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그루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어린시절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를 엿듣고 배워 흥얼거렸던 추억의 노래다. 그 옛날 고즈넉한 밤이 되면 둥근달을 마주하고 조용히 불렀던, 달님 속에 계수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했던 어른들의 말씀에 귀가 쫑긋해 계수나무를 찾느라 눈이 빠지도록 달님을 쳐다보며 불렀던 이 노래에 오강이 달나라에 가서 찍어도 찍어도 계속 살아만 나는 계수나무를 찍었다는 전설, 오강이 달나라에서 계수나무를 가져와 인간 세상에 계수나무가 생겼다는 전설, 오강이 천하 제일 아름다운 술ㅡ계화주를 만들었다는 전설...
어린 시절 무심코 불렀던 가사에 이렇게도 많은 풍요로운 전설이 담겨 있는 줄은 올해 가을 상해에서 수많은 계수나무를 직접 목격하면서부터 비로소 알게 되였다. 노래를 부르면서 알게 되였던 그 이름 계수나무, 전설중의 계수나무를 바로 눈앞에서 꽃이 만개한 향기 그윽한 계수나무를 마주하고 오늘 다시 이 노래를 불러보게 될 줄이야 내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옛말 하나 그른데 없나보다.
10월의 상해는 도시 전체가 계수나무 꽃향기 속에 푹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거리마다 도로 량켠에 무성하게 자란 계수나무에 가지마다 촘촘히 8개 혹은 10개씩 짝을 지어 풍성하게 피여나는 노오란 계수나무 꽃이 예고도 없이 사람들의 발목을 사로잡는다. 아담하고 예쁘장하고 화사한 꽃에 마음이 심쿵해 저도 몰래 시선이 쏠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련속 사진을 찍어댄다. 꽃도 꽃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 까지 소리 없이 스며드는 매혹적인 향기에 취해 도무지 헤여나올 수가 없다.
어느새 얼굴엔 미소가 웃음꽃으로 활짝 피여나고 마음속엔 행복의 꽃향기가 스며든다. 아빠트단지 곳곳에서도 꽃향이 물씬물씬 코끝을 자극하며 들떠있는 마음에 향수를 불어 넣는다.천하에 유명한 문인묵객들 마저도 문필을 아낄세라 극찬을 쏟아냈던 계수나무 꽃향. 코끝을 들이대지 않고 숨만 쉬여도 페부 속 깊숙이 스며드는 향기, 멀리서도 전해지는 어화둥둥 절로 기분 상쾌해지는 그 향기, 맡으면 맡을수록 행복해지는 그 매력에 나는 연신 절찬을 하며 셀카 찍기에 열을 낸다. 마침 사는 동네 골목마다 계수나무들이 보기 좋게 줄져있어 나는 하루에 몇번씩이나 골목을 오가며 꽃향을 온몸으로 만긱하군 한다. 동북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매일 느껴보는 그 꽃향은 신기함이고 사치이고 향수다.
계수나무 꽃은 중국 10대 명화중의 하나로 꼽히는 꽃이다. 평균온도 15ㅡ28도와 습도 70ㅡ80의 환경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연한 노란색 꽃술을 지닌 미니형 꽃으로 꽃 한송이를 보았을 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헌데 몇송이씩 촘촘히 모여서 짝을 이루며 뭉쳐서 피여나는 계수나무 꽃은 정말 가관이다. 꽃이 만개할 시기에는 가지가 휘여지도록 화사하게 찐한 노란색 꽃이 푸른 잎을 거의 덮어버릴 정도로 나무 전체가 꽃에 쌓여 마치 현란한 금꽃인양 아름답기 그지없다. 눈앞이 황홀하여 웃음이 저절로 터진다. 그 향기 또한 독특하여 청아하면서도 찐한 매혹적인 그윽한 향이라 맡을수록 빠져들어 무수히 많은 문인묵객들의 절찬을 한몸에 받아 천고에 길이 남는 시구들을 남겼다.
10월에 피기 시작한 계수나무 꽃은 겨울철에도 거침없이 꽃을 피우고 쉼 없이 그윽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생장기가 길어서 계수나무를 달님과 함께 장생의 대표라고도 한다. 계수나무의 계(桂)는 부귀의 귀(贵)와 발음이 같아 부귀와 아름다움, 단아함과 고귀함의 상징으로도 불린다.
계수나무 꽃은 봄에 만발하는 봄꽃을 시샘 않고 독보적으로 가을에 조용히 핀다. 봄에 흔한 흰색, 진분홍색, 빨간색, 자주색과는 다른 연한 노랑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한다. 작고 귀엽고 부드럽게 연한 노란색 계수나무 꽃을 자세히 눈여겨보고 있노라면 웬지 저도 몰래 아련하고 부드러운 우리 딸을 보는 것 같다. 꽃잎이 너무 여려 강한 바람과 추위에 견뎌내지 못할 것 같지만 눈에 보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의지가 강하고 세찬 바람과 맵짠 추위도 마다하고 겨울 엄동설한에도 여전히 향기를 풍기며 이쁜 꽃을 피워내고 있는 계화꽃, 꼭 마치 온실안의 화초로만 보여졌던 딸애가, 모든 일을 엄마에게만 의거하던 딸애가, 이젠 자신감과 능동력과 당당함으로 인생을 빛내고 있는 딸애의 품성이 꼭 계수나무 꽃을 닮은 것 같다.
꽃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순간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평판 좋고 인품 좋은 집안에서 사남매중 막내딸로 태여나 가족사랑 듬뿍듬뿍 받으며 자랐던 우리 엄마, 아빠한테 시집 온 뒤로 온갖 고생 다 하면서 고된 인생살이에 모진 역경과 풍파를 이겨내고 자식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아 부은 엄마, 평범함 속에 아름다움과 귀한 품성을 갖춘 엄마가 꼭 계수나무 꽃을 닮은 것 같다.
계수나무 꽃향이 바람에 실려 가을 십리안팎을 향기의 바다로 물들인다. 흔히들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한다. 향기 있는 녀자, 향기를 전하는 녀자, 향기 넘치는 녀자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후반생을 살고 싶다, 계수나무 꽃향처럼.
/향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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