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일
술때문에 상처입고 한이 맺힌 아낙네들은 “그놈의 술공장에 불이라도 확 나버려라.”며 술에게 저주를 퍼붓군 한다. 술 때문에 아무 리유도 없이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눈물로 밤을 지새운 날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좋은 대학에 붙으면 동네 사람을 청하여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술잔에 술을 철철 넘치게 채워 드린다. 술좌석에서 누구든 술을 안 마시면 성질을 내면서 술을 권한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다. 미워하면서도 찾고, 원망하면서도 내여놓는 것이 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환경과 조건에서 술이 아니고는 다른 어떤 물건도 그렇게 완벽하게 잘 대처해 나갈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잔을 들고,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술상을 찾는다. 의사들은 경고하고 안해들은 잔소리하며 술 때문에 무너진 가정과 인생 이야기도 너무도 많이 들려왔다. 그런데도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술을 버리지 못했다. 버렸다가 또 데리고 오는 것이 술이였다.
우리 민족에게도 술은 단순한 애호품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덜어내며 말 못 할 사연을 풀어내는 매개체로 오래동안 서로 사귀여 왔다. 그리고 술은 기쁜 날에는 축배가 되고 외로운 날에는 말이 없는 위로가 된다. 사람들은 술잔을 사이에 두고 웃음을 나누고 마음의 자물쇠를 열며 주거니 받거니 술 한잔으로 처음 만남의 서먹함도 추풍의 락엽처럼 날려 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술과 헤여지지 못하고 함께 살아왔다. 결국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술 자체가 아니라 술잔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인정이 아닌가도 싶다.
술잔 속에 담긴 술은 한 모금의 액체가 아니라,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과 말하지 못할 사연을 잠시 내려놓는 쉼터이기도 하다. 어쩐지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만큼은 오래 뭉쳤던 응어리가 풀리고 억눌렸던 감정도 잠시 숨을 쉰다. 또한 술은 견디기 힘든 고뇌의 늪에서 잠시 발을 빼게 하여 참기 힘든 현실과 거리를 두게 하기도 한다.
나는 이제 술을 타는 난로에 비유하고 싶다. 추운 겨울밤, 난로는 한 가정을 포근하게 보듬어 주는 따뜻한 생활 도구이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옷이 타고 피부가 덴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하면 온기를 얻을 수 없어 감기에 걸린다. 술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는 삶의 따뜻한 온기가 되지만 거리를 잃는 순간 자신과 가족, 더 나가서 소중한 사람들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술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술 또한 마시는 사람의 인품과 절제를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있다. 결국 사람은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취하는 것이며 술을 이기는 사람은 술잔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절제와 술이 선사하는 웃음에 속지 않는 자기 단속의 힘일 것이다.
인간은 본래 외로운 존재이다.
태여날 때도 혼자 울며 세상에 나오고, 죽을 때도 혼자 길을 떠난다.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구도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완전히 들어올 수는 없다. 인간은 평생 많은 사람들,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결국 자기 안의 외로움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술은 때로 그 고독의 벽에 문을 열어 주고 콱 막힌 마음에 환기를 시켜 준다.
또한 술은 평소에 체면 때문에 하지 못하던 말을 하게 하고 자존심 때문에 숨겨 두었던 눈물을 흘리게 한다. 때로 굳게 닫혀 있던 마음도 열어 주고 서로의 상처가 드러낸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다. 어쩌면 인간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리해받고 싶어하는 갈망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더 편리해졌지만, 반드시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전화기가 생기고 인터넷이 생기고 인공지능까지 등장했지만 사람들의 외로움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련락처는 많아졌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줄어들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다시 술잔을 찾는다. 술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피난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술은 피난처일 뿐 목적지는 아니다.
잠시 소나기를 피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서 평생 살 수는 없다. 술이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잠시 그 고통과 고뇌의 아픔을 덜 느끼게 할 뿐이다.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고 시간이다.
인간은 술을 만들어서 긴 세월 동안 작은 잔을 통해 외로움을 나누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서로의 마음에 다가가는 법을 배워 왔다.
비록 술잔은 작지만 술잔 속에는 취기뿐만 아니라 말하지 못할 이성에 대한 절절하게 그리운 마음, 혈육들에 대한 끊지 못한 집착, 친구들에 대힌 그리움과 아픔 마음까지 녹아있다. 작은 술잔 속에는 승자의 환호도 실패자의 눈물도 있었으며 인간 력사의 그림자도 녹아 있다.
술은 인간의 위대함도, 인간의 나약함도 함께 비추는 거울이다. 어쩌면 인간이 술을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외로움과 나약함이 술을 붙잡고 놓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술의 진짜 의미는 화려한 병 속에 있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 깊이에 있다.
술은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사라지지만 함께 기울인 술잔 속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인간의 정은 세월이 지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술은 인생의 무게를 덜어 주지는 못한다. 다만 잠시 그 무게를 내려놓을 안개 낀 몽롱한 쉼터를 만들어 줄 뿐이다.
아침이 오면 무정한 현실은 그대로 기다리고 있지만 그 짧은 안개 낀 밤의 위안때문에 한 남자는 또 하루를 견딜 수 있다.
세상에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들, 술 한 잔의 위로마저 없다면 어찌 직장의 스트레스, 무거운 가정의 책임감,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삶의 고단함을 견디고 또 이튿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직장으로 나갈 수 있으랴.
아마 그것이 술이 인간 곁을 떠나지 못한 리유이고, 인간 역시 술을 무정하게 밀어내지 못한 리유인지도 모른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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