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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28]등잔불 아래에서 피여나던 이야기꽃
조글로미디어(ZOGLO) 2026년5월19일 09시43분    조회: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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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계순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이면 대부분의 집들에서는 재미있는 텔레비죤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면서 시선을 빼앗긴다. 또 적잖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얻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의 저녁은 밝고 화려한 화면 속 세상으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40여 년전 지난 세기 70년대는 지금과 너무나도 다른 저녁풍경이였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텔레비죤은커녕 라지오마저도 없었다. 전기도 귀했던 시절이라 밤이면 집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옛이야기를 잘하시는 어머니 덕분이였다.

어머니는 평소 말씀이 적으셨지만 우리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만큼은 목소리도 구성지고 표정도 생생하셨다.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어머니에게 옛말을 해달라고 졸라댔다.

그때마다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 어머니는 우리를 향해 돌아앉아 옛이야기를 시작하군 하셨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순간 방안은 더욱 조용해지고, 우리들의 눈은 모두 어머니에게로 집중되였다. 우리는 따뜻한 구들에 누워 낮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머릿속에는 수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산속에서 사는 호랑이,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무서운 귀신……. 많은 장면들을 머리속에 그리며 우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거짓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옛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군 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저녁을 기다렸고 이야기를 들을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이 되였다. 어떤 이야기는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재미있었다. 다음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들을 때마다 새롭고 감동적이였다. 지금도 그때의 따뜻한 구들방, 어머니의 목소리, 이야기에 빠진 우리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여름날 저녁이면 가끔 방영대가 마을에 찾아와 탈곡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탈곡장은 아이들과 어른들로 북적거렸지만 나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화면으로 보는 이야기는 눈에는 재미있어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 따뜻함은 어머니의 이야기에 비할 수 없기 때문이였다.

어느 날,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궁금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을 어디서 들으셨어요?"

어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릴 때 너희 외할머니한테서 많이 들었고 마을 어르신들인 송화 엄마랑, 경수 아버지, 장만이네 아버지한테서도 들었지."

그러면서 어머니는 자신이 어렸을 적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 시절에는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해가 지면 집집마다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여름날 저녁이면 동네 아이들은 모두 밖에 나가 커다란 매돌이 놓여 있는 버드나무 아래에 모여서 숨박꼭질도 하고 뛰여다니기도 하며 달과 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군 했다. 하지만 찬바람이 휭하니 부는 겨울날 밤이면 추워서 나가 놀 수 없었기에 아이들은 이야기를 잘하는 어른들이 있는 집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옛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오면 마을 어르신들은 "어서 오너라!" 하며 기쁘게 맞아주셨다. 아이들은 따뜻한 구들에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를 기다렸다. 어른들은 등잔불 심지를 돋구어 불을 더 밝게 하고 잠시 목청을 가다듬은 뒤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옛날도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였지……."

가물거리는 희미한 등잔불 속에서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을 빤히 쳐다보며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러다가 우스운 이야기가 나오면 배를 움켜쥐고 깔깔 웃었고 슬픈 이야기가 나오면 훌쩍훌쩍 울며 마음이 아파했다. 때로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둠 속에서 호랑이나 귀신이 나올까 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크게 뜨고 어둠속을 살피군 했다. 밤새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타래쳐 올라가는 등잔불 아래에서 옛이야기를 듣고 나면, 다음 날 아이들의 코구멍 주위는 시커먼 알락고양이처럼 까맣게 되군 했다. 그렇게 저녁마다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찬바람에 문풍지가 우는 긴 겨울밤을 보냈다.

그 시절, 이야기군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였다. 이야기 속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와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삶의 도리를 알게 되였으며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사이좋게 지내며 동네 어른들을 공경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따뜻한 마음도 키우게 되였다. 옛이야기는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인성과 도리를 가르치는 살아있는 교과서였던 셈이다. 이렇게 옛이야기는 책에 기록되지 않았어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여러 세대를 이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책이나 영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은 있어도 직접 살아있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군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아이들도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니지 않으며 마을에 따뜻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는 일도 드물어졌다.

텔레비죤과 스마트폰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한번 옛이야기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된다. 화면 속 정보도 편리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굴을 마주 보며 전해지는 따뜻한 목소리와 살아있는 이야기를 결코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정서이자 기억이며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오늘 저녁에는 잠시 핸드폰도 내려놓고 텔레비죤도 끈 채, 다시 한번 그 시절 어머니한테서 들었던 옛이야기를 떠올리고 싶다. 잊혀져 가는 등잔불 같은 온기를 되찾고 마음속에 아름답게 피였던 이야기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싶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누는 따뜻한 이야기의 힘이다. 등잔불 아래 피었던 그 이야기꽃이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계속 피여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리계순 프로필

1970년 10월 연길시에서 출생

연변제1사범학교 졸업

연길시 신풍소학교, 연신소학교에서 교원사업에 종사하다가 퇴직

석화문학원 회원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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