각각 두개를 골라 값을 치르셨다. 어쩐지 그때의 아버지의 모든 행동이 너무도 비장해보였다.
 
 (인젠 나에게도 자기의 수판이 있게 되였다!)
 
허나, 그때의 나의 기쁨이란 그 무엇이라 이루다 형용할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내내 수판을 꺼내들고 수판알을 튕기며 갖구 놀았다..
아버지께서도 가끔씩 나의 손에서 수판을 넘겨받아서는 딸깍딸깍 튕겨보시였다.
이윽고 우리 부자는 드디여 집에 당도하였다.
그날밤, 어머니는 아버지와 크게 다투시였다.
 
당신 왜 그리 우둔하냐구요?
어쩌면 애가 사달라는거면 다 살수 있냐구요?
우리집 형편에 어디 그걸 살 겨제가 되였냐구요?
앞으로 우리 온집 식구는 입을 달아매겠냐구요?
... ...
 
나도 어머니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시는걸 그때 처음 보았다.
2원 11전 때문에...
그 개도 안 먹는 돈 2원 11전 때문에...
 
             *           *         *
 
그때로부터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은 몰라보게 변했다.
지금은 세상 부럼없이 살고 있다.
그때의 소학생이던 내가 인젠 애 아버지가 되여 쉰고개에 올라 섰고 내 자식인 울 이쁜 연이도 지금은 북방 대도회지 어느 대학의 2학년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있다.
 
언제나 이 아들이 자라는 걸 하냥 말씀없이 묵묵히 대견스레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십여년전에 이미 저 세상 고혼이 되셨고 어머님도 일흔 둘의 할머니로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계신다. 지금도 가끔 가다 내가 어머님과 그때 이야기를 꺼내면 어머님은 전혀 기억이 없어하신다. 그냥 자네는 아버지 닮아 기억력이 대단하다고만 하실 뿐이다.
 
어려웠던 그 시절, 비록 고생스러웠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그냥 행복했던 추억으로 가끔씩 머리에 떠오르는것이 무슨 연고일까? ... 
                                                                                                                                   
(2005년 1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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