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제비는 작아도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몸집이 작다고 해서 절대 깔보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이 속담을 평시에 어문시간이거나 작문을 쓸때는 졸졸 외우고 잘 써먹었지만 진짜 그 뜻을 깨우치기는 지난 5.1절 련휴때였다.
그날 나는 동생과 함께 넷째이모네 집으로 놀러갔다. 이모네 집에 들어서자 바둑판앞에 앉아 기보를 두고있던 사촌동생 정림이가 뽀르르 달려왔다. “형, 나하고 바둑 한판 두지 않을래?”
“뭐?”
코웃음이 나갔다. 이제 고작 일곱살밖에 안되는 녀석이 나보고 감히 바둑을 두자고 하니 기가 막혔던것이다. 나도 한때 바둑공부를 한 “기사”였으니 말이다.
‘얘를 아주 버릇을 떼줘야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래, 한판 두자”고 선선히 대답했다. 제법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들처럼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일인가? 바둑돌을 집어놓기 바쁘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지고 말았다.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무리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만 어리둥절해가지고 다시 한판 두자고 했다.
‘아이 참, 풀잎에 손을 벤다더니 조심해야겠다. 자칫하다간 망신을 당하겠네.’
이번에는 도정신을 하여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지고 말았다. 단통 얼굴이 붉어졌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동생이다보니 꾹 참았다. 이대로 절대 물러설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만 놀겠다는 동생을 붙들어 다시 놀자고 요청했다. 그런데 또 지고 말줄이야!
“흥흥, 이제 내가 얼마나 센지 알겠죠?”
어이없이 입을 헤벌린채 멍하니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아있는 나를 동생이 의기양양해서 놀려주었다. 나는 체면이 서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생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지 않을수가 없었다.
우리말에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도 있다. 그날 나는 공연히 동생을 얕잡아 보았다가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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