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인정해준 사람이 누구인가?
"너무나 많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마빈 트라웁(블루밍데일 백화점 전 CEO)이다. 내 넥타이에 대해 모두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 당시 블루밍데일 백화점 바이어였던 그는 내 작품에 열광하며 백화점 내에 숍인숍(매장 안에 작은 매장)을 두고 팔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뿐만 아니라 '랄프, 당신의 재능은 뛰어나군! 넥타이 말고 또 무얼 만들 수 있지? 뭐든지 만들어 보게'라며 격려해줬다. 난 사람을 알아봐 주고 격려한다는 게 얼마나 젊은이의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는지 그를 통해 배웠다."
―어릴 때 매장 재고 관리원으로 일하면서 패션에 눈떴다고 들었다.
"17세 때다. 재고 관리라기보다는 교환 환불 처리 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반환한 옷을 옷걸이에 걸어 창고로 가져다 놓는 일 같은 걸 했다."
―그래도 배운 게 있을 텐데.
"환불하는 걸 보면서 '아 저런 걸 사람들이 싫어하는구나'라는 걸 알았다."
―그 경험이 도움 됐나?
"그때 진짜 느낀 건 내가 패션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16세 때 이름을 랄프 리프시츠에서 랄프 로렌으로 바꿨다. 유대인의 느낌을 지우기 위해 일부러 바꾼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그는 "발음이 어렵다며 어린 시절 계속됐던 놀림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렌'은 '로렌스'라는 사촌 이름에서 따왔다('런던'도 유력했다고 한다).
"직관은 강한 열망에서 나온다"
패션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넥타이를 내놓으면서다. 야간 대학을 다니며 브룩스 브러더스의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개별적이고 고급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은 그에 맞게 지갑을 열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는 점'을 깨달은 뒤였다. 대학을 중퇴하고 자신의 회사를 차려 기존에 유행하던 폭 좁은 넥타이 대신 그의 두 배는 되는 4인치 폭(약 11㎝)의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값도 일반 타이 가격이 3~4달러였던 1967년 당시 7.5~15달러로 높여 승부수를 걸었다.
―넥타이는 특별했지만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좌절을 어떻게 극복했나.
"나 자신을 믿었다. 내 직관을 믿었고, 사람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세대'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고, 새로운 걸 추구하는 그들의 욕구를 폭발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건 아니었다. 무일푼 젊은이를 믿고 투자하려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능성을 본 한 사업가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 작은 좌판을 내줬다. 5만달러를 대출받아 회사를 세우고 생산을 시작했다. 그의 넥타이와 이듬해 시작한 남성복은 젊고 부유한 이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곧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됐다. 드라마 같은 출발이었다.
―'패밀리 브랜드(남성·여성·아동 등 가족을 모두 아우르는 브랜드)'라는 개념을 만든 것도 당신이 처음이고,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단독 매장)도 당신이 1986년 뉴욕에 선보인 라인맨더 매장이 원형이 됐다. 패션계에서 당신은 모든 걸 앞서갔다.
"아까 말했듯 내 직관을 믿었다. 직관이란 건 일부만 가진 재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흐름이란 게 나한테만 보였을까? 아니다. 분명 당신 곁도 스쳐 지나갔다. 간과했을 뿐이다. 언제나 깨어 있어라. 트렌드라는 건 당신 곁에 항상 있다."
―알아보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만큼 내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 항상 사람들이 '나은 삶'에 대해 갈구할 것이라 생각해왔다. 난 그저 옷을 디자인한 게 아니다. 삶을 디자인했고 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대학 졸업장 같은 게 당신이란 사람을 결정해 주진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밀고 나가라. 내가 산 증인 아닌가."
"내가 가장 중시하는 건 일관성"
랄프 로렌 디자인 팀에서 일했고, 지금은 몽클레르 디자이너인 톰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디자인은 하기 쉽다. 하지만 그걸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그런 점에서 랄프 로렌은 위대하다."
―실패란 건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무슨 소리. 나도 실수 많이 했다. 초기엔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잠 못 이뤘다. 부도 일보 직전이어서 은행에선 전화가 계속 오고. 내 평생 최악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이겨냈나.
"비밀을 알고 싶나? 위대한 팀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적시 적소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 그들의 능력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좋은 디자이너, 좋은 사업가가 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위대한 디자이너, 위대한 사업가가 되는 건 굉장히 어렵다. 그 차이가 바로 '위대한 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난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는 것이 무조건 혼자 하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당신만의 '군대(army)'를 가져야 한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도 자주 비교된다. 일부에선 그의 회사를 일컬어 '랄프교(敎)'라는 이도 있다. 그를 교주처럼 떠받친다는 것이다.
"직원과 한몸이라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 2만50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아 우리 회사로 모이지 않았는가. 직원이 성장하는 것이 결국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다. 난 성장을 즐긴다. 난 그들이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골드버거는 당신을 가리켜 루스벨트나 케네디 대통령과 비슷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그들 모두 내가 존경하는 이들이다. 제대로 된 리더, 그러니까 영감을 주는 사람이 위기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그런 이들이 얼마나 세상을 바꿔주는지 생애를 통해 절실히 배웠다. 그들이 한 일은 나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여주는 세계를 통해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한다."
―미국 패션계에선 당신이 대통령 아닌가. 당신만의 비전이 있다면?
"하하. 내가 가장 중시하는 건 일관성이다. 기업의 철학이나 CEO의 철학이 일관성이 없다면, 직원들이 얼마나 그 회사를 어떻게 믿고 자신을 투자하겠는가. 기업을 떠올릴 때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난 내 회사를 믿었고, 사람들에게 신뢰할 만한 기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품질에 대한 집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이란 딱 반 보 앞서는 것"
―당신에게 혁신이란 무언가.
"기존보다 반 보 앞서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의 목소리가 모이면 트렌드가 된다."
―2017년이면 50년이 된다. 자칫하면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게 패션계인데. 어떻게 매일 새로워지면서 지속 가능할 수 있는가.
"새로움(newness)이 언제나 항상 좋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새로운 건 좋지만, 그저 새롭기만 해서는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다. 시류에 맞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항상성 같은 걸 가져야 한다. 10년, 20년 전에 샀던 것도 현재에 통용될 수 있는 것, 클래식하면서도 구식이 되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너무나 트렌디해서 돈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뢰받는 브랜드를 만들려면?
"가장 중요한 건 장수(longevity)할 수 있느냐다. 유행이란 너무나 짧고,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는 길다. 당신이 꼭 경계할 것은 '나도 이거 할 수 있어'라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경쟁사가 무얼 한다고 해서 따라 하는 순간 영속성은 깨진다. 또 작은 디테일도 놓치면 안 된다. 남들 눈에 안 보일 수 있어도 누군가는 그 흠을 발견할 수 있다."
―신뢰받으면서 동시에 트렌드를 주도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 '이걸 사야 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삶도 있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랄프 로렌적 삶'이라는 걸 이미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광고 투자도 필요했다. 난 시각화의 힘을 믿는다."
1970년대 '광고'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장장 20쪽에 달하는 이미지 광고를 실었다. '옷 자체보다는 옷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을 내세웠다.
―당신에게 럭셔리란 무엇인가?
"매스(mass·대량 생산) 시대에 럭셔리는 특별한 걸 의미한다. 장인(匠人) 정신과 좀 더 나은 삶, 남과 차별화되는 것이다. 기계가 지배하는 매스 시대가 되면 될수록 질이 더 중요해진다. 처음에 매스가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에 눌려서 구분하기 어렵다가 시간이 가서 경험이 쌓이고 좋은 걸 볼 줄 아는 눈이 떠지면 질(quality)이 있는 것을 구별하게 된다. 결국 이 게임의 최후의 승자는 품질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좋은 가정을 일궈 올해 결혼 5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게 무척 행복하다. 생각해 보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무 일도 없을 때, 단순한 평화(just peace)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매 순간에 감사하고 즐기려 한다. 난 언제나 상기한다. 파란색 스웨이드 슈즈를 바라봤던 그 시절 모습을. 나는 언제나 설레고 언제나 꿈꾼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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