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리현 길흥조선족만족향 후춘촌을 찾아서
장마비가 기승을 부리던 7월말, 벌리현조선족중학교 김규환교장의 안내로 벌리현 길흥조선족만족향 후춘촌을 찾아 떠났다. 련일 쏟아지는 비로 인해 침수지역이 속출하고 여기저기에 피해소식이 련발하는 가운데 떠나는 길이라 근심이 앞섰지만 이날만은 날씨가 화창하고 도로상황도 괜찮아서 40여분만에 후춘촌에 도착했다.
산밑에 자리잡은 후춘촌은 마을 규획이 잘되여서 집과 집사이의 간격이 일정했고 도로도 가로 세로 잘 빠져서 질서정연한 느낌이 들었다. 촌 사무실에서는 미리 련락을 받은 리일남 촌주임 겸 당지부서기(62)와 김명철회계(55)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소개에 따르면 후춘촌은 일제강점시기인 1930년대 말에 세워진 '집단부락'의 하나로서 조선반도에서 살길을 찾아 떠나온 함경도 등 지역의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조선족마을이다. 벌리현성과 30 킬로미터, 길흥향소재지와 6킬로미터 상거한 후춘촌은 호적 농가가 199호, 인구가 476명에 달하며 경작지면적이 4705무, 그중 수전이 1300무, 한전이 3405무에 달하며 주요 농작물로는 벼, 옥수수, 콩이다. 벌리현 산하의 조선족마을중에 비교적 큰 마을인 후춘촌도 여느 조선족마을처럼 해외로무, 대도시 진출로 인해 현재 마을에 상주하는 호적 농가가 19호, 인구가 33명밖에 되지 않는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300여명의 촌민이 현재 한국에서 로무에 종사하고 있다. 원래는 후춘촌에도 수전이 대부분이였으나 관개용수부족으로 수전을 한전으로 개량했다고 한다. 현재 토지양도세는 수전과 한전이 별로 차이가 없이 평균 헥타르당 1만1천여원에 달한다.
부친이 왜긍에서 교사로 계시다가 후춘촌으로 조동해 교편을 잡고 평생 후학을 가르치는데 정진했다는 리일남당지부서기는 1962년 이 마을에서 태여나 줄곧 이곳에서 살아온 토박이라고 했다. 두터울 후자를 쓰는 후춘(厚春)이란 이름때문인지 이 마을 사람들은 비교적 순박하고 인심이 후하기로 원근에 소문이 났으며 한때 고중까지 있는 완전조선족학교가 있었고 이 마을 출신 대학생들도 많아 '대학생마을'로도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2021년부터 촌주임 겸 촌당지부서기를 맡았다는 리일남당지부서기는 력대 촌지도부와 촌민들의 공동한 노력으로 운동기구들이 구전히 갖춰진 1500여평방미터의 마을 광장과 96평방미터의 촌사무실, 120평방미터의 로년협회 활동실이 세워졌다고 말했다. 올해 5월에 촌에서 근 4만원을 투입해 주요도로에 34개의 가로등을 설치함으로써 촌민들의 야간 통행에 편리를 도모했다. 마을의 중심도로를 비롯한 도로보수공사도 상급부문의 지지로 현재 추진중에 있다고 밝혔다.
촌 로년협회 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는 리일남당지부서기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인구 대부분이 로인들인 상황에서 촌지도부에서는 로년협회 활동을 전폭 지지하고 있으며 매달 촌 로년협회 활동실에 모여 정책학습을 비롯한 공식행사를 진행하며 화투, 마작, 문구치기와 같은 소형활동과 단체회식은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번 명절이나 현과 향의 행사에 문예공연팀도 파견하고 윷놀이 등 다양한 민속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이나 외지에 있는 촌민들이 귀향하면 우선 로년협회에 들려 인사를 하는 미풍량속도 자리잡아 후춘촌 로년들의 만년생활은 비교적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한 매년 촌민들과 로인들을 조직해 외지 단체유람도 조직해 견문도 넓히고 세상구경도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연길, 훈춘, 목단강, 경박호 유람코스를 잡아 곧 떠날 것이라고 전했다.
후춘촌은 전국생태향진인 길흥조선족만족향의 이미지에 걸맞게 식목조림과 화초재배에도 중시를 돌려 여름이면 록음이 우거지고 꽃이 만발해 공원마을을 방불케 하며 매년 길흥향의 당원운동회도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력사적으로 내려온 일부 토지외에는 대부분의 토지를 촌에서 통일적으로 관리, 양도하고 있어 벌리현적으로 토지분쟁이 비교적 적은 마을의 하나이기도 하다. 촌민들의 의료보험, 유선TV시청료, 수도세 등도 촌에서 통일적으로 납부하고 있으며 촌민들의 애로사항도 제때에 해결하기에 노력하고 있다.
별로 해놓은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데 이렇게 찾아주어서 고맙고 미안하다는 그들의 모습에서 선조들이 개척한 조선족마을을 지켜가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일정때문에 떠나야 하는 우리 일행을 잡고 점심 먹고 가라고 한사코 이끄는 리일남당지부서기의 행동에서 후춘촌의 인심을 다시 한번 읽을수 있었다.
/진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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