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정림
지난 9월 26일은 우리 문학인들의 '문학공부' 가을학기 제4차 학습일이였다. 이날은 또한 전통명절인 추석 바로 이튿날이였다. 우리 문학인들은 리욱시인과 함께 중국조선족문학의 정초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소설가 김창걸 선생의 문학비를 찾아 현장학습을 진행하였다.
그동안 우리 문학인들은 중국조선족문학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해마다 청명이나 추석이면 우리 문학 개척자들의 유적지와 기념비를 찾아 참배하고 주변을 정리하며 그 뜻을 기려왔다. 화룡 호곡령의 ‘리욱시비’를 찾아보았고 중국조선족 첫 번째 공산당원인 ‘한락연화가 박물관’을 참관하는 등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꾸준히 더듬어왔다.
자박자박 내리는 가을비가 초가을의 청량함을 더하는 아침, 우리 문학인 일행은 연길동북아랭면부 앞에 모여 자가용 다섯 대에 나누어 타고 현장으로 출발하였다. 연길 도심을 벗어나 모아산을 넘고 세전벌의 풍요로운 전야를 가로질러 달리는 30~40분 동안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가을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비에 젖은 황금빛 들판은 물감이 번지듯 다가왔고 초가을 찬비에도 고개 숙이지 않고 활짝 핀 코스모스와 알알이 여물어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벼이삭들이 오래 기다린 손님을 맞듯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김창걸문학비’는 룡정시내에서 약 20리 떨어진 장재촌 부근에 조용히 자리잡고있었다. 맑은 물결의 륙도하를 사이에 두고 저쪽에 우뚝 솟아 있는 유서 깊은 선바위를 마주 바라보고 있어 정취를 더하였다.
문학비 앞에 다가서니 우리보다 먼저 찾아온 문학인들이 두고 간 생화 묶음과 과일, 명태 등 제물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아마 그들도 문학비 앞에서 김창걸 선생과 술 한잔을 나누고 작가가 즐겨 부르던 <적기가>를 함께 불렀으리라.
우리 문학인 일행은 숨 돌릴 새도 없이 추적추적 흘날리는 가을비 속에서도 우산을 접은 채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문학비 주변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낫과 삽으로 일 년 내내 질서 없이 자란 풀을 베고 뿌리를 쳐내는 동안, 여든이 넘은 김영자 선생님도 이마에 흐르는 것이 땀인지 빗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시면서 잡초를 걷어냈다. 마침내 문학비는 단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장엄하지 않고 오히려 보기 좋게 아담한 문학비는 가을비에 촉촉히 젖어 있었다. 비에 젖은 비석에는 그의 대표작인 소설 <암야>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이 어두운 밤이 밝으면 빛나는 대낮이 되듯이 나와 고분이와의 앞길에도 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밝은 해발이 비쳐주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나는 어두운 이 밤길을 빨리하였다.”
‘김창걸문학비’는 연변의 작가들과 연변대학 교수들에 의해 2000년에 세워졌다. 이제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에 새긴 글이 다소 희미해졌지만 우리 문학인 일행의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소설 <암야>는 당시 우리 민족 이주민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갖 고난을 이겨가며 짓눌려 살던 어두운 삶을 담았다. 그리고 그 리면에 ‘명손’이라는 젊은이와 ‘고분이’라는 처녀의 사랑 이야기를 엮으며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사회적, 계급적 모순을 강렬하게 드러낸 훌륭한 작품이다. 소설 <암야>를 비롯한 김창걸 문학은 단순히 시대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주 초기 우리 민족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삶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김창걸 선생은 1911년 2월 20일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여나 6살때 룡정에 이주했고, 1934년 4월부터 명동의 집에서 농사도 짓고 소학교 교원을 하다가 1937년부터 문학창작을 시작하여 해방 전에 이미 소설 20여 편을 비롯하여 수필, 평론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는 온몸으로 격변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그 시대의 고통과 희망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부분 가난한 교원, 농민, 회사원 등 사회 최하층의 인물들이다. 그는 이들 인물을 통해 당시 우리 민족이 겪은 극심한 빈곤과 차별,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으려 했던 굳센 의지를 그려냈다. 가난은 그의 문학의 핵심 주제였다. 김창걸은 그 시기 '만주'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활동하며 우리 민족문학의 뿌리를 내린 개척자가 틀림없다.
우리 문학인들이 몇 년째 이어온 우리 문학 개척자들의 유적지와 기념비 방문은 이제 문학현장의 순례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 문학인 모두가 문학적 자양분을 얻는 소중한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덕분에 그동안 우리 문학인들은 시, 수필, 소설 등 많은 작품을 써내 《연변문학》 등 여러 잡지와 신문에 발표하며 나름대로 이 시대 작가의 사명을 다하고자 애써왔으며, 앞으로도 이처럼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전옥선 소설가는 “오늘이 개인적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문학적 격정을 시작하는 뜻깊은 계기가 되였다.”면서 앞으로 이 시대 우리의 삶을 반영한 묵직한 소설을 더 많이 펴내겠다고 다짐했다.
'김창걸문학비’ 방문은 가을비에 젖은 륙도하 기슭에서 우리 문학인들이 문학의 새로운 꿈을 설계하는 하루였으며 우리 문학의 뿌리를 더듬고 그 뿌리를 이어갈 새 힘을 얻는 참으로 뜻깊고 의미 있는 행사였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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