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은퇴하면 아내와 24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중장년 남자의 이 ‘다짐’은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전쟁터와 같은 직장에서 은퇴한 남자는 그동안 챙겨주지 못했던 아내와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한다. 이런 남편의 생각에 동의하는 아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유로움을 누리고 싶다”는 아내도 꽤 있다. 남편과 아내의 생각은 어떤 점에서 갈릴까?
◆ 이제 24시간을 챙기라구?… ‘삼식이’는 절대 NO
아내가 수십 년 동안 해온 가사노동도 ‘전쟁’과 다름없다. 남편과 자식들의 뒷바라지 때문에 골병이 든 주부들도 많다. 중장년 여성들은 이제 가사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고지식한 남편이 은퇴 후 집에서 삼시세끼를 원하면 심신이 고단해진다. 이른바 ‘삼식이’다. 남편을 위해 삼시세끼를 준비할 경우 ‘자유시간’이 거의 없다. 여기에 남편의 반찬투정까지 있다면 최악이다.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남편의 은퇴가 또 다른 ‘구속’인 셈이다.
◆ 현명한 남편들… “아내에게 요구 않고, 직접 식사 챙겨요”
진정으로 아내를 위하는 중장년 남편들은 ‘이런 음식’을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냉장고를 열어 식사를 챙기고, 간단한 요리는 직접 한다. 시장에서 반찬을 사오기도 한다.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힘든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듯이 나이든 아내에게도 ‘가사 퇴직’을 배려하는 것이다.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아내를 못 챙겨 미안하다면 먼저 가사 부담부터 덜어줘야 한다.
◆ 코로나 시대, 고단한 가사노동… 오미크론 걸리고도 가족 뒷바라지
2년 넘게 이어온 코로나 유행은 주부들에겐 최악의 시간이다. 남편, 자녀의 재택근무로 장기간 삼시세끼를 준비해야 했다. 가족 중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있다면 스트레스는 더 올라간다. 오미크론은 가족 감염이 다반사여서 주부들은 더 힘들다. 본인이 오미크론에 걸리고도 가족 뒷바라지를 하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 시대는 고단한 가사노동의 결정판이다.
◆ 국어사전에 오른 ‘은퇴 남편 증후군’ 왜?
‘은퇴 남편 증후군’이란 말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은퇴하고 집에만 있는 남편 때문에 아내가 심신의 피로나 스트레스, 우울증 따위를 느끼는 증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직장을 위해 가정을 등한시했던 가부장적 남편들과 살며 평생을 참아 왔던 아내들이 남편의 퇴직을 전후해 ‘은퇴 남편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은퇴 남편 증후군은 심한 경우 우울증, 불면증, 위염, 두드러기 등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남편의 은퇴로 인한 아내의 우울증 위험이 70%까지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서울대 의대 연구팀).
◆ ‘황혼 이혼’, 전체 이혼의 17.6%… 은퇴 시기와 갱년기가 겹치는 게 문제.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202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혼인생활을 30년 이상 지속한 이른바 ‘황혼 이혼’이 전체 이혼 건수의 17.6%를 차지했다. 10년 전(2011년)과 비교하면 10.6%가 늘어난 수치다. 자녀들이 모두 성장한 후 불화를 해소하지 못하고 이혼을 선택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직장인의 은퇴 시기는 남녀의 갱년기와 겹친다. 호르몬의 변화로 몸이 요동치는 시기에 정서적·경제적 불안이 한꺼번에 찾아와 심신이 더욱 힘들어진다. ‘삼식이’ 문제로 불화가 빚어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년을 맞았더라도 평생 다닌 직장에서 멀어진 남편도 우울감이 높아질 수 있다.
중장년 부부는 이해와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남은 20~30년을 같이 할 ‘파트너십’을 회복해야 한다. 은퇴한 남편도 집에만 있지 말고 바깥 활동을 늘려야 한다.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을 위해서는 외부활동이 필수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어렵지만 각종 모임이나 사회·봉사활동을 하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퇴직하면 아내와 24시간 지내겠다는 초심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배우자를 배려하는 이해심과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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