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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아차, 아뿔사, 깜빡했구나"
-정인갑
모 A(某A)는 한국 체류중 어느 교수로부터 상품권을 한 장 선물 받았다.
“우리반 학생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돈을 모아 나에게 사준 상품권이다. 상점에 가서 마음에 맞는 물건을 골라가져라.”
“반에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데?”
“40명.”
A는 그 교수와 갈라진 후 상품권을 꺼내 보니 ‘5’자 뒤에 동그라미가 따닥따닥 붙었다. 단, 십, 백, 천…한참 헤아리다가 시끄러워 지갑에 넣었다. ‘40명 학생이 모아준 것이니까, 50만원이겠구나.’ 그는 신나게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50만원 미만의 고급양복을 한벌 고르고 상품권을 내 밀었다.
“미안하지만 이거 5만 원짜리입니다.” A는 상품권을 받아 다시 헤아려 보았다. 단, 심, 백, 천, 만, 5만원이었다. 그는 뒤통수를 연속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아차, 아뿔사, 깜빡했구나!” A는 겨우 구두 한 켤레를 사들고 나왔다.
모 B(某B)는 한국의 중고플라스틱(塑料品)을 중국으로 수입하는 사업자인데 광동 (廣東)의 어느 사장과 함께 자금을 내여 장사하자 약속하고 한국으로 갔다. 구입할 물건을 마련해 놓고 광동의 사장에게 전화 걸었다.
“물건이 다 준비되었으니 빨리 돈을 보내라. 총 한화 1억 원이니까 당신이 5천만 원 보내!”“5천만 원?…” 상대방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 B는 다시 전화를 걸어 꾸짖는다.
“왜 전화를 끊어?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둘은 이내 말다툼으로 변했다.
“당신 같은 사기꾼과 장사 안 할 거야.”
“내가 왜 사기꾼이야? 함부로 남을 욕하지 마!”
“1억 원이라면서? 한국의 중고플라스틱을 다 긁어 모아도 1억 원이 안 될 거 아니야! 생사람 간 빼먹을 짓 하지 말라!”
“한화 1억 원이면 중국폐 54만원이잖아! 당신 27만원 내란 말이다!”
“아차, 아뿔사, 깜빡했구나! 알았어. 미안하다. 양해하라. 내일 이내 27만원 부쳐주마!” 광동 사장은 연속 뒤통수를 어루만진다.
한국 드라마는 중국의 한류를 유발했고, ‘한국 화장품을 쓰면 예뻐진다’, ‘프랑스, 일본 화장품에 비해 싸고 좋다’라는 말이 전 중국 젊은 녀인들의 상식으로 되였다. 중국 모 기관의 조선족 모 C(某C)는 며칠에 한번 정도로 한국 화장품을 들고 찾아오는 녀인들에게 시달림을 받는다.
“이 화장품은 어떻게 좋으며 쓰는 방법은 어떤가?” C는 한국말 설명서를 보며 하나하나 알려준다.
“이 물품은 가격이 얼마인가? 남에게서 선물 받은 거다.”
“가만 있자. 단, 십, 백, 천, 만, 5만원이다.”
“왜 그렇게 비싼가? 한국 화장품은 싸고 좋다던데.”
“한국폐 5만 원이면 중국폐 260원 정도다. 제하기 200하고 조금 얹어주면 된다.”
“260원이라면 좋을 텐데 왜 5만원이라 하고 260원을 받나?”
“북경에서 30년 전에 꽈배기(麻花) 하나에 20전이었는데 지금은 1원하잖아? 5배 부풀었거던. 한국도 경제가 발전하며 이렇게 부풀은거야.”
“중국은 30년에 5배 부풀었는데 한국은 왜 1000배나 부풀었지?”
“그건 나도 몰라! 말하자면 통화팽창(인플레이션)의 현상 때문에 빚어진 것이야.”
“미국 달러나 유러화는 부풀지 않은 것 같은데. 한국은 금년에 G20 의장국까지 되었으며 듣자니 이미 선진국이 되었다던데 왜 돈은 중국의 국민당이 대륙에서 망하는 해처럼 부풀어 있나?”
“나도 모른다고 하지 않아! 경제학자나 금융 전문가에게 물어봐라. 빨리 가! 귀찮아 죽겠다. 나 무척 바빠!”
C는 찾아오는 녀인 몇 사람 중 한 사람 꼴로 꼭 이런 곤혹을 치러야 한다. 화장품 설명에 5분이면 되지만 가격문제 운운하다 자칫 20분 이상이 낭비된다.
모 Z(某Z)는 중국의 유명한 출판사이고 모 D(某D)는 해당 출판사의 편지주임이다. 길림성 모 명문대의 Y교수는 Z에서 많은 저서를 출판했으며 D와 절친한 사이이다. 1984년 Y교수가 사망한 이듬해의 어느 날 길림성의 두 검찰관이 D를 찾아 왔다. Y가 사망한 후 전처의 자식과 후처의 자식 간에 유산 분쟁이 생겨 무엇을 확인하러 찾아왔단다.
검찰관 문: “Y교수가 1950년대에 8만 원짜리 골동품을 팔았다고 당신이 말한 적이 있다는데 확실한가?”
D 답: “확실하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문: “당신이 이자 한 말 법률적으로 책임질 만한가? 번복하지 않을 건가?”
답: “당연 책임진다. 내가 왜 번복하겠는가?”
문: “그러면 당신이 이 내용으로 증명재료를 하나 써주면 어떤가?”
답: “써 줄게!”….
이미 점심 때가 되여 두 검찰관은 증명재료를 써 놓고 자기네를 기다리라 약속하고 식사하러 갔다. 식사 후 그들은 얼굴이 벌개져서 왔다. 아마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술을 톡톡히 마신 모양이다. D는 이미 써 놓은 증명재료를 두 검찰관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증명재료를 찬찬히 보고는 서류 가방의 깊숙한 곳에 잘 넣는다.
“이놈들, 이젠 목덜미를 잡혔지! 은닉한 재산을 받아낼 거야!”
알고 보니 전처의 자식이 후처의 자식에게서 은닉한 유산을 받아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으며 이 둘은 전처의 자식이 보낸 검찰관이다. 1985년은 중국의 개혁개방 초창기이며 누가 1만원을 벌면 만원호(萬元戶)라고 신문에 대서특필할 정도였으니 8만원이면 많기로 천문학적 숫자였다. 두 검찰관은 큰 보배덩어리를 쥔 듯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이때 D가 말했다.
“당신네 나이를 지긋이 먹었으니 그때 8만원의 가치를 알 텐 데. 지금의 8원에 해당한다. 그때 Y교수는 골동품을 판돈으로 술 두 병밖에 사지 못했는데.”
1949년 국민당이 대륙에서 망하는 해에 통화팽창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좀 과장해 말하면 돈 한 자루를 들고 나가면 밀가루 한 자루밖에 살 수 없었다. 신중국이 창립된 후 구중국의 화폐를 한동안 그대로 썼었다. 사탕 한 알에 백 원 한 기억이 두 검찰관의 머리에도 떠올랐다. 그 후, 1957년인가 58년에 화폐 개혁을 하여 액수를 만분의 1로 축소시켰다. 말하자면 1만 원을 1 원으로 하고 100원을 1전으로 하였다. 그때 개혁한 화폐를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그만하면 중국은 인플레이션을 잘 억제한 셈이다.
이 말을 들은 두 검찰관은 이내 된 서리를 맞은 풀처럼 변했다. 뼈가 물러앉은 듯하다. 한 사람은 오리걸음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마 맥주를 배불리 먹고 참던 오줌이 마른 벼락을 맞고 찔 나온 모양이다. 다른 한 검찰은 연속 뒤통수를 치며 “아차, 아뿔사, 깜빡했구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라고 외쳐댔다. 골통품 판돈을 긁어내려다가 출장비로 그 골동품 가격의 200배 이상 쓰고, 김빠진 기분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다. 점심을 너무 사치스럽게 먹은 것도 후회된다.
중국인 모 E(某E)는 중국 인민폐 26만원정도 투자해 한국에 회사를 건립하는 건으로 은행에 가서 수속을 하고 있다. E는 서류에 50만원이라고 썼다가 퇴짜 맞았다. 5천 만 원이라는 것이다.
“아차, 아뿔사! 깜빡했구나!” 이번에는 다시 아라비아숫자로 5 000 000원이라고 썼다. 또 퇴짜 맞았다. 쓴 것이 5천 만 원이 아니라 5백 만 원이라는 것이다. E는 자기가 쓴 숫자를 찬찬히 헤아려 보았다. 단,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과연 5백 만 원이다. 세 번째 만에야 E는 겨우 맞게 쓴 셈이다.
E는 아니꼬운 생각이 들어 은행원과 한담을 늘여보았다.
“당신네 한국 돈 동구라미 둬 개 줄이면 안 되나? 만원을 백 원이라 하잔 말이다. 쇄세한 돈인데 천만이요, 억이요 하니 갈피를 못 잡겠다.”
은행원 왈: “추호도 불편할 것 없다. 환율만 기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자주 깜빡한단 말이야. 이를테면 한국과 중국은 시차(時差)가 한 시간인데 한국에 온 후 시계바늘을 한 시간 고치지 않고 써 봤는데 번마다 지각하는 실수를 했다. 관건 시각에 깜빡 하거던. 돈도 마찬가지단 말이야.
“십 만 원만 넘으면 단, 십, 백, 천, 만, 십만…이렇게 헤아리며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데 이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거다. 한국의 천만 인구가 평균 하루에 한 번 헤아려도, 한번 헤아리는데 6초라 쳐도 6천만초, 1년에 3 6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격이 된다. 한국인은 습관이 돼 헤아리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외국인들은 꼭 이렇게 헤아리게 된다. 그리고 돈을 쓰는 칸도 상대적으로 넓어야 하니 종이 낭비도 되고.
“후진국일수록 화폐의 액수가 큰데, 이를테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우동 한 그릇도 몇 십만 원 한다. 그런 나라에 가면 후진국이라는 개념이 머리에 꽉 차서 실수를 안 하는데 한국에 오면 선진국이라 생각하면서 자주 실수하게 된다. 선진국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다.”
“…”
은행원은 잠자코 듣기만 하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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