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알래스카에 살았던 털 매머드의 생활사가 상아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제공
지금으로부터 1만7100년 전 알래스카에 살았던 수컷 털 매머드 ‘킥’의 삶은 험난했다. 새끼 때 무리를 따라 당시 초원이었던 알래스카 유콘강 하류 일대를 누비던 킥은 열 다섯살 무렵 무리로부터 쫓겨나 척박한 북쪽으로 향했다. 킥은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던 끝에 결국 스물 여덟살이 되던 해에 알래스카 북부 언덕 지대에서 영양 부족으로 생을 마감했다.
상아가 발견된 강의 명칭을 따 킥이라는 이름이 붙은 매머드의 생애는 킥이 죽으며 남긴 상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매튜 울러 미국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해양생물학부 교수팀은 알래스카대 북부 박물관에 보관된 털 매머드의 상아 속 동위원소를 분석하고 이를 알래스카 지역의 동위원소와 연관시켜 킥의 생활사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고 1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길이가 1.7m에 이르는 털 매머드의 상아를 절반으로 쪼개 분석하는 모습이다.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제공
연구팀은 길이가 1.7m에 이르는 킥의 상아를 세로로 쪼개 분석했다. 매머드는 평생 꾸준히 상아가 자란다. 상아를 세로로 갈라 보면 마치 나이테처럼 성장선이 나타난다. 초식동물인 매머드가 지역의 풀을 먹고 자라면서 풀 속에 녹아 있는 스트론튬과 산소 동위원소가 매머드의 상아에도 그대로 저장된다. 연구팀은 상아를 40만 분의 1씩 매우 촘촘하게 나눠 매머드의 생애 연대를 자세히 기록했다.
알래스카의 동위원소 지도를 만드는 데는 다른 생물들이 쓰였다. 연구팀은 박물관에 보관된 알래스카 전역의 설치류 수백 마리의 이빨을 같은 방식으로 분석했다. 설치류는 먼 거리를 이주하지 않고 한 지역에서만 평생 산다. 설치류 이빨에서 발견된 동위원소를 설치류가 발견된 지역에 연결하면 알래스카 전역의 동위원소 지도가 만들어진다. 연구팀은 이 지도에 지리적 구조와 매주 이동한 평균 거리 등을 연결시켜 매머드가 일생 동안 이동한 경로를 추적해냈다.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제공
킥은 28년 생애 동안 지구 두 바퀴에 가까운 1만2000km 이상을 돌아다녔다. 킥은 새끼 때는 무리를 따라 유콘강 하류 일대를 돌아다녔다. 당시 알래스카 지역의 상당 부분은 빙하로 덮이지 않아 털 매머드의 생존에 유리한 초원지대였다.
새끼 때는 무리의 다른 매머드를 따라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나 15~16세가 되자 갑작스레 긴 거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킥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암시한다. 현대 코끼리들 수컷 일부가 무리에서 쫓겨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킥은 이후 북쪽으로 이동하며 더 높은 고지대까지 올라갔다. 오늘날 북미에서 발견되는 순록과 비슷한 사슴과 동물인 카리부와 같은 경로를 따라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킥은 알래스카 북부의 좁은 지역에서 많이 이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삶의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 킥의 상아에는 질소 동위원소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연구팀은 “이는 포유류의 기아 징후”라고 설명했다. 영양 부족으로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종들의 기후에 따른 이동 패턴과 범위를 살펴볼 수 있어 멸종된 종의 삶을 찾는 호기심 이상을 만족시킨다고 밝혔다. 울러 교수는 “북극은 현재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며 “우리는 과거를 사용해 현재와 미래에 살 종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매튜 울러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해양생물학부 교수가 킥의 상아 뒤에 앉아 있는 모습.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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