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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 달이 노래 부르면 상아는 춤을 추겠지
2016년 03월 27일 02시 11분  조회:2978  추천:4  작성자: 림금산
문학비평
달이 노래 부르면 상아는 춤을 추겠지
-임금산시인의 <달> 조시 열수에 부쳐
 
강혜라
 
 
 
 
 
자고로 시인 묵객치고 달을 노래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푸른 밤하늘을 흐르 듯이 가며 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던 달은, 저 시선 이백의 싯줄에서 뛰놀다가 존 키츠의 싯줄을 휘감기도 하던 달은, 이제 임금산시인의 시 노트에 담겨 둥그렇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임금산시인은 동시인으로도 소문났지만 문학을 시작할 때는 멋진 성인시를 펑펑 쏟아내던 분이다. 작은 눈으로 너른 세상을 훑어보고, 작은 가슴에 풍진세월을 품기도 하며, 작은 키로 큰 하늘을 떠이고 드팀없이 문학의 길을 매진해온 임시인의 시적행보는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임금산시인의 조시묶음은 세월 속에서 헹구어낸 우리 민족의 가락과 시인의 나이테로만이 해석이 가능한 인간세상의 다양한 모습이 웅건한 울림이 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잘 길들여진 리듬감과 각고의 탁마 끝에 비로소 얻어진 보석같은 시어들로 해서 자칫 단숨에 읽힐지 모르지만 함부로 쉽게 읽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편편주옥들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그러면 이제 다 같이 탁배기맛 시에 젖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달이 내게로 와서 노래가 될 때
 
<달 1>은 조시 <달 노래>의 머리시 격으로 큰 스케일로 달에 대한 전방위적인 찬사를 유감없이 구가하고 있다. <바다>, <대지>, <하늘>, <희말라야>, <우주>, <지구촌>, <억만창생> 등 거창한 시어들이 시의 스케일을 대변해주고 있거니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정신 등 교감을 통해 우주질서를 견인해내면서 인간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하면서도 시는 지나치지 않은 잔잔한 시어로의 시적감흥을 밑그림으로 깔아주면서 거창함과 유연함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시 독자들의 달 조시에 대한 몰입에 올리브유를 쳐주며 강렬한 구독을 부채질해주고 있는 것이다.
<달 2>에 이르면 달 잔치를 빌어 나의 달 사랑을 잦은 휘모리로 표현해보이고 있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시적흐름으로도 숨가쁜 달사랑을 확인할수 있으며 입, 가슴, 머리칼, 팔, 다리, 눈썹, 귀 등 온몸으로 표현되는 달사랑은 수천억번의 키스를 가능케 하며 달 키스의 순결성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 많은 키스가 하나로 되어 내 가슴을 쭉 가른다는 단연 압권이다.
<달 3>은 달집이 형상화되고 있다. 달을 찾아가서 만난 달은 달 구멍이 되기도 하고 달 잉태를 낳기도 하며 달집들이 터지고 엉키기도 한다. 달의 냇물, 달의 강, 달의 바다 그것은 시인이 만난 달이며 시인의 시적사고에서 비롯되는 달의 언어인 것이다. 바로 이런 달 언어에 편승하여 달조시의 낭자한 흐름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한편으로 시 독자들을 달 독자로 탈바꿈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달 4>는 <달 3>의 연장선에 있다. 달집에 들어서니 달이 매대 앞에서 달을 판다. 기상천외한 판타지가 가능한 것이 바로 시라는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시인과 함께 달을 안고 달과 사랑을 나누다가 달에 코를 박고 달 꿈에 실려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상아가 달에 오를 때 이런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었으리라. 별다른 시적장치가 없어도 이 시가 지극히 아름답게 안겨오는 것은 바로 달에 대한 넘쳐나는 시인의 사랑이 안바침되고 있음이요 달 아니었던들 상기의 아름다운 풍경은 시적묘술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달 5>는 이색적이다. 달의 가는 허리라는 시적상상에 편승하여 거기에서 비롯되는 온갖 현상들이 마침내 시 독자들에게 공감대로 다가서는 것이다. 달의 가는 허리에서 달이 빠져나오고 빠져들어 가면서 봄, 청춘, 황금, 황제, 바람, 낙엽, 귀밑머리, 엄동, 신음, 귀신, 서시 등이 쏟아져 나온다. 거의 카테고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상기 시어들이 왜 여기 나열되어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달이 충만 되고 이지러지는 일이 거듭되면 마침내 봄이 찾아오게 된다. 봄은 청춘과 통한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기라고 일컫는다. 황금은 황제의 특권이기도 하다. 황제는 늘 바람을 몰고 다닌다. 말하자면 호풍환우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낙엽은 지게 마련이요 낙엽이 진다는 것은 인생의 황혼 즉 귀밑머리의 퇴색을 의미한다. 그렇게 세상은 흐르면서 눈보라에 산천초목이 신음하던 엄동은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겨울의 신음소리는 귀신의 통곡소리를 연상시키고 귀신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귀신은 서시라 해도 대과는 없게 된다. 특히 서시까지의 연상은 월궁의 상아를 떠올리면 금세 안겨오는 시적대상물로 당연한 카테고리인지도 모른다. 자, 이쯤 시인의 상상을 추적해보았다. 가능하고 가능하며 달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채게 될 것이다.
<달 6>에서는 달을 사랑하던 나머지 내가 달이 되어버린다. 달에 대한 찬사가 이번에는 달을 닮아버린 나의 일상에서 사품쳐 흐른다. 달의 유순함에서 순수의 나무를 키우고, 달의 밝음에서 순정의 샘물을 파내고, 달의 절절함에서 그리움의 싹을 얻는다. 달에 대한 노래가 격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달 7>에서는 드디어 우리 민족이 달을 빌어 묘사되고 있다. 하얀 저고리, 하얗게 바래고, 저 여울지는 저고리 고름, 하얀 서리 등 이 시에서는 쉽게 채집되지만 시인이 알심들여 고른 시어들에서 우리는 민족의 혼을 볼수 있으며 세상 어느 민족보다 순결함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 역시 지금껏 달과 함께해왔음을 감지할 수 있다.
<달 8>에서는 달과 자연의 교감이 웅건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세상으로 보면 온갖 세상만사를 다 겪어온 달의 이야기는 별들이, 나무들이, 풀들이, 빌딩들이, 바람이 안다. 그래서 달을 쳐다보며 숙연해지는 시인의 마음을 우리는 어쩌면 알 수도 있으리라.
<달 9>에서는 달에 대한 직설적인 고백이 눈물겹다. 달은 둥글어도 이지러져도 시인에게는 애모쁜 사랑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며 그래서 어떤 모습이여도 고마운 달은 시인에게 언제나 슬프도록 행복한 존재인 것이다. 행복이 극에 달하면 슬프게 보이는가 슬픔이 극에 달하면 행복해지는가. 잠시 제쳐두고 달에 미쳐 달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만 확인해보는 선에서 일단 만족하자.
<달 10>에서는 연쇄적인 수법을 활용하여 달을 노래하고 있다. 달 속에서 달이 나오고, 그 속에서 호수가 펼쳐지고, 호수주변에 수림이 설레고, 수림위에 하늘이 열리고, 하늘 속에 흰 구름이 뜨고, 구름너머 아득히 하늘이 또 열리고, 나는 하늘을 휘감고 구름을 휘저으며 간다. 엄마야, 누이야 피터지게 외치는데 그 핏방울들이 흩뿌려져 살구꽃으로 피어난다. 세련된 아름다움이요 수채화 같은 장면이다. 꽃잎은 피로 색을 올려 더더욱 구슬프게 아름답다는 마지막 행에 시인의 달 노래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조시라는 암시가 숨겨져 있다.
 
 
시가 일어서서 춤을 출 때
 
이상 임시인의 달 조시 10수를 한 수씩 반추해보았다. 달을 노래한 그 많은 시인들 중에서도 유독 임시인의 달 조시가 새삼스러운 까닭은 시의 폭(넓이)과 시의 심도(깊이)가 지금까지의 달시들에 비해 월등히 상위라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아울러 아름다운 시어들의 몸짓이 사푼거리는 내지 너흘거리는 멋스런 춤사위로 우리한테 다가온다는 데서 그 두 번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터이다. 달을 사무치게 사랑하는 시인의 고아하면서도 설설 격정에 끓는 순수한 마음 앞에서 먼저 경건함을 여미고 접근해보기로 하자.
상기 10수의 시들은 일단 전혀 거리낌없이 달에 대한 시인의 송두리째 되는 고백을 동반하고 있다. 달을 바라보며 미치고 달을 미치도록 사랑하며 달 아니었던들 사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달 사랑을 주절거림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는 시인은 땅 위에서 달을 바라보다가 달에 이끌려 달에 찾아가고 드디어 달로 화하면서 달과 일심동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다시 지상에 내려와 눈물겹도록 달을 바라보며 달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다시다시 확인해본다.
왜 하필 달이었을까?
달보다 밝은 해도 아니고 달보다 기특한 별도 아니고 달보다 아름다운 그 무수히 많은 우주적 존재들을 다 제쳐두고 왜 하필이면 달이었을까?
일상에서 일반인이 바라보는 달은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나 시간을 알려주는(상현달이다가 보름달이다가 하현달이 되는) 존재나 기분을 돋궈주는 존재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 비치는 달은 순수하며 깨끗하며 호젓하며 은은하며 내성적이며 독보적이며 이상적이다. 달은 또 여성적(월궁의 상아)이며 소녀적(거의 모든 소년들이 달을 향해 첫사랑의 고백을 중얼거려 보았으리라)이며 할머니적(달밤의 할머니 이야기)이며 애인적(사랑 때문에 우는 사람은 거의 반드시 달을 보며 왜 너는 비추는 내 애인을 나는 볼 수 없냐고 원망 한 마디 쯤 던져 보았으리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시인에게 있어 달은 사랑과 더불어 시적 창작의 원천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이며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양인들에게 달의 존재는 저 비너스, 아폴로디테, 마돈나 등 유럽의 다양한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에 비견되는 존재로서 자고로 달에 대한 음풍영월은 단 한순간도 멈춰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 달이 임시인의 시붓에서 조시로 떠오르며 새롭게 거듭났는 바 여기에는 임시인의 시적 내공이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일상어인듯 아름다운 조화(폭력적 조합이 아닌 티없이 순수한 리얼적인 조합)를 이루는 시어들의 행진은 단아하면서도 격정이 있고 사품치면서도 이지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시의 아름다움은 시어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것이며 시어의 아름다움은 시인의 사상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만큼 임시인의 심적 상태가 순수하고 깨끗하며 말숙하고 선량하며 폭포처럼 거창하면서도 깊은 소처럼 여울을 만들기도 하고 두루미처럼 끼끗하면서도 학처럼 도고함을 잃지 않는다는 방증이 되겠다.
시의 삼박자에서 시의 흐름과 시어들의 배렬과 시의 사상은 언제 어떤 시인의 어떤 시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 될 것이다. 임시인의 달 조시가 단순히 달에 대한 찬가에 그쳤더라면 시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에서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기 10수의 시들을 부벼보면 거기에는 민족적인 맑은 영혼이 살아 숨 쉬고 그래서 우리는 임시인의 달시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호흡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적인 시대적인 미래적인 높이와 깊이와 넓이의 시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달은 저쯤에서 노래 부르고 상아는 저리 사푼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임시인은 술잔을 잡은 채 시붓을 비스듬이 꼬나들고 있다. 이제 임시인의 조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달의 노래가 끝나지 않는 한, 상아의 춤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기만 해도 무방할 터이다.
모처럼 아름다움의 경지를 보여준 임시인께 박수와 응원을 섞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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