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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재력가인 이모씨는 1997년부터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아들(63)과 손자 등의 명의로 계좌 8개를 개설해 관리해왔다. 이들 계좌에 거액의 돈을 분산 예치한 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입출금을 반복했다.
그는 2011년부터 계좌를 하나씩 해지하며 정리에 들어갔다. 계좌 8개 중 4개가 아들 명의였다. 그러자 갑자기 아들은 “은행이 예금주인 내게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아버지가 예금을 빼가도록 허용했다”며 은행을 상대로 1억5500만원 청구소송을 냈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예금의 소유자는 명의자’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부장 홍이표)는 최근 은행 측 손을 들어줬다. “예금주는 아들이지만 아버지 이씨는 각 계좌 예금의 준점유자로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예금을 인출하거나 해지할 때 개설 당시 사용된 인감도장과 계좌 비밀번호가 일치하는 경우 은행 직원이 이를 의심해야 할 책임은 없다”고 밝혔다. 중앙지법 관계자는 “금융실명법 위반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예금을 내준 은행이 돈을 물어줄 책임이 있는지를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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