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패권 전략을 비판해 온 좌파 지식인 마이클 패런티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그 실체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역사상 최대의 프로파간다의 승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논리는 오늘날 세계의 지배자들과 주류언론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거짓 정치선동이라고 할 만하다. 이것은 하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되면서 '사회주의자'라는 버니 샌더스조차 따라하는 엄청난 거짓말이 돼 있다. 샌더스는 최근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 위성을 발사했다고 규탄과 제재를 당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북한 위성 발사 전과 후에 러시아와 일본도 위성을 발사했지만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물론 위성과 미사일의 차이만 말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인 면이 있다. 위성 발사 기술은 결국 군사적인 목적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적 목적을 '우주 탐사'로 포장하는 데 앞장서 온 것은 바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한국 등이다. 이처럼 눈을 뻔히 뜬 채 눈가리고 아웅을 무한반복해 온 나라들 속에서 북한 정권은 차라리 순진해 보인다.
따라서 하필 왜 이 시점에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물음은 누구보다도, 한미일 지배자들에게 던져져야 한다. 왜 미국은 근래 핵 폭격기를 한반도 하늘에 날려 보냈는가? 실전투입이 용이한 '스마트 핵폭탄' 개발 소식을 공개했는가? 이라크 등에서 '참수(斬首)' 작전을 수행한 미공수특전단을 한국에 보냈는가?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보내서 무력시위를 했는가?
중국이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둥펑21) 발사 실험을 한 것은 여기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리고 설연휴 첫날 한반도 평화를 강타할 소식이 들려왔다. 북한 위성 발사 소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우려스러운 소식은 그걸 핑계로 한미가 사드 배치를 본격 논의하고 3월 키리졸브 훈련을 역대 최대로 공세적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미국은 또다시 "마치 북한이 사건을 일으켜주길 기다렸다는 듯이"(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행동하고 있다. 지난달 북한 핵실험 바로 다음날 일본 아베 보좌관은 "그거 아주 적절할 때 일어났네요"라며 본심을 드러냈는데, 이는 오바마의 심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런 '떡본 김에 제사지내기'는 마침내, 남북 대화·협력의 희미한 실마리같던 개성공단까지 폐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개성공단 폐쇄로 손해보는 게 김정은 정권이냐, 박근혜 정권이냐, 입주기업들이냐는 논란거리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서 초저임금 착취를 당해 온 북한 5만6천여 노동자들, 남한 5천여 개 협력업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삶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남북간의 모든 통신선이 끊기고 개성이 군사지역화되며 완충지대가 소멸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 나라의 호전적 우파들은 전쟁불사론, 확전각오론, 핵무장론, 김정은 제거론을 떠들고 있고, 국민안전처는 '전쟁발발시 국민행동요령' 75만부를 제작해 학교와 주민센터에 배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총선용 우파 결집 시도라고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이것은 단지 총선용이나, 박근혜 정권의 단독 결정으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정부 고위관계자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라는 미국과 일본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고 실토했다. 박근혜 뒤에는 오바마가 있었고, 그래서 입주기업주들이 철수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급작스런 결정이 내려졌던 것이다.
백악관은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가장 먼저 환영하고 나섰고, 미의회는 기다렸다는듯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정부와 국영기업까지 제재할 수 있는 초강력 제재 방안('세컨더리 보이콧')을 통과시켰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사드가 진정 겨냥하는 것도, 세계 최고 수준 미사일과 ICBM 기술을 가졌고 올해초 로켓군까지 창설한 중국으로 봐야 한다.
주한미군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증강배치했고, 한미 특수부대의 적지 침투 연합훈련이 최초 공개됐다. 미국 핵잠수함이 참가한 한미연합 잠수함 훈련도 전개됐다. 3월부터 두 달간 사상최대 규모와 강도로 실시될 키리졸브 훈련에는 미국 전략무기들이 대거 참가하고, 선제공격 시나리오인 '작전계획5015'가 처음으로 적용된다고 한다.
'일대일로'와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을 야심차게 추진해 온 중국은 이것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모를 수 없다. 일부 사람들도 지적해 왔듯이 사드는 단지 '방어용'이 아니다. 사드 배치는 '상대편 반격을 무력화하고 마음 놓고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이자, '북경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며 선제 타격 표적을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것은 북한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사드 배치를 "유방(중국)을 겨누는 항우(미국)의 칼춤"으로 규정했다. 강력한 전자파 때문에 15만평 안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은 북중접경지역에 또다른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배치할 것이라 한다. 사드 배치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 미사일의 타격 표적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서로 경쟁적으로 한반도에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을 막는 방패'를 갖다놓다가,멈추지 못하고 만약 뭐가 더 센지 대보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누가 희생당할 것인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한반도 국지전 발생시에 개전 초기에만 1백만 명이 사상한다고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한반도에서, 베트남에서, 남미에서, 중동에서 미제국과 강대국들이 해 온 짓을 보면 안심할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제국주의의 경제 제재와 봉쇄가 결국 군사적 개입으로 연결돼 온 곳은 바로 중동인데, 이라크와 시리아 등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했던 가를 떠올려 보면 소름이 끼칠 뿐이다.
이들에게 북한의 독재와 인권탄압은 군사적 개입을 위한 빌미로만 쓰이고 있다. 게다가 오바마와 박근혜 정권의 북한 붕괴론은 '어차피 붕괴할 것이니 기다리자'에서 이제는 '기다리지 말고 빨리 붕괴하도록 더 밀어보자'로 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기존에 키리졸브 훈련이 가장 공세적이었던 때는 2013년 봄이었고, 그때 외국 언론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었다. 일부 좌파들이 '예비검속'을 당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던, 종북몰이가 절정에 달했던,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기획된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 그때보다 더 크고 강한 훈련이 다가오는 지금, 제도정치권에는 군사훈련 중단과 평화협정에 대한 목소리조차 '해산'당하고 사라진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 야당인 민주당의 지도자는 '북한 붕괴론'에 동조하는 김종인이다. 게다가 원래 민주당의 어정쩡한 입장 자체가 우파의 공세에 맞서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지금 우파는 '개성공단을 그토록 찬양하더니 왜 갑자기 북한에게 별 의미없는 곳이라는 거냐', '너희가 말하는 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제재는 무엇이냐'며 민주당의 약점을 파고들고 있다. 대북정책의 전제와 목적을 공유한 채 수단만 달리하려는 게 민주당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동맹이 진정한 문제이고, 제재와 압박이 아니라 평화협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제도정치권에서 '종북몰이'를 각오해야 할 금기가 돼 있다. 얼마전 토론에서 민주당 표창원은 별 것도 아닌 말로도, 이준석에게 "지금 북한 입장 반영해서 말하는거예요"라는 공격을 당했다. '미사일이 아닌 위성'이란 말은 민주당에서도 입에 담지 못할 금기어가 돼 있다.
은 스스로 '종북'과 선을 그어 온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불러서도 "김정은에게 애정이 있는지 '예스, 노'로 답하라"고 강요해 '노'를 받아냈다.
더 밀려서는 안 된다. 진보 진영은 한미일 동맹의 대북제재 반대, 사드 배치 반대, 키 리졸브 훈련 중단, 평화협정 체결 등의 요구를 중심으로 최대한 힘을 모아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오바마, 아베, 박근혜가 추고 있는 평화 위협의 칼춤을 멈추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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