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봉
까마득한 오십여 년 전의 기억이지만 지금도 더듬어 보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궁핍한 살림 때문이였을 것이다. 일 년 가운데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날은 딱 두 번, 음력설과 6·1 국제아동절이였다. 설날이면 새 옷을 입고 새 솜신을 신고 평소에는 맛볼 수 없었던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선물처럼 받아든 새 옷, 특히 바지는 어찌나 쉽게 무릎이 닳아 터지던지... 그러면 어머니는 색이 다른 헝겊으로 무릎을 기워 주셨다. 그 기운 바지를 입고 학교를 다니던 나, 그리고 다시 6·1절을 목이 빠지도록 손꼽아 기다리던 나의 모습이였다. 6·1절이 돼야 흰 광목 적삼에 새 곤색 바지를 입고 흰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지금도 언제 설이 돌아올가, 언제면 6·1절이 다가올가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이며 달력을 넘기던 어린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 시절의 시간은 왜 그리도 더디게 흘러 하루가 삼 년처럼 길게 느껴졌을가?
사전은 이런 '기다림'을 '목적한 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 정의하지만 삶 속에서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그 감정은 단순한 정의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계산하거나 예측하지 않고 보상도 기대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을 온몸으로 견뎌 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감정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향해 마음을 오래 머물러 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생은 수많은 머뭄과 버팀의 련속이며 삶 그 자체가 그런 시간들로 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내 삶에도 각기 다른 얼굴의 그런 시간들이 숱하게 쌓여 있다.
새 옷과 새 신발을 향해 마음을 달리던 철부지 시절의 순진한 시간, 장마비에 생긴 물웅덩이를 낚시터인 줄 알고 하루 종일 땡볕 아래서 동동이를 바라보다 얼굴만 새까맣게 태운 채 허탕을 치던 동년 시절의 허망하고도 순수한 시간, 련애 시절 약속 장소에서 귀가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설렘과 초조함에 뒤섞여 상대의 그림자를 좇던 순간들, 고혈압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거친 손을 붙잡고 눈물로 깨여나시길 빌던 절박한 밤들, 난산으로 수술실에 들어간 안해를 두 손 꼭 맞잡은 채 발만 동동 구르며 숨 막히게 버텨 내던 시간들……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그런 순간들을 하나하나 불러내다 보면 끝이 없다. 고추밭 고랑에 빽빽이 선 모종을 솎아 내듯, 내 삶의 가장자리에 흩어져 있던 시간들을 듬성듬성 세워 본 것이다.
그 많은 순간들 가운데 지금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스무 해 전 여덟 살배기 아들이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안해를 향해 밤마다 내 목을 끌어안고 흐느끼던 모습이다. "3년만 지나면, 1,095날밤만 자면 온다"는 말에 아이는 날마다 백지에 정성껏 선을 하나씩 그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앞이 흐려지고 가슴이 저며 온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사람을 향해 마음을 오래 내여주는 일만큼 아프고 애타는 일이 또 있을가. 누군가를 향해 시간을 건너간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일이 아니라 삶을 통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 없이 이루어지는 만남이 있을가? 그런 시간 없이 내 것이 되는 것이 과연 있을가? 이를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긴 세월조차도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수 있지 않을?!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삶 곳곳에는 그런 흔적이 스며 있다. 신라 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왕자를 구한 박제상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그의 안해는 치술령에 올라 남편을 향해 마음을 놓지 못한 채 돌이 되였다는 망부석 설화를 남겼다. 그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도 깊은 머뭄이 흐른다. 그것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삶의 양념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사이비 교회에 빠져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어머니, 떠난다는 말도,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없었다. 다가가 보려 애써도 닿을 수 없는 그 시간은 지금도 가슴 한켠을 떠나지 않는다.
봄이면 길가에 핀 노란 개나리 앞에서 웃고 계시지는 않을지, 여름이면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오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계시지는 않을지, 가을이면 락엽 흩날리는 정자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시지는 않을지, 겨울이면 눈사람처럼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채 문득 문을 열고 들어오시지는 않을지...그런 상상을 하며 오늘도 하루를 건넌다.
십수 년, 수천 날을 가슴 졸이며 버텨 왔지만 아직 단념하지 못했다. 그 시간이 때로는 절망으로 무너져 내리고, 지침에 고개를 숙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밤마다 이슬처럼 피여나는 그리움만은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그 선을 다시 그어 본다.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언제까지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것은 아픔이고 목마름이며 가슴 저미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향해 마음을 내여주며 살아간다. 결국 삶이란 그런 시간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떫은 생감이 시간을 지나 홍시로 익어 가듯, 이 마음도 간절함이 깊어지면 그리움으로 변한다. 두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쌍둥이이다. 본능에 가까운 마음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지울 수 없는 머뭄과 그리움은 아프고 슬프지만, 동시에 삶을 따뜻하게 살찌우는 힘이 되기도 한다.
애간장을 태우는 시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시간. 삶은 어쩌면 형형색색의 이런 순간들로 짜인 색동비단 같은 것이 아닐가. 그 안에서 슬픔을 견디고 그리움을 품고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 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일 것이다. 그런 시간이 있기에 삶은 지루하지 않고, 생은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멋인지도 모른다.

주해봉 프로필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조선족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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