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년에 ‘소생(小生)’역을 맡았으나 지금은 ‘로생(生)’으로 되였다. 53세 나는 호남 상덕 한극고강(汉剧高腔)보호전승센터(이하 ‘센터’라고 략칭) 부주임 정송이 줄곧 걱정해온 것은 고강의 전승을 위해 어떻게 신인을 찾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였다.
상덕 고강은 2006년에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적 항목 명단에 등재되였다. 2024년 3월, 습근평 총서기는 상덕시에서 고찰하고 조사연구할 때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상덕은 문화전승이 있는 지방으로서 이곳의 사현(丝弦), 고강, 호자(号子) 등을 적당한 담체로 잘 전승하고 잘 리용하며 시대와 더불어 잘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센터의 평균 년령은 40세로서 ‘고령’극단이다. 새로운 혈액이 보충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전승, 리용, 발전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몇해전 정송은 한때 마음속으로 초조감을 느꼈었다.
30여년전에 정송은 상덕예술학교 희곡전공을 졸업했다. 대학교 조정으로 당지 학교들에서 전통희곡인재 양성임무를 더는 담당하지 않게 되였다. 그리하여 ‘희곡의 보금자리’로 불리던 상덕에서 희곡을 배우는 아이들이 점점 적어졌다.
겨울철 오후, 상덕시제7중학교 체육관. 연습복을 입은 13, 14세 나는 소년들은 몸매가 하나같이 미끈했으며 동작이 시원시원하게 이어졌다.
이런 아이들은 상덕한극후비인재정향위탁양성반에서 왔다. 상덕은 한극인재양성의 새로운 모식을 탐색했는바 센터에서 상덕시제7중학교, 호남유아사범고등전과학교와 련합해 정향위탁양성기제를 구축했다. 학비를 면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졸업후 직접 센터에 취직해 근무할 수 있다. ‘오디션’공고가 발표된 후 신청자수가 800명을 초과했다. 엄선을 거쳐 40명 아이들이 제1기 학원으로 되였다.
연습실에는 몇쌍의 특수한 사생관계가 얽혀있다. 위탁양성반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교원인 오건군은 정송의 스승이며 반주임 섭장유는 또 정송의 학생이다. 거기에 나젊은 얼굴들이 더해져 한극 고강은 4세대 사람들의 전승을 이어주었다. “안정적인 인재양성수송기제가 있어 마음을 지지누르던 돌을 드디여 내려놓을 수 있게 되였다.” 정송은 말했다.
신인외에 장소도 한때 난제로 되였는바 센터에서 희곡리허설을 할 때면 장소를 빌려 써야 했다. 전승, 리용, 발전의 새로운 공간을 어디에 가서 찾을 것인가?
작년이래 상덕시 선전문화부문의 지지 아래 센터는 상덕 하가(河街)에 입주했다. 정송을 따라 상덕 하가의 원앙주마루(鸳鸯走马楼)에 들어서니 센터배우들이 새해맞이 리허설로 한창 바삐 보내고 있었다. 청년배우가 한곡 뽑은 후 정송은 저도 모르게 갈채를 보냈다.
더 큰 무대도 있다. 시에서 상덕대극원을 새로 건설했는데 상반기에 교부되여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발전의 새로운 공간은 또한 시대와 더불어 병진하는 혁신 속에 깃들어있다.
옛희곡을 젊은이들이 좋아할가? 이는 신변의 사람과 일부터 얘기해야 한다. <도화원에서 밭을 일굴 수 있네(桃花源里可耕田)>는 센터에서 2024년에 현지취재후 서둘러 창작한 새로운 희곡으로서 얼마전에 제8회 호남예술절에서 6가지 대상을 거머쥐였다. 내용은 신농부들이 농촌에 뿌리 박고 량식을 가꾸어 치부한 생생한 이야기에서 취재했는데 ‘주인공’들은 모두 상덕백성들이 익히 알고 있는 향촌 전면적 진흥 인솔자들이다. “복장이 새롭고 춤이 아름답고 새로우며 제재가 참신하다.” 정송은 말했다. “시대의 흐름을 바싹 따라가며 당정책의 선전원, 새 시대 력사적 성과의 례찬자가 되여야 한다.”
상덕시제7중학교 체육관에서 14세 나는 상관인걸(上官仁杰)은 땀동이를 쏟으며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한극을 진흥하는 데 10대들도 힘을 보탤 수 있다.”
정송은 앞날을 내다보며 자기 생각을 터놓았다. “첫번째 아이들이 2031년에 졸업할 때 나는 아직 퇴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과 한 무대에서 함께 고강을 부르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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