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부터 중국에서는 한자 자모병음화(拼音化)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며 그 방안도 여러 가지 등장했다. 마우저둥(毛澤東)도 “문자는 반드시 개혁해야 하며 세계 민족처럼 병음화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이 문제는 찬반양론의 싸움이 팽팽하였다. 그러나 100여 년 간의 실천을 통하여, 특히 한자 컴퓨터화가 성공됨에 따라 최근 몇 년간 병음화의 필요성이 없다는 견해로 통일되었다. 한자 개혁의 방향을 검증하는데 10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런 검증 없이 4,000년의 역사를 지닌 한자를 서둘러 포기하고 알파벳 자모병음화를 채용했더라면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았겠는가!
중국 역사상의 인물 조조(曹操)는 간웅(奸雄)으로 1,700년 간 지탄받았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와서 탁월한 정치가, 전략가로 재평가 받았다. 진시황은 폭군으로 2,000여 년 간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역시 20세기 중반에 중국의 통일 대업을 이룩한 군주이면서 폭군, 즉 공로와 과오가 반반이라는 재평가를 받았다. 2,000여 년의 검증 끝에 내린 결론이다.
‘역사의 검증’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문제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역사의 검증을 받는데는 짧아 5년 정도면 되는 수도 있지만 길어서 100년, 심지어 2,00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쟁론이 있거나 파악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 내심 있게 기다리는 중국인에 반해 한국인은 너무 성급하다.
예를 들면 전임 대통령 김영삼, 김대중, 심지어 박정희, 이승만을 최종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후세로 미루어야 할 것이다.
둘째, 앞날의 역사뿐만 아니라 지나온 역사로 검증할 수도 있다. 중국인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에 4,000년 간의 역사 경험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략이 비상한 민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한국 정치인들은 이 면에서 너무 약하다. 국제관계, 남북관계, 수도이전 등 문제의 처리에 역사의 계발을 받을 여지가 많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셋째, 앞날의 검증에 맡기자니 시급하고, 역사경험을 참조하자니 사무전례(史無前例)할 때 중국은 일부 지역에서 먼저 실험해 보고 신빙성이 있을 때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농촌도급제, 주택상품화, 대입시험 과목의 ‘3+X법(수학, 국어, 외국어+기타지식)’ 등에 이런 방법을 썼다. 시공(時空) 전환의 철학 원리이다. 시간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공간으로 보충하는 방법이겠다.
한국 기초교육에 한자 교육을 할 것인가, 하지 말 것인가를 쟁론만 하지 말고 먼저 한 개 또는 몇 개 도에서 실험하고 성공 여부에 따라 채용 또는 취소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몇 년, 심지어 10년 이상의 실험을 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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