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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만 하나 해주면, 동남아 여행을 공짜로 다녀올 수 있대."
지난해 1월 주부 김모(58)씨는 친구에게 솔깃한 제안을 들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수입 금지품목’을 넘겨 받아서 국내에 몰래 들여오면 되다는 것, 물건만 운반하면 캄보디아 관광을 공짜로 시켜주겠다는 것, 성공하면 300만원 수당까지 챙겨주겠다는 것이었다.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알바’를 결심한 김씨는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박3일은 꿈처럼 빨리 흘렀다.‘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를 둘러봤고, 현지 식사도 즐겼다. 관광의 마지막 날, 프놈펜 한 주택에서 김씨는 운반할 물건을 넘겨 받았다. 투명한 봉투 안에서 하얀 결정이 반짝거렸다. "안에 있는 건 공업용 다이아몬드입니다. 절대 뜯으면 안 됩니다. 브래지어에 숨겨서 (한국에)들어가세요."
김씨는 시키는 대로 200g의 물건을 속옷 안에 숨기는 수법으로 국내로 운반했다. 그러나 ‘공업용 다이아몬드’라고 했던 이 물건은 사실 필로폰이었다.김씨와 같은 ‘주부 운반책’ 12명은 경찰의 마약 공급망 역(逆)추적 과정에서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캄보디아에 본거지를 둔 마약조직은 입국과정에서 의심을 덜 받는 30~60대 주부들을 운반책으로 썼다. 미끼는 캄보디아 무료관광이었다. 이렇게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들인 필로폰만 6kg에 달한다. 시가 36억원 상당으로, 동시에 2만여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수사는 마약 투약자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식으로 전개됐다. 투약자들은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공급자와 접촉했다"고 실토했다. 경찰은 바로 이 텔레그램 계정으로 필로폰을 주문하는 한편 ‘마약 값’을 넘겨줄 계좌추적에도 나섰다. 복잡한 계좌추적 과정에서 국내 판매총책 이모(46)씨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수사에 착수한 지 1년만에 거둔 성과였다.
‘몸통’은 캄보디아 프놈펜에 은둔한 공급총책 한모(58)씨였다. 하부조직원들은 그를 ‘한 사장’이라고 불렀다. 경찰은 운반책·판매책이 하나씩 잡힐 때마다 ‘한 사장’의 신상정보를 추궁했다. 이렇게 ‘조각 맞추기’ 하던 끝에 한씨의 전처(前妻)가 마약 밀반입 전과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씨를 만난 적 있던 유력 조직원이 용의자 사진을 보더니 "한 사장이 맞는다"고 증언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제는 잡는 일만 남았다. 캄보디아 프놈펜 모처에 은신한 그를 찾아내는 데에는 국가정보원이 협력했다. 인터폴(국제형사기구)도 합동 수사에 나섰다. 수 개월째 ‘한 사장’의 그림자를 쫓던 끝에 캄보디아 현지 조직원이 잡혔고, 그로부터 한 사장이 동거녀와 함께 프놈펜 자택에 은신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급습일은 12일 오전 8시 40분으로 정해졌다. 스무 명이 넘는 경찰 인력들이 프놈펜 시내에 자리한 한 사장의 단독주택으로 일거에 들어갔다. 동거녀와 함께 있던 한 사장은 "이게 무슨 짓이냐"면서 거세게 저항했지만, 다수의 형사가 짓누르자 힘을 쓰지 못했다. 이 집 안에는 필로폰 봉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캄보디아 마약조직 수괴 ‘한 사장’을 포함해서 검거된 인원만 43명이다. 이 가운데 14명이 현재 구속됐다.
12명의 주부운반책들은 상대적으로 혐의가 덜한 만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마약을 정말 공업용 다이아몬드로 정말 믿었던 걸까.
"솔직히 물건을 넘겨 받을 때 마약인 걸 알았어요. 순간적으로 돈에 눈이 멀었습니다." 주부운반책 가운데 4명은 이렇게 실토했다. 나머지 8명은 여전히 "나는 그게 공업용 다이아몬드로 보였다"고 잡아떼고 있다고 한다.
수사를 지휘한 서울 서부경찰서 박진상 강력2팀장은 "마약조직 수괴까지 잡혔으니 ‘주부 운반책’들이 마약인지 몰랐다는 진술의 진위도 가리겠다"며 "허위진술을 하면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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