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만두 빚기에 한창 열이 올랐다. 딸과 사위가 만두를 너무 즐겨 먹어서 며칠에 한번씩 만두를 빚는다. 제철인 청무우, 주황색 당근, 목이버섯, 노오랗고 찰진 옥수수알갱이, 펄쩍펄쩍 뛰는 신선한 새우 등 다섯가지 재료로 만두속을 만들어 만두를 빚는다. 청무우는 물이 많고 싱싱하면서도 달큰한 맛이 만두속으로 넣기에 안성맞춤이다. 채칼로 쓱쓱 민 다음 소금을 살짝 뿌려서 수분이 빠져 나오게 하고 보에 넣어 꾹꾹 짜서 물기를 빼 버린다. 당근은 채칼로 썰어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낸 다음 칼로 다져줘야 감미로운 풍미가 더해진다...
이렇게 재료 손질이 다 끝나고 나면 통후추 기름장을 만든다. 후추향이 진하게 우러나도록 기름에 튀긴 후 후추는 걷어내고 다진파에 부어 파기름으로 업데이트시켜 이미 준비된 재료들과 같이 가볍게 버무려준다. 색갈만 봐도 눈이 즐겁고 식욕을 부쩍 살아나게 하는 만두속이다. 파랑, 노랑, 주황, 검정과 회색의 오색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만두속은 그야말로 채색 무지개 빛갈이라 해야겠다.
군침이 흐르고 입맛을 자극하는 만두속은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 영양가 역시 더 말할 나위 없이 높다. 칼로리는 낮고 영양가는 높아 식탁의 인기 메뉴다. 미리 발효시켜둔 밀가루 반죽을 동글납작한 만두피로 만들어 이쁜 만두속을 꼭꼭 채워넣은 다음 시계바늘 반대 방향으로 돌려가며 한겹두겹 주름잡아주면서 예쁜 만두를 만든다. 물이 끓은 후 찜통에 15분 가량 쪄주면 눈에 띄게 부푼 희고도 봉긋봉긋한 귀여운 왕만두가 눈앞을 환하게 반겨주고 있다. 만두피는 쫄깃하면서도 입안에 착착 감기는게 가관이고 만두속은 촉촉하면서도 감칠맛이 일품이고 새우살과 옥수수알갱이가 씹히는 촉감에 행복의 미소가 저절로 피여난다.
그야말로 환상의 하모니이다. 가족식구들이 한입 맛보는 순간부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어요, 맛있어!” 하며 만두 먹기에 정신이 없다. 너도나도 즐겨먹어 한끼에 몇십개는 눈 깜짝할사이에 사라지군 한다. 저마다 웃음지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에 바쁘고 힘들었던 순간들은 어느새 가뭇없이 사라지고 가슴속 깊이 느껴지는 보람감과 행복감에 나도 몰래 가슴이 뭉클해온다.
예전엔 그리도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서 번거롭다고만 생각했던 만두 빚기가 지금은 아주 쉽고 간단한 료리가 된 것 같다. 자주 빚다보니 이젠 미립이 터 솜씨도 늘고 실력도 높아져 빚을 때 마다 맛과 멋과 영양을 확보한 료리사로 칭송받고 있다. 눈대중으로 만든 반죽과 만두속이 이젠 적지도 많지도 않게 묘하게도 딱 맞아 떨어지게 량을 장악해 자신도 깜짝 놀랄 지경이다. 예전엔 만두속이 남거나 만두피가 남을 때가 일쑤였는데...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게 입맛에 딱 맞게 간을 잘 맞추다나니 내가 빚은 만두는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어 매번 만두를 빚을 때마다 칭찬 일색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의 만두 빚기 실력을 갖게 되기까지 많은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지금도 생에 처음으로 만두를 빚던 그날, 빛바랜 오랜 시절의 옛 추억이 머리 속을 파고든다.
옛날 시골에선 생활이 어려웠던 지라 꼭 설이 되여야만 만두를 빚어서 먹을 수가 있었다. 그믐날 밤중에 온 집안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 앉아 뜨끈뜨끈한 만두를 먹어야만 설을 잘 쉬는 걸로 풍속이 되여버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해도 그믐날이 되여 아버지가 개성에 가서 사온 돼지고기와 가을철에 저장해둔 알배추로 우리 집 력사상 처음으로 만두를 빚던 날이였다. 만두속 재료는 엄마 담당이였고 밀가루 반죽과 만두속을 버무리고 간을 맞추는 건 아버지 담당이였다. 준비가 순조롭게 잘 되여가고 집안엔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로 명절 분위기가 훈훈했다.
이제 만두피를 밀어서 만두를 만들어야 하는데 엄마가 밀 줄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아버지가 나무람을 하면서 말다툼이 생겼다. 급기야 낯을 붉히고 언성을 높여가며 말다툼을 하는 바람에 삽시간에 집안 분위기가 살얼음판이 돼 버렸다. 나는 한편으론 무서워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다른 한편으론 명절에 다투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속으로 화가 났다. 어린 나이였지만 싸움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대뜸 내가 밀어 보겠다고 자원해 나섰다.
타고난 재간이라고 해야 할가, 나는 처음 해보는 솜씨 같지 않게 제법 잘 밀었다. 처음엔 좀 서툴러서 손바닥도 아프고 만두피 모양도 별로 이쁘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다 나니 속도도 빠르고 모양새도 변두리는 얇고 중간은 볼록하게 동그스럼하게 아주 이쁘게 잘 밀어냈다. 그날 나는 처녀작으로 설날 만두피를 혼자서 몽땅 밀어냈다. 엄마와 아빠는 말없이 만두피를 척척 밀어내는 나를 바라보며 기뻤던지 그새 기분이 풀려 만두 빚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해 설날은 행복한 설날로 즐거웠던 기억이다. 그후부터 만두피 만드는 일은 자연스레 내 몫으로 되여 버렸고 나는 만두도 예쁘게 잘 만들어 총명하고 예쁜 딸로 칭찬을 받게 되였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지금 사람들은 거개가 밖에서 하는 만두가게에서 만두를 먹기가 일상화 되였다. 설을 제외하고 집에서 만두를 빚어 먹는 일은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작년 가을 상해에 있는 딸애 집에 반년간 머물면서부터 딸애가 엄마가 직접 만든 만두를 먹고 싶다고 졸라대는 바람에 오랜 세월 접어두었던 만두 빚기를 다시 시작했다. 잠자던 솜씨가 부활이나 한 듯 만두맛이 업이 되여 기막힌 감칠맛이 가족들 입맛을 단단히 사로잡아 버렸다. 딸애는 펄쩍펄쩍 뛰는 싱싱한 새우살로 만든 만두를 제일 즐겨 먹었다. 찜통에 금방 쪄낸 만두는 복주머니마냥 귀엽고 통통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절로 돈다. 뜨거워서 호호 불어가며 단번에 몇개씩이나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맛있는 음식은 나누어 먹어야 더 맛나는거라며 즉시로 심부름군을 시켜 지인과 딱친구들에게도 곧잘 선물했다. 한결같이 너무 맛있다는 칭송과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달받군 했다. 올해 가을 나는 또 상해에 있는 딸애 집에 왔다. 임신한 딸애가 매일 통화하면서 하는 말이 엄마가 해준 새우살 왕만두가 너무너무 먹고 싶단다. 밀가루 두포대와 만두 만드는 전용도구들도 새것으로 언녕 구입해 놓았고 엄마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다. 비행기 티켓도 바로 예매하겠다고 했다. 임신한 딸애가 먹고 싶다고 하니 나는 열일을 뒤로 하고 부랴부랴 상해로 날아왔다.
도착한 이튿날로 새우살을 넉넉하게 넣어 만든 부드럽고 통통하고 맛이 일품인 왕만두를 만들어 주었다. 딸애는 정말 맛있다며 바로 이 맛이라며 깔깔깔 웃어가며 역시 엄마가 만든 만두가 최고라면서 엄지척과 하트를 연신 날렸다. 큼직한 찐만두 5개를 눈 깜짝할 새에 먹어치웠다. 물만두, 찐만두를 번갈아가며 며칠에 한번씩 해서 먹였다. 이젠 만두 빚는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료리감각이 살아나 밀가루 반죽은 물론 손놀림이 빨라 순식간에 맛좋고 건강에 좋은 맛있는 만두를 밥상에 으쓱하고 등장시킨다.
오늘도 나는 임신한 딸과 열심히 일하는 사위를 위해 신나게 만두를 빚고 있다. 퇴근 후 문을 열자 바람으로 만두향에 취해 미소짓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맛있다 맛있다 연신 감탄하며 행복해하는 가족들 얼굴을 그려보면서 열심히 정성을 다해 만두를 빚고 있다. 사랑하는 자식들과 가족들의 만족스러운 웃음꽃이 내 마음속 행복꽃으로 활짝 피여나는 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와 가슴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오늘도 나는 흥겹게 만두를 빚고 있다.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빛갈 곱고 맛 좋고 건강에 좋은 복주머니 만두를 정성스레 빚고 있다. 누군가 행복이란 보이는 사람에게만 가만가만 찾아온다고 했다. 엄마가 오니 나의 해피한 생활이 시작되였다고 기뻐하는 딸의 말처럼 오늘도 나는 행복을 소복소복 채워 넣은 사랑의 만두를 빚고 있다.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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