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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23]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응어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26년5월6일 15시01분    조회: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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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석

몇십 년 전, 내가 서점에서 책을 도둑질했던 그 추잡한 일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깊은 응어리로 남아 있다.

1956년, 내가 왕청 제2중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시내 중심에는 서점 하나가 있었다. 그 서점의 책들은 마치 자석처럼 내 발길을 끌어당겼다. 하학후 하숙집으로 돌아갈 때면 나는 자주 서점에 들렀다. 진렬대에 널려있는 많은 책들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중에서도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백두산은 어디서나 보인다》, 《박팔양시선집》 같은 문학 책들은 더욱 나를 유혹했다. 나는 책표지부터 책갈피, 그리고 책 뒤편의 가격까지 훑어본 다음 아쉬운 대로 다시 진렬대 우에 책들을 올려놓군 했다. 그 책들이 아무리 보고 싶어도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였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그때 우리 집은 생활고로 어렵게 살아가는 형편이였다. 아버지는 일찍이 항미원조전쟁터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섬약한 몸으로 석현렬군속피복공장에서 버는 박봉으로 나와 동생을 키우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 집 형편에서는 절대로 돈을 주고 책을 사서 볼 처지가 아니였다. 나는 번마다 책을 들었다가 진렬대에 올려놓고는 아쉬운 발길을 돌리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중학교 1학년 후학기의 어느 토요일이였다. 그날도 나는 하학후 서점에 들렸다. 《조야와 수라》라는 새 책이 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책을 들고 책갈피를 훑어보다가 조야가 파쇼 독일군이 만들어 놓은 교수대 앞에서도 조금의 두려움 없이 군중을 향해 파쇼 독일놈들과 싸우라고 호소하는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정말 그 책을 집에 가져가서 읽고 싶었다. 그때 내 앞에 떡이나 고기국이 있다 해도 나는 단연코 책을 선택했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 책을 사자니 돈이 없고 훔치자니 량심에 가책이 되고… 욕망과 량심의 갈림길에서 나는 오락가락하며 심한 갈등에 빠졌다.

결국 책을 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나의 량심을 눌러 버렸다. 나는 책을 보는 척하며 슬그머니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나를 주시하지 않았다. 나는 상반신을 진렬대에 밀착시키며 책을 웃옷 밑으로 겨드랑이에 끼워 넣었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상한 시선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슬금슬금 출입문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책 진렬대에서 출입문까지는 불과 몇메터밖에 되지 않을 거리였지만, 내게 그것은 천 길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걸어가듯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나는 온몸의 신경을 바늘끝처럼 곧추세우고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힘겹게 걸어나갔다. 등 뒤에서 누군가 뛰여나오며 "이놈아!" 하고 내 목덜미를 성큼 움켜잡을 것만 같았다. 그때 만약 등 뒤에서 누가 "이놈아!" 하지 않고 그냥 "호석아" 하고 내 이름만 불러도 나는 깜짝 놀라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을 것이다.

서점을 빠져나온 나는 길게 한숨을 몰아쉬고 몇 걸음 가다가 내 꼴 보라 하고 정신없이 냅다 뛰였다. 이튿날 아침, 내가 기숙하고 있던 친척집 할머니가 나를 보며 "어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온밤 앓는 소리를 하고 헛소리를 하더구나" 하고 근심 어린 소리로 말했다. 한 번 도둑질이 무사히 지나가자 나는 담이 점점 커져 두 번, 세 번 욕심나는 책을 훔쳤다. 그 무렵 나 같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나도 책도둑은 돈이나 물건을 훔치는 것보다 배우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고상한 도둑질이라고 생각하며 책도둑질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같은 반 동창생이 책을 훔친 일이 담임 선생님께 발각되면서 나도 련루되여 걸리고 말았다. 나는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면서 이제 학교에서 책도둑으로 몰릴 생각을 하니 정말 밤잠을 편안히 잘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끝내 이 일을 공개하지 않으셨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공부도 하고, 겪는 일도 많아지면서 세상물정을 조금씩 알게 되였다. 그러면서 중학생 시절 책을 훔치던 일을 여러 번 되돌아보게 되였다.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은 로신의 단편소설 <공을기(孔乙己)>에서 공을기가 한 말이다. 공을기는 술집의 주객들이 그를 놀리며 "하씨 집 책을 도둑질했다"고 하자 "책을 훔치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다. 그저 빌리는 것이다.…… 선비의 일이니 어찌 도둑질이라 하겠는가"라고 말한다. 로신은 소설에서 고루하고 부패한 공을기 같은 옛 지식인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그러나 공을기의 "책을 훔치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다"라는 그 말만은 가난하고 못 살던 그 시절 책을 보고 싶어도 책을 사지 못하는 나 같은 학생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스스로를 용서하는 정신적 방패가 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책을 사랑하고 지식을 숭상하는 일과 책을 훔치는 일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일이다. 책도 작가의 신근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결과물이다. 책을 훔치는 짓은 작가의 로동 가치를 무시하고 서점의 자본을 침해하는 행위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지식을 숭상한다고 해서 책도둑질에 면죄부가 주어질 수 없으며 가난이 책도둑질의 정당한 리유가 될 수는 없다. 몇 년 전 법원에서 남경도서관의 책을 훔친 왕 모 씨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사실은 바로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류언비어에 대한 강력한 부정이며 비판이다.

정년퇴직 후, 나는 볼일이 있어 왕청에 갔다가 일부러 시간을 내여 옛날 그 서점 자리를 찾아가 보았다. 그때 나는 그 서점에서 책 한 묶음을 사들고 나오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서점 자리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번화한 상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몇십 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응어리인 어린시절의 부끄러운 그 행동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참회했다.

송호석 프로필

1943년 도문시 석현진에서 출생 

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방송국기자, 당정기관 공무원으로 근무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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