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서 ‘성폭행(性暴行)’은 광범위하게 쓰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쓰는지 몰라도 ‘강간(强姦)’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아마 ‘강간’이란 말이 저속하고 듣기 싫어서 ‘성폭행’으로 대체하였을 것이다라고 한다. 마치 ‘☓하다’를 ‘섹스하다’로 대체한 것처럼 말이다.
국어사전에 ‘성폭행’이란 올림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말은 근래에 새로 생긴 듯하다. 인터넷에서 ‘성폭행’을 검색해 보니, ‘강간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daum)’, ‘상대방의 동의 없이 억지로 성관계를 맺는 일(naver)’로 적혀 있다. 결국 ‘성폭행=강간’이고, 그러므로 ‘성폭행’으로 ‘강간’을 대체한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우선 성폭행을 일률 강간이라 볼 수 없다. 필자의 고향에서 이런 일이 생긴 적이 있다. 마을의 한 곱상한 40대 초반 과부에게 중매가 자주 들어오는데 그녀는 한동안 혼사에 동의할 듯 말 듯하며 선물과 돈을 챙기고는 거절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하여 마을에서 의론이 분분하며 인심도 좀 잃었다.
이에 격분한 마을의 20세 좌우 청년 몇몇이 좀 혼내 주어야겠다며 그녀를 탈곡장 움막으로 끌고 가 발가벗기고 라이터로 음모를 한바탕 지지고 유방도 주먹으로 줴박았다. 그 청년 몇몇은 유죄판결로 실형을 언도받았으며 죄명이 ‘성폭행’이었다. 그러나 강간은 아니었다.
또 이런 일도 있다. 남녀 간에 한동안 연애를 하다가 일방이 거절하자 서로 헤어지기에 즈음하여 마지막 이별 키스에 남자가 여자의 혀를 물어 잘라버리거나 유방을 칼로 찌른 것, 마지막 기념 섹스에 여자가 남자의 음경을 물어 잘라버린 것 등이다. 모두 성폭행 죄이다. 그러나 강간이 아니다.
다음은 모든 강간이 일률 성폭행이 아니다. 불법적인 행위로 부녀를 간음하였으면 폭행이 없어도 강간일 수 있다. 광주 인화학교의 경우 교장이나 교원이 물리적 위협수단으로 간음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강간이다. 지적 장애인이면 반항할 줄 모르거나 반항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인이 16세 이하의 소녀를 간음하였으면 폭행이 없어도 강간으로 취급할 수 있다. 또 폭행을 쓰지 않았어도 위구심으로 권력자에게 응한 간음도 강간으로 취급할 수있다.
저속하거나 듣기 싫다고 ‘姦’자를 외면해 버리면 그에 따르는 많은 단어를 상실하게 되는데 이것은 언어생활상의 큰 손해이다. 우리말 한자어에 다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어의 경우 간음에는 ‘강간(强姦)’, ‘화간(和姦)’, ‘통간(通姦)’, ‘유간(誘姦)’, ‘편간(騙姦)’, ‘점간(點姦: 손가락간음)’, ‘계간(鷄姦: 항문 간음)’ 등이 있다.
성추행은 강간을 포함한 모든 성적 희롱을 뜻하나 역시 개념상 너무 추상적이다. 중국어의 경우 성추행에 상기 간음을 나타내는 단어들 외에 ‘비문(緋聞)’, ‘외설(猥褻)’, ‘불검점(不檢點)’, ‘동수동각(動手動脚: 집적거리다)’ 등 많은 단어와 표현방법이 있다.
성추행이 비교적 보편적이고 엄중한 사회현상이므로 ‘강간’을 포함한 비교적 세분된 단어를 써서 추상적인 ‘성폭행’, ‘성추행’보다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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