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단 하루도 주어지지 않은 시간이지만 피고인에게는 교도소에서 17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 시간을 감사히 여기고 17년 후 어머니께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십시오”
8000만원가량의 빚을 어머니에게 털어놨다가 ”함께 죽자“며 질책을 당하자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숨지게 한 A(25)씨가 징역 17년의 형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심의 징역 22년을 징역 17년으로 감형한 항소심 결과를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불어난 신용카드 대금을 사채와 금융기관 대출로 돌려 막아보려다 8000여만원의 빚을 진 A씨는 지난해 10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다. A씨의 어머니(당시 55세)는 ”함께 죽자“며 A씨를 질책했다. 며칠 질책을 당한 뒤 A씨는 동네 페인트 가게에서 시너 2병을 샀다. 어머니가 샤워하는 사이 A씨는 집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냈다. 처음에는 함께 죽을 생각을 했지만 불길을 보고 무서워진 A씨는 홀로 집을 빠져나왔다. A씨 어머니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얼마 뒤 숨지고 말았다.
계획 범행…1심, ”어머니 심정 헤아릴 수 없어“
A씨는 처음에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에서 어머니 부탁으로 시너를 사 왔고, 어머니가 불을 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A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 탄로 났다. 어머니에게 빚 문제를 털어놓은 뒤 A씨가 ‘방화’ ‘살인 청부' ’자살방법‘ 등을 검색한 사실이 드러났고, 범행일에는 미리 시너를 사면서 마치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는 척 가장하는 등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피한 것이다.
A씨는 수사기관 추궁에 자신이 불을 지른 점을 인정했지만, 재판에서 ”정상적인 판단력이 현저히 결여된 상태에서의 가족살인“이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중학교 2학년 때 남동생이 사고로 뇌사판정을 받고 부모님이 이혼하자 A씨와 어머니는 함께 7년간 동생 병간호를 했다. 2015년 동생이 사망하자 우울증, 불안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과다한 빚으로 스트레스를 받다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질책당하자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됐다는 취지였다.
1심 재판부는 "A씨는 일시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있지만 지속적으로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심리적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범행 당시 인지능력이나 판단력은 정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어머니는 A씨에게 화를 내고 질책했지만 A씨의 빚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부터 빚을 갚으려 12시간여 동안 식당에서 종업원 일을 했다"며 "자식에 의해 단 하나뿐인 생명을 잃게 된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판결문에 썼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2심, "용서받을 수 없어…출소 후 어머니께 다시 용서 구하라"
지난 7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법정에 들어선 A씨는 재판 중 눈물을 보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는 혼자 집을 빠져나오면서 어머니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으며 현관문도 닫아버려 어머니를 살해했다”며 A씨의 죄가 절대 가볍지 않다고 봤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재산 때문에 어머니를 살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동생 사망 이후 무절제한 생활로 과도한 빚을 지고 이를 털어놨지만 질책이 계속되자 해리 장애와 유사한 스트레스 상태에 있었던 점 등 다소나마 참작할 측면은 있다”고 형을 17년으로 줄인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법정에서 재판부는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은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지만 20대 중반인 피고인이 40대 중반이 되기 전 다시 사회로 복귀하도록 형을 5년 감형한다”며 “돌아가신 어머니도 이런 재판부의 결정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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