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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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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로의 전환기 중국과 서양의 만남(최선향)
2017년 09월 07일 15시 39분  조회:1698  추천:1  작성자: 정음문화칼럼
근대라는 시점은 중국 력사에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다.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해온 중국은 력사적으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오래동안 책봉-조공의 관계를 이어오면서 종주국으로서의 위엄을 떨쳤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영국, 프랑스 등 서구 렬강들의 침략을 받으며 기나긴 아픔을 견뎌야 했고, 종주국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근대로의 전환기에 청나라는 이미 쇠퇴의 조짐을 보이고있었지만, 여전히 강한 중화사상을 가지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전근대의 중국은 주변 국가들에 막강한 정치, 경제,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고있었기때문이다. 쉽게 례를 들면 한자를 사용하는 한자문화권과 유교문화권의 형성이 그 좋은 례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조선글이 조선시대 세종대왕때 창제되여 1446년에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반포되였지만, 조선시대 사대부 량반들은 조선글을 녀자들이나 쓸 글이라고 낮잡아 암글이라 일컬으며, 별로 사용하지 않고 한문(漢文)을 사용하였다. 조선글이 창제된 후에도 조선왕조의 공문(公文)은 줄곧 한문이였다. 1894년 갑오개혁을 실시하며 조선글이 공문으로 반포되긴 하였지만 조선글은 여전히 한문과 같이 사용해야 하는 문자였다. 

조선반도만이 아니라 일본, 베트남도 한자를 사용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문화권이 형성되였고, 중국의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유교문화권이 형성되였다. 유교 사상에 기반한 률령과 의례(儀禮), 제도(과거제도, 중앙과 지방의 행정제도) 등도 주위 나라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문화적영향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보면 중국은 주변국가와 오래동안 책봉-조공 관계를 유지해왔다. 조선과 베트남 등 국가들은 정기적으로 중국에 조공 사신을 파견하여 공물을 바쳤을뿐만아니라 새 왕이 즉위하면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아야 했다.

력사적으로 보면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중국인은 화이론(華夷論)적세계관을 가지고있었다. 그들은 세계를 중국 및 그와 조공관계에 있던 나라를 합한 직방(職方)세계 중심으로 인식하였다. 천하 국가를 조공—책봉의 관계로 파악했던 송나라 이후의 중국인이 그린 세계지도는 직방세계만을 표현하는것이 일반적이였다.

그러나 명나라 말기 서양 선교사를 통해 전해진 서양의 세계지도는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 류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보면 “마테오 리치(利馬竇)의 지도에 나타난 해양의 여러 나라를 보니, 중국은 동쪽 구석에 치우쳐있으면서 크기가 손바닥만하고, 우리 나라의 크기는 버들잎만하며, 서역은 천하의 중앙이 되여있다. 마음이 허탈하여 수용할수 없으니, 우리 나라에 이름 전한자가 잘못한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의 지식인이 이렇게 허탈하다고 하였으니 중국인들은 오죽했으랴? 

근대에 이르러 중국인들은 지리적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했을뿐만아니라 화이론적세계관도 버려야 했다. 고대로부터 북방의 여러 유목민족과 충돌해온 력사를 갖고있는 중국은 유목민족들이 인의(仁義)를 지키지 않고,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변덕스럽다는 인식을 갖게 되엿다. 근대에 이르러 중국에 온 서양인들 역시 북방의 유목민족과 다를바 없는 오랑캐라고 여겼으며, 서양 국가들과의 대외관계를 허락하지 않고, 무역만을 허락하였다. 대다수 사대부들은 서양과의 관계 역시 조공제도의 틀안에서 리해하면서 영국 등 서양 국가들을 중국과 대등한 나라로 대우하지 않았다.

1840년대까지 청나라 관료들은 서구 렬강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였다. 1840년대와 50년대, 림측서(林则徐)와 공자진(龚自珍) 등을 포함한 청나라 사대부들은 서양 국가의 국명을 쓸 때, 보통 짐승과 상관된 편방(偏旁, 보통 犬字旁)을 썼다. 이에 불만을 느낀 영국은 1858년에 체결한 천진조약 제51조에, 이후 청정부의 모든 공문에 영국 국민을 표시할 때 “夷”자를 쓰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1861년 이후 중국의 대외관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두차례 아편전쟁에서의 실패와 1860년 영국과 프랑스 련합군의 북경 점령, 그리고 원명원을 불태워버린 사실은 청나라의 일부 관료들로 하여금 서양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하였다. 그들은 서양인들은 예전에 중국을 침입했던 오랑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것을 인식하게 된다. 

1861년에 외국 외교관들이 북경에 거주하게 되며, 청정부는 중앙에 서양 국가들과의 외교 업무를 주관하는 총리각국사무아문을 설치한다. 그리고 18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곽숭도(郭嵩燾)를 첫 영국주재 공사로 파견하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 만족 관료들은 자신의 신분을 높이기 위해 외교사무를 기피하였으며, 서양에 외교관으로 파견되는것을 류배지에 류배되는것과 같은것으로 리해하였다.

문화적자부심이 강한 대다수 사대부들은 서양문화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865년, 리홍장(李鴻章)에 의해 설립된 강남제조국의 역서국(譯書國)에서 서양서적을 많이 번역, 출판하였지만, 1890년대 중반까지 근 30년 동안 13만 권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후쿠자와 유키치(福泽谕吉)의 《서양사정(西洋事情)》은 1865년에 출판되자 거의 즉시 25만권이 팔렸다고 한다. 당시 4억명이 넘는 중국의 인구 규모와 비교하면 중국인들은 정말 서양문화에 별 관심이 없었던것이다.

그러다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던것 같다. 이번 전쟁의 실패로 중국은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잃게 되면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2000여 년간 이어오던 책봉-조공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서구 렬강들에 의해 령토가 분할되는 심각한 민족적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중국은 서양과 일본에 대한 생각을 철저히 바꾸게 된다. 그전의 양무운동시기까지만 해도 서양의 과학과 기술, 무기에만 관심을 가질뿐,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자국의것을 고집했던 중국에서 이제부터는 사상, 제도적인 측면에서 서양과 일본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참고문헌:

徐中约著,朱庆葆、计秋枫译,《中国近代史(1600—2000:中国的奋斗)》,世界图书出版公司北京公司,2013年第2版。

[美]费正清、刘广京编,中国社会科学院历史研究所编译室译,《剑桥中国晚清史(1800-1911年)》上、下卷,中国社会科学出版社,1985年第1版。 

김문식, 《조선후기 지식인의 대외인식》, 새문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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