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과 중국의 하상주 단대공정
정인갑
금년의 개천절 10월 3일은 단군 건국 4345주년으로 그 행사가 성대하였다. 필자는 텔레비전으로 기념행사에 관한 기사를 보며 수중의 라는 고서를 한 번 더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생각난 것이 중국의 하상주夏商周 단대공정이다.
중국은 1996년 5월부터 시작하여 2000년 9월까지 ‘하상주夏商周 단대공정’이라는 이름하에 이 세 왕조의 연대를 확정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는 여러 분야의 학자 200여명이 5년간 힘써 달성한 성과이다.
중국 역사를 반만년으로 잡지만 하·상·주의 건국은 기원전 21세기, 기원전 16세기, 기원전 11세기로만 어림잡아놓고 있을 뿐이다. 확정적인 연대는 에 있는 서주西周 공화共和 1년, 즉 기원전 841년부터이다.
이는 고대문명국 중 기원전 4,241년부터 비교적 확정적인 연대를 갖고 있는 이집트에 비하면 자존심이 꺾일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연구를 거쳐 상기 세 왕조의 설립 연대가 각각 기원전 2,070년, 기원전 1,600년, 기원전 1,046년으로 해명됐으며 상조 중반기부터는 각 임금이 연대까지 확정됐다.
무슨 방법으로 수천 년 전의 연대를 확정할 수 있었는가? 아래의 두 가지 예를 보자.
한 청동기의 명문銘文에 따르면 서주 정鄭나라 의왕懿王 원년은 기원전899년이다. 또 고본古本 에 ‘의왕 원년 경성의 날이 두 번 밝았다(懿王元年天再旦於都)’라는 기재가 있다. 날이 두 번 밝을 수 있는 가능성은 동틀 무렵 개기일식(日全蝕)이 일어났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1997년 3월 9일 동틀 무렵에 개기일식이 이러나는 신강新疆 북부지역에서 체험한 결과 확실히 날이 두 번 밝는 감이었다. 정나라의 위치가 지금의 섬서陝西 서화西華 혹은 봉상鳳翔 일대며 천문학 계산에 따르면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841년간에 동틀 무렵 이 지역에서 일어난 개기 일식은 기원전 899년뿐이다. 이로써 의왕 원년을 기원전 899년으로 확정지었다. 금문과 천문학으로 연대를 확정한 예이다.
주여왕周厲王의 재위 연한을 에서는 37년이라 하지만 , , , 금본今本 에서는 각각 13년, 14년, 24년으로 다르다. 소편종蘇編鐘의 명문에 ‘惟王三十又三年王親遹省東國南國유왕삼십우삼년왕친휼성동국남국’이라는 기재가 있다. 여왕과 선왕宣王이 모두 33년 이상 재위했으니 어느 왕인가? 여왕 자신이 만든 종주종宗周鐘의 명문 ‘王肇遹省文武勤疆南國’이 위 명문과 부합된다. 또 에 진후晉侯 소蘇는 선왕 13년에 죽었다고 하였으니 ‘유왕삼십삼년’ 중의 왕은 여왕이지 선왕이 될 수 없다. 이로 하여 여왕 재위 연한의 13년, 14년, 24년 설이 무너졌다. 청동기 명문을 연대 확정에 활용한 예이다.
2천 년 전부터 연구해 왔지만 큰 성과가 없던 과제를 이번에 해결할 수 있은 원인은 바로 상기 문헌학, 고고학, 문자학, 천문학, 탄소측정학 등 9개 분야의 44가지 전문가가 서로 합동하여 과학적으로 연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단대공정이 아직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논란도 많다. 본 공정의 책임자는 마무리 짓는 글에서 이는 중국 상고역사 단대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앞으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계속 연구, 수정될 것이다 라고 겸손한 말을 했다.
한국 역사상 확정할 수 있는 최초의 연대는 아마 위씨衛氏조선으로 기씨箕氏조선을 대체한 기원전 194년일 것이다. 그것도 중국 고서에 근거한 것이지 한국문헌에는 없다.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그 전의 연대는 공백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 장서각藏書閣, 규장각奎章閣의 목록을 보면 적지 않은 도서의 저자 또는 출간 연대가 공백이다.
필자는 북한 방문 때 1994년에 구축한 단군릉을 견학한 적이 있다. 높이 22미터, 변 길이 50미터의 능은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해설자의 말에 따르면 바로 그곳에서 5천여 년 전 단군 임금 부부의 해골을 발굴해냈다고 한다. 그 해설자의 기세당당한 태도와 열정에는 탄복이 가지만 필자는 그의 말을 추호도 믿고 싶지 않다.
한국의 개천절도 마찬가지이다. 중국고서, 한국의 에도 단군 건국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단군에 관한 기록은 (1287)나 (1363)에 비록 나타났는데 둘 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것을 민간 전설쯤으로 생각하고 웃어넘기면 그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것을 국책으로 여기고 단기 4345년이니, 건국일이니 하고 있다.
역사는 과학이어야 한다. 한국은 과학적 차원에서 추구하는 역사는 희박하고 정서적으로, 감성적으로, 어림 잡이로 취급하는 역사가 범람하는 것이 문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