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정인갑
우리말로 '총각'은 '장가 갈 나이가 되였지만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남자'의 뜻이다. 즉 '處女'와 반대되는 말이다. 그런데 '총각김치' '총각 미역'이란 말이 잘 리해되지 않아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총각'에 대해 한번 고증해보고 이 글을 쓴다.
우선 '총각'이 한자어일 것이라는 추측이 앞서므로 고대문헌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중국문헌에서 그 뿌리를 찾았다. '총각'에 해당되는 한자가 ‘總角이'였다. 본래의 뜻은 머리칼을 양쪽으로 갈라 동여매 위로 올린 형태의 머리를 말하는데 그 모양이 짐승의 뿔과 같다 해서 '總角'라고 부르게 됐다.
'總'자는 '동여매다'의 뜻이고 '角'자는 짐승의 '뿔'을 가리킨다. 현존하는 총각 골동품이 이를 유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河南省 安陽에서 발 굴된 아래의 總角 玉器 골동품 사진을 참조하기 바란다.
뿐만 아니라 고대 문헌에서도 '總角'의 이런 뜻을 찾아볼 수 있다. <시경(詩經)·제풍(齊風)·보전(甫田)>: '婉兮娈兮, 總角"O兮, 未幾見兮, 突而弁兮 (예쁘다, 멋지다/총각은 뿔 같다/얼마 안 본 사이에/벌써 약관이 됐구나)'.
옛날 중국에서는 남자가 약관(弱冠)하기 전이나 여자가 계년(笄年)이 되기 전에 모두 '總角' 형태의 머리를 했다. 그러하기 때문에 '총각'은 또한 미성년의 남녀를 총칭하는 말로도 썼다. 후세에는 시집가지 않은 녀자 및 성 경험이 없는 녀자를 '처녀'라고 구분하여 불렀지만 실은 '총각'이라 해도 무방했다.
역시 문헌에서 이런 의미의 예를 볼 수 있다. <시경(詩經)·위풍 (衛風)· 맹(氓)>: '總角之宴, 言笑晏晏, 信誓旦旦, 不思其反(총각 때는 서로 즐거워/웃음 꽃 활짝 피었었지/다짐한 맹세는 진실이었건만/ 지금 와 번복할 줄 몰랐네).' 애인에게 배반당한 여자의 노래인데 서로 어릴 때를 둘 다 '총각' 때라고 했다.
'총각'이란 말이 <시경>에 몇 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력사가 적어도 2,500년은 되였다. 이 말은 후세의 문헌에도 자주 나타났으며 청나라 때까지 계속 써왔다. <홍루몽(紅樓夢)>: '這院門上也有四五個才總角的小斯, 都垂手侍立(이 뜰 입구에도 총각 몸종 4∼5명이 모두 팔을 드리우고 서 있다).' 청나라 말년부터 ‘총각’이란 말을 점점 쓰지 않았으며 현대 한어에서는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
중국과 문화적으로 뿌리가 비슷한 우리도 옛날에는 '총각'을 중국과 같은 뜻으로 써 왔을 것이다. 허나 필자의 우리민족 문헌에 관한 지식이 박약하므로 본문에 그 예를 들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재미있는 일은 한자어에서의 '총각'은 의미가 변했거나 파생됐다. 한어의 '總角'과 우리말의 '총각'을 비교해보면 몇 가지 류의할 점이 있다.
첫째, 중국에서도 이미 사라진 이 말이 우리말에서는 지금도 상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원래 녀자도 '총각'이라고 했던 것이 우리말에서는 언제 둔갑했는지 남자만을 '총각'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셋째, '미성년'이란 뜻의 '총각'이 '결혼하지 않은 남자'로 둔갑되여 40대건 50대건, 심지어 60대, 70대건 결혼만 하지 않았으면 다 '총각' 혹은 '로총각'이라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넷째, 한어에서는 전혀 쓰여지지 않은 총각의 형상적 혹은 상징적인 뜻이 우리말에서 파생되어 형용사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즉 총각머리의 모양과 비슷한 사물에 '총각'이라는 관형어를 붙여 '총각-무' '총각-김치' '총각-미역(꼭지미역)'이란 단어가 생긴 것이 그 전형적인 례이다.
어느 조선족 식당의 메뉴에서 '총각김치'를 한어 '小伙子泡菜'로 번역해 놓은 것을 보았는데 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장가가지 않은 남자 김치'이다. 삶은 소 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할 일이다.
우리 동포가 경영하는 북경의 어느 김치공장에서는 총각김치를 '小伙子泡菜'라 이름지었을 뿐만 아니라 배추김치를 ‘大姑娘泡菜’라 이름 지어 팔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름지으면 앞으로 ‘寡婦泡菜(과부김치)’ ‘跑腿兒泡菜(홀아비김치)’…등 명사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총각’의 眞意를 모른데서 생기는 웃음꺼리이다.
'纓頭蘿卜泡菜'로 번역하면 딱 맞다. '總角泡菜'로 번역해 놓아도 괜찮다. 그 진의를 아는 중국사람들은 유서 깊은 우리문화에 감탄하며 혀를 내두르지 않겠는가! 그 진의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總角’은 고대 한어에서 많이 써오던 단어이며 그 뜻은 이러이러한데 우리 조선말에서는 지금도 옛날 그 뜻대로 쓰고 있다고 설명해 주면 현대한어에서 이 단어가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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