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문인들 수석관 찾았구려
리 함
예로부터 수석이란 황제, 대신들이나 대부호들, 문인묵객들이 즐기고 문인묵객들의 필묵에 의해 생동하게 묘사된 대자연의 소산이요, 축소판이다. 헌데 우리 문인들에 의해 전시된 연변수석만의 첫 수석전시회가 여러 날 되도록 찾아드는 문인 한사람 볼수 없다.
(연변의 문인들이 이다지도 수석문화에 숙맥이란 말인가?)
생각할수록 서운함이 한가슴 괴여오른다. 오늘은 수석전시 엿새가 되는 날이니 더욱 그러했다.
그러던차 정오를 앞두고 룡정의 시인 황상박선생, 연변인민출판사의 시인 최문선선생, 한국인 김부식선생 등이 수석전시관을 찾았다. 전시관을 찾은 문인들 첫 손님이라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그래 우리 문인들이 수석문화를 몰라줄수가 없지!)
갑작스레 들이닥친 일이라 흥분속에 잠기는데 마침 두만강수석회 고문 김대현선생이 뒤미처 나타났다.
《돌을 모르며 돌보러오는가?》
김대현선생은 문우들을 허물없이 대했다.
《오면 안되는가?》
최문섭선생 또한 허물없이 응해나섰다. 수석전시관 분위기는 대번에 활발해지고 황상박선생은 구수하에서 탐석한 《오리》를 가리키며 터값을 받아야겠다고 롱담을 걸어온다. 그러는 황상박선생은 《수석하는 사람이 많구나!》하며 감탄해마지않는다.
그때다. 최문섭선생은 전시관 첫머리에 놓인 남근석을 보더니 한국 수석전람에 남근석이 쭈욱 놓였더라면서 대자연이 묘하다는것을 한 5년전에 알았다고 소감을 내비친다.
알고보면 편심 최문섭선생은 1942년생으로서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전업을 졸업하고 교육, 선전, 출판 사업에 종사, 편집, 시인으로 활약하면서 《구름기차》, 《꽃동네》 등 허다한 동시집, 시집과 이야기집 《천지의 무지개》 등을 펴낸분이다. 그러던 선생은 약 5년전에 한국행에 나섰다가 목포시 수석관을 돌아본적이 있었단다. 수석과는 인연이 있었기에 수석을 통해 대자연이 기기묘묘하다는것을 보다 터득하였다는 선생이다.
최선생은 필자의 중국지도 수석한점을 보고 묘하다고 했다면 한태익의 메주 수석을 보고 또 묘하다고 련발한다. 황상박선생은 묘하기에 수석이 존재할것이 아니냐며 허허 웃는다. 룡정시 팔도행출신으로 신문, 도서 배달원, 기자, 편집으로 활약해오다가 정년퇴직하고 가사전문지 《해란강여울소리》주필을 맡아오며 시창작에도 왼심을 써오는 이름난 시인이기도 하다.
한국인 김부식선생은 언제부터인가 연변수석이 더는 밖으로 흐르지 말고 자체의 수석관을 가졌으면 하는것이 드팀없는 소원이였다고 내심을 토로한다. 1992년 7월에 연변에 와서 연길시에 《연변장애인기술훈련센터》를 꾸리고 운영해오다가 현재는 운남성 곤명에 가서 장애인기술훈련원을 꾸린다는 선생, 이 선생이 연변서 손수 탐석길에 나선것은 1995년이였다고 한다. 한다하는 명석도 척척 안겨지고 하면서 연변의 문인수석인들과 돈독한 우정을 맺어온 그다.
수석전시관은 문인들의 웃음소리, 말소리로 차고넘친다. 그속에 오후 시인회의를 앞둔 최문섭선생이 필자에게 금방 출판한 동시선집 《새싹은 햇병아리》를 증정한다. 문인들의 세계가, 서로 통하는 세계가 좋기만 하다.
문인선배들 수석관 찾았구려!
2006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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