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광학
새하얀 성에가 유리창문에 꽃을 피우고 물방울도 눈 깜짝할 사이에 고드름이 지는 지난세기 60년대 오동지 섣달 이른 아침이였다. 부르하통하 남쪽 기슭 2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해 뜨기 전 이른 새벽에 누군가 버들방천 부르하통하에서 벌거벗은 '물귀신'을 보았다는 소문이였다. 그때만 해도 별 뉴스거리가 없었던 농촌 마을에 이 특대 소문은 이 사람의 입에서 저 사람의 입으로 옮겨지고 부풀려지면서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다.
벌거벗은 '물귀신'을 보았다는 소문을 듣고 동지섣달에 무슨 놈의 얼어 죽을 귀신이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도리머리를 흔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직접 자기 눈으로 본 듯이 이야기를 엮어 대며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도무지 누구의 말이 맞는지 헷갈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소문의 '물귀신' 정체가 밝혀졌다. 놀랍고 믿을 수 없는 것은 그 '물귀신'이 바로 한마을에서 살고 있는 나의 오촌숙부였다. 촌수를 따지면 아버지의 친사촌 동생이였다. 아, 이럴 수가? 온 집안에 란리가 났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동생을 찾아가 이게 대체 웬일이냐고 따지고 물었다. 그러자 오촌숙부는 일의 자초지종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털어 놓았다.
오촌숙부는 1963년도에 연변고중에서 대학시험을 보았는데 그만 락방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숙부는 그동안 시험공부를 하면서 몸이 지치고 쇠약한 상태에 설상가상으로 감기가 길어지면서 폐렴까지 겹쳐 바깥출입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숙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동안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아직 젊은 20대 나이라 병도 회복이 빨라 얼마 안돼 건강을 거의 회복했다.
오촌숙부의 병을 치료해 주었던 의사는 환자가 회복이 빠르자 함께 기뻐하면서 앞으로 계속하여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려면 우선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랭수욕에 대해 적극 추천하였다. 그래서 오촌숙부는 큰 결심을 내리고 지난 여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쭉 부르하통하에서 랭수욕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그렇지, 얼음강판이 쩡쩡 터지는 이 겨울에 이게 무슨 짓이냐,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내리는 게 창피하지도 않느냐? 이제라도 당장 그만두거라”하고 아단을 쳤다. 하지만 이미 굳은 결심을 하고 꾸준히 실행 중이던 랭수욕을 어찌 아버지의 몇 마디 꾸지람으로 막을 수 있을것인가! 거기다 랭수욕은 하다가 불시에 그만두면 상한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숙부의 말에 아버지도 더럭 겁이 났다.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넷째 삼촌, 즉 오촌숙부의 아버지는 어려운 선택을 거쳐 행운스럽게 늦깎이로 아들을 보았었다. 아버지는 그런 삼촌의 귀한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데 그것 남들이 말밥이 대수냐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해 겨울, 털가진 집고양이도 새벽이 오면 추위에 떨려 사람의 신세를 지려고 이불 속으로 기여드는데 오촌숙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곡괭이와 삽을 메고 부르하통하 버드나무숲을 오가며 랭수욕을 견지하였다. 그리하여 끝끝내 이듬해 봄을 맞이하고 전해 여름 랭수욕을 시작했던 원 시점으로 돌아왔다.
한편, 그간 숙부의 랭수욕을 지켜보던 일부 사람들은 고무와 격려 대신 사람이 어찌 살을 에이는 듯한 추운 겨울에 벌거벗고 얼음구멍으로 드나들 수 있는가? 제정신을 가지고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아예 드러내 놓고 숙부를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심지어 이 추운 겨울에 랭수욕을 하면 장가를 가서 애나 낳겠느냐며 너스레를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사람들이 오촌숙부를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락인을 찍어 비난했지만 숙부는 기실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숙부는 자신의 실력으로 시험을 쳐서 고중에 입학하고 졸업하기까지 한 알짜배기 고중졸업생이였다. 비록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중학교의 수리화 문제를 풀라 치면 따를 사람이 없었다. 어찌 그뿐이라, 숙부는 그 당시에는 얻기 힘든 많은 문학서적들을 소장한 문학청년이기도 했다. 어릴 적 숙부네 집에 가면 숙부는 늘 우리 또래들을 앉혀놓고 삼국연의, 수호전, 림꺽정과 같은 고전 명작들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군 했다.
그러나 솔직히 숙부에게는 지적인 면과는 달리 다소 어리숙한 면도 있는 건 사실이였다. 사람이 원체 융통성이 부족하고 종래로 잔머리를 굴릴 줄도 모르고 또 무슨 일을 할라치면 자신의 뚝힘만 믿고 요령이 없어 일할 줄 모르는 ‘일치’에 가까운 사람이였다. 살다 보면 이런 것들은 허물이라면 허물이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온전치 못한 범주에까지 포함시켜 무작정 비방하는 것은 너무나 무리였던 것 같다.
랭수욕으로 인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던 숙부도 때가 되니 어느 해인가 짝을 찾고 결혼하게 되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여 3년이 다 지나가도 자식이 없었다. 그러자 또 일부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제날 랭수욕 사건을 겯들여 련결시키며 “그러면 그렇겠지, 그게 어디로 가겠나!” 하고 코웃음을 쳤다.
숙부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아쉽게 깨지고 말았다. 혼자 남게 된 숙부는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다 마흔살이 썩 지나서야 주변 지인의 소개로 다시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오촌숙부가 새숙모를 만나 얼마 안 되여 숙모가 덜컥 임신을 할 줄이야! 숙부는 자신을 꼭 빼닮고 보름달같이 환하게 생긴 귀여운 딸을 보게 되었다. 뒤늦게 얻은 귀한 자식이였고 그로 하여 온 집안에 늘 생기가 흘러 넘쳤다.
그때 그 시절에는 혼전 신체검사란 과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한 추측만으로 어리석게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이렇쿵,저렇쿵 뒤공론하기를 즐겼다. 그런 사람들이 숙부의 득녀(得女)로 인한 사실과 진실 앞에서는 입이 열 개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였다…
다시 지난 세기 60년대 그때 세월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숙부가 랭수욕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 당시 구차한 집살림과 차한 의료환경에서 의사의 권고로 병을 치료하고 살아남기 위한 어려운 선택이 아니였을가 싶다. 그 시절 숙부처럼 한계를 극복한채 춘하추동 강에 뛰여들어 랭수욕을 견지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추운 겨울철 강변에서의 랭수욕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던 것이다. 숙부는 60여 년 전에 벌써 겨울철 야외 랭수욕이라는 불가능에 과감히 도전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 건강도 찾고 의지도 단련한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였던 것 같다. 오촌숙부를 떠올리면 내 몸에서 스르르 찬 기운은 물러가고 따스한 온기가 쭉 퍼지는 느낌이 온다. 그러면 이미 작고한 오촌숙부가 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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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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