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일우 한국아산정책연구원 아산서원 제2기 원생
[인민망(人民網)]항상 외국에 나가 어학연수를 받거나 기타 활동들을 위해 머무르게 되면, 끝내 제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서양인’이 아니라 ‘동양인’인 경우가 많았다. 가령 미국에 가서 미국인들과는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인 혹은 중국 대만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돌아왔던 것이다. 같은 아시아권에 살면서 많은 문화와 공감대를 형성해서일까? 무엇을 정확하게 바탕에 두고 어떠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길래, 아시아권 사람들끼리 서로를 더 편하게 대하고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 궁금해했던 나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우선 지난공항에 내리자 말자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든 것이 ‘한문’으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한문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더듬더듬 읽어나가면 무슨 뜻인지 대충 알 수 있었고, 같은 언어를 공유해서인지 처음 와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
공자의 도시 ‘취푸’로 이동하여 공씨들이 살았던 건물들을 살펴보니 우리와 아주 비슷한 점들이 많았다. 지붕에 기와를 사용한 것이 그러하며, 귀신을 쫓거나 집안을 수호해달라는 영물들이 곳곳에 비치되어있는 것이 그러하였다. 특히, 사당에 ‘공자’를 모셔놓고 두 손을 교차하여 ‘예’를 표하고, 제사를 올리며 향을 피우는 것은 우리와 너무 비슷해서 한국의 ‘절’이나 ‘궁’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동양권 학생들과 쉽게 친해지고 서양권 학생들보다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와 같은 비슷한 환경 아래 자랐고, 비슷한 가치를 중심에 놓고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교’라는 큰 틀 아래 자신도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실천에 옮겨왔던 것이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으로 나아가면 ‘유교’는 큰 학문이자, 종교적인 가르침이었고, 이 덕분에 한중 양국은 수세기 동안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근대에 와서 의미가 퇴색되어갔지만, 나 역시 특별히 유교를 좋아하거나 그 가르침에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최소한의 유교적 가르침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뿐만 아니라 유교 문화권 아래 살았던 많은 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가 타 국가들과의 관계보다 ‘상호협력가능성’과 ‘발전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비단 정치체제가 같다고 해서 더 많은 가치를 공유할 수 있거나 정치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공유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무엘 헌팅턴의 말처럼 같은 ‘문명권’을 이루고 있는 국가들이 단결하기 쉽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모우기 쉬울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것이 서양중심으로 시스템화 되어가고 새로운 가치는 더 이상 동양권에서 나올 수 없다는 학자들에 의견을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유교’라는 훌륭한 우리의 자산을 다시 한 번 더 젊은 세대들이 앞장서서 재확인하고 재창조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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