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8월 어느 날, 중국 상하이의 한 대형 마트. 3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식품 매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수입식품 코너에선 말끔한 슈트가 더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이 제품 저 제품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수첩에 적는다. 매장 직원들은 그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메모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남자는 누구이고, 또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메모했던 걸까.
그의 정체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상하이aT센터 서권재 과장(사진). 멀쩡한 한국 공기업의 직원이 무엇 때문에 타국에서 이런 해괴한 행동을 했을까. 서 과장은 당시에 대해 "누가 보낸 것도 아니고, 제가 지원해서 상하이까지 왔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이든 해서 한국 식품을 사줄 현지 수입업체를 찾아야 했고, 그래서 가장 먼저 대형마트 식품코너로 뛰어가 제품 뒷면 라벨에 적힌 수입업체를 수첩에 적어 명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맨땅에 헤딩하듯' 바이어를 찾아 헤매다 보니 홀대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서 과장은 "당시 명단에 적힌 전화번호나 주소로 찾아가면 말 그대로 '잡상인' 취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한국으로 돌아온 서 과장은 그해 12월 농식품부 장관이 수여하는 '농식품 수출진흥 표창'에 이어 올해에는 '올해의 우수 aT인'으로 뽑혔다.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알리바바'에 한국관을 개설해 중국 내 한국 농식품의 수출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게 수상의 배경이었다. 식품매장에서 수입업체 명단을 수집하던 그의 행동이 알리바바를 뚫은 것이다.
올해 5월 1년 매출만 170조원에 달하는 중국 최대이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에 한국 제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한국관이 개설됐다. 알리바바에 국가 단위 전용관이 마련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한국 드라마 등의 인기로 한국 식품에 대한 수요는 점차 증가하는 반면 우리 농수산물의 판로는 묘연했던 가운데 알리바바 한국관 개설은 과하게 말한다면 '한류로드'를 개척한 셈이다.
이는 향후 우리나라 온라인쇼핑 수출액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우리나라 온라인쇼핑 수출의 경우 중국이 2958억원(46.1%)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음식료품·농축수산물은 536억원(8.4%)정도에 그친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직 시장의 수요가 넉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 과장은 "현재 130여개 우리나라 식품기업이 1400~1500개의 상품을 알리바바에서 판매하고 있다"며 "과거의 수요가 대부분 조선족이나 한국 유학생이나 주재원이었다면 현재는 매출의 대부분이 현지 중국인들로부터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서 과장은 지난 2005년 aT에 입사, 10년 만에 '올해의 우수 aT인'으로 뽑혔다. 지난 10년간 'aT인'으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지난 2010년 9월부터 석 달 동안 필리핀 시장개척 근무요원으로 파견 근무를 간 적이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당시 필리핀 식품 수입업체들은 주로 동남아 식품을 수입하고 있어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어렵게 수입업체 한 곳을 만나 우리 삼양라면을 필리핀으로 수출할 수 있도록 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파이낸셜뉴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