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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공동체의 전망
2005년 04월 09일 00시 00분  조회:5886  추천:72  작성자: 관리자
조선족인구 마이너스성장, 별거 아니다(3)
―조선족공동체의 전망

정인갑


절대인구 마이너스성장이건, 상대인구 마이너스성장이건 관건은 중국조선족공동체의 전도문제이다. 우리민족의 지성인들이 인구 마이너스성장을 걱정하는 진정한 리유는 민족공동체가 해체될 위험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조선반도로부터 건너와 100∼150년이나 된다. 그렇지만 거주, 교육, 언어, 문자, 풍속, 습관, 기질, 응집력, 문화 등 많은 면에서 자기의 공동체를 유지하여왔다. 세계적으로 해외 이민이 가장 많은 6개 민족―중국인, 인도인, 유태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조선인은 2∼3세 안에 거의 주재국 국민에 동화되여버렸다. 유태인도 단 유태교만 지켰을 따름이다. 하지만 중국 조선족만 지금까지 5∼7세나 되도록 자체의 공동체를 지키며 살아왔다.

이는 인류력사의 기적이다. 기적의 원인을 필자가 대충 찾은 바로는, 1, 당시 동북은 인구가 너무 희소하여 조선족이 상대적으로 집결될 수 있은 것; 2, 농사 위주, 더욱이 벼농사의 선두민족으로 수전을 중심으로 조선족 마을을 형성할 수 있은 것; 3, 조선족이 동북 원 거주민보다 문화 수준이 높은데다가 각별히 교육과 문화를 중시한 것; 4, 중공 정부 성립후 조선족의 자치주, 자치향을 세워주었고 자치마을을 인정하였으며 조선족 학교, 문화관, 신문, 잡지, 방송, 문예단체 등을 운영하게 한 것, 등 4가지인 듯 하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오늘, 상기 4가지중 1, 3 두 가지는 이미 없어져버렸다. 2, 4 두 가지도 시장경제의 충격을 받아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필코 조선족공동체의 해체를 초래하게 된다. 약 1980년대부터 시작하여 중국조선족은 가속도로 진행되는 해체와 반해체, 동화와 반동화의 대립통일 속에서 몸부림치고있다.

물론 우리는 지금 공동체의 해체와 민족동화를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다. 첫째, 농촌에서 해체된 조선족 마을을 도시에 세우는 것이다. 이와 동반하여 많은 대도시에 조선족 협회, 친목회, 모임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둘째, 농촌에서 폐교된 학교를 도시에 재건하는 것이다. 북경, 천진, 청도에 이미 조선족 학교가 세워져 운영되고 있으며 대련 조선족 학교도 원래 찌글찌글하던 것이 많은 조선족의 대련 진출에 따라 번영하고 있다. 앞으로 조선족이 진출한 많은 관내의 대도시에 조선족 학교들이 일어설 것이다. 셋째, 조선족 사이버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조선족 인터넷 사이트가 서로 멀리 떨어진 조선족들을 이웃, 한집안으로 응집시키고있다.

이런 시도는 조선족공동체의 해체와 민족의 동화를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막지는 못한다.

필자의 고향 료녕성 무순시는 6만명 조선족의 대부분이 도시변두리에 자치마을을 세우고 똘똘 뭉쳐 사는 고장이다. 1950년대(이미 이민 40년 이상) 그들은 한어를 잘 모르고 살았으며 필자는 1966년 고중을 졸업할 때 한족과의 대화가 시원치 않았다. 이만하면 연변을 제외한 지역중 비교적 전형적인 조선족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1985년 필자 모교의 학생들은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조선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또 20년이 지난 지금은 적지 않은 조선족이 한족학교를 가며 조선족 학교에 다니는 자도 조선어를 외국어처럼 배워야 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또 20년이 지나면 조선말을 모르는 조선족학교로 되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정도 지나면 연변을 제외한 지역의 조선족은 조선말을 할 줄 모르게 될 것이다. 또 50년정도 지나면 연변의 조선족도 개별적 향 외에는 조선말을 할 줄 모르게 될 것이다. ‘글세_, 두만강 변두리 일부 마을의 조선족은 조선말을 할 줄 안다고 하던데 우리 연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이런 말을 들어야 할 때가 100년안에 다가올 것이다.

지금 우리민족의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있다. 하나는 수구(守舊), 퇴각의 길을 걸어 농촌과 벽지로 몰려 민족공동체는 보전하였지만 시대에 떨어진 골동품, 미국의 인디언 집거지처럼 되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인들이 연변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우리 한국 50년 전의 맛이 난다’라는 말을 자주 내뱉지 않는가! 다른 하나는 산업화 시민화로 발전하여 만족, 유태인처럼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전자를 포기하고 후자처럼 변할 것이다. 산업화, 시민화로 도약하면서 예전과 같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제3의 길은 불가능하다.

이 방향이 옳다고 인정되면 이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지금 <흑룡강신문>은 그가 복무하던 흑룡강의 많은 조선족이 내지 대도시에 진출한 현황을 감안하여 청도판, 상해판, 북경판, 천진판, 대련판, 광주판…을 꾸리고 있다. 심지어 장래 할빈에는 농촌판 편집실만 남겨놓고 편집부를 아예 북경으로 옮길 장원한 계획도하고 있다고 한다. 참 좋은 아이디어이다.

내지 대도시 조선족의 눈에 <흑룡상신문>, <연변일보>, <연변문학>, 연변가부단 연출, 촌스럽다. 연변대학교 졸업생, 촌 때 벗는데 시간이 걸린다…. 모두 대도시로 들어와야 한다! 적어도 길림시, 장춘, 심양, 좋기는 북경으로 들어 오라! 한국 지방의 웬만한 회사도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데 전 중국 조선족을 리드할 대학, 신문, 잡지, 예술단이 촌구석에만 엎디여 있을소냐! 하물며 우리민족의 대다수가 대도시로 집결되고 있는데 말이다.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는 미래 조선족 공동체는 어떤 존재의 형식을 취할 것인가? 위에서 말한 거주, 교육, 언어, 문자, 풍속, 습관, 기질, 응집력, 문화 등 특징이 선후로 하나하나 없어질 것이다. 거주공동체가 맨 먼저 없어지고 문화공동체가 맨 마지막에 없어질 것이다.

만족은 그 다수가 1664년 관내에 들어갔으며 약 250년을 기해 민족공동체가 없어졌다. 그러나 전 민족의 일대 도약을 실현하고 없어졌기 때문에 중화문화에 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중 한 가지 예로 현대 중국 보통화(普通話)의 핵인 북경방언은 만주어와 한어가 결합된 언어이다.

그토록 강대한, 중국 마지막 왕조의 통치민족까지 되었던 만족도 250년에 그 공동체가 없어졌는데 약소민족인 우리 조선족이 자기의 공동체를 250년이나 유지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며 중국, 나아가서는 세계 민족사, 이민사에 찬란한 한 페이지를 남기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는 이것만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다. 중국 이주 마지막 100년에 일대 도약을 실현하여 우리민족의 찬란한 문화를 중화민족의 문화에 담은 얼마라도 남기고 없어져야 한다. 우왕좌왕, 우물쭈물하다가 값없이 사라지면 절대 안 된다. 그때 가서도 우리민족의 문화공동체가 살아 남으면 참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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