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소프트뱅크의 2013 회계 결산을 발표하는 손정의 회장. photo 연합 |
소프트뱅크 설립자인 손정의(일본명 손마사요시)가 재일동포이기 때문에 주목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변화시킬 ‘신천지’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이다. 1994년 필자는 막 세상에 선보인 인터넷의 위력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15기 숙생으로 들어가 공부하기 시작한 일본의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経塾) 덕분이었다. 인터넷이 아시아로 연결될 당시, 게이오(慶応)대학 쇼난 후지사와(湘南藤沢·SFC) 캠퍼스는 한국·중국·동남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했다. 간단히 말해 SFC를 통해 인터넷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마쓰시타정경숙은 SFC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SFC 허브를 통해 당시 신천지나 다름없던 고속인터넷망이 마쓰시타정경숙 안에 깔렸다. 한국 친구들에게 이메일이 얼마나 편한지 알려줬지만, 인터넷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엄청나게 느린 한국의 인터넷 속도 때문에 인터넷에 대한 관심 자체가 극히 희박하던 시기였다.
당시 손정의에 대해 특별히 주목한 이유는 소프트뱅크 상장 무렵 실린 일본 언론의 기사들 때문이었다. 1978년 소프트뱅크의 종잣돈이 된 1억엔에 관한 기사다. 음성인식 자동번역 소프트웨어가 소프트뱅크를 일으켜 세운 결정적인 힘이었다. 일본어로 말을 하면 영어로 번역해서 글로 보여주는, 전자계산기 스타일의 기기와 소프트웨어다. 아이폰 음성인식 소프트웨어인 시리(Siri)의 초기판 정도라 보면 된다. 원래 손정의는 이 기기를 마쓰시타전기(松下電器)에 팔려고 했지만 거부당하자 샤프 전기에 1억엔에 판다. 현재 중국산 음성 번역기의 경우 단돈 50달러만 주면 살 수 있다. 필자가 일본에 머물던 1994년 당시에는 5만엔이 넘는 고가의 첨단기기였다.
손정의는 이후 1억엔을 바탕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프트웨어 전문회사를 차린다. 종업원 수 30명이었다. 1970년대 말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던 인베이더(Invader) 게임 소프트웨어를 일본과 아시아 전역에 배포해 대성공한다. 당시 필자는 그가 만든 샤프 제품의 음성 번역기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더불어 고등학교 재학 때이던 1978년 무려 100원이나 하던 인베이더 게임에 빠진 기억도 갖고 있었다. 일본에서 느낀 인터넷의 위력과 함께, 이미 경험한 음성 번역기와 인베이더 게임을 통해 손정의가 신천지를 이끌 주인공이 될 것이란 느낌을 자연스레 갖게 됐다.
20여년 전의 일이지만 당시 필자는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에게 주기적으로 글로벌 리포트를 올리고 있었다. 김 회장은 한국의 청년을 세계로 몰아세운 첫 번째 글로벌 경영자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그의 생각은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신한국의 나침반이자 모토(Motto)였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영어교육을 받으러 워싱턴에 가는 세상이 됐지만, 한국 청년이 자유롭게 외국 유학에 나서게 된 것은 1987년 무렵부터로 기억한다. 세계로 눈을 돌리라는 메시지는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결의’이기도 했다. 필자는 당시 마쓰시타정경숙의 도움으로 전 세계를 오갈 기회를 가졌다. 김 회장의 ‘세계는…’에 감동을 받았기에 현장의 정보를 대우에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전 세계를 오가며 올린 수많은 보고서 중 하나가 바로 손정의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소프트웨어의 첨병으로 나서는 사람이 손마사요시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재일동포이기도 하다. 미래산업의 선구자라는 관점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 회장이 일본에 들를 때 꼭 만나서 얘기를 나누기를 기대한다.”
사실 당시 손정의는 세계경영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세계적 기업인 김우중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김 회장이 필자의 보고서를 직접 읽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하지만, 필자가 아는 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우그룹은 한국 최초의 해커를 특별채용한 곳이다. 인터넷과 IT에 대한 관심이 그 어떤 기업보다도 빨랐지만, IMF 체제와 함께 미래를 향한 도약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 이후에도 손정의에 관한 얘기는 일본 신문·방송을 통해 꾸준히 접해 왔다.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알리바바(阿里巴巴)에 관한 기사이다. 2000년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손정의가 알리바바에 2억엔을 투자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2014년 가을 중국 최고의 부자로 떠오른 알리바바의 잭마(馬雲)의 얼굴도 당시 일본 잡지에 크게 실렸다. 2000년 손정의는 이미 일본 내에서는 소프트웨어의 최고 강자로 떠오른 상태였다. 국내 사업의 기반을 확실히 다진 상태에서 중국 투자에 나선다. 중국 내 신생 IT기업 20여개사의 책임자를 직접 만나 사업계획을 들은 뒤 곧바로 투자에 나섰다. 알리바바는 가장 화제가 된, 최고의 투자금을 받은 곳이다. 당시 손정의는 20여 기업과 각각 10분 동안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10분이 짧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미국의 벤처캐피털 비즈니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길다고 말할 듯하다. 프로 입장에서 돈 냄새를 맡는 데는 1분이면 족하다. 막말로 1분 만에 대박 여부에 대한 판단이 선다고 한다. 길게 줘서 5분간 들은 뒤 5분간 질문을 하는 식이다.
손정의는 16살부터 6개월간 집중적으로 영어를 공부해 17살 때 샌프란시스코 세라몬테고등학교로 전학했다. 부모가 반대했지만 일본에서 고등학교 재학 중 미국 수학여행을 다녀 온 뒤 자퇴한다. ‘단신(單身) 미국행’을 고집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뜨기 전인 197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한다. 입학 즉시 소프트웨어 공부를 시작해 1년 만에 자신의 작품인 음성인식 자동번역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다. 흔히들 놓치기 쉬운데, 손정의는 경영인 이전에 IT 발명가이다. 배경에서 보듯 일본에서 활동하는 최고경영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영어에 능통하다. 영어선생으로 일한 잭마도 영어가 능통하다. 인터뷰 당시 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를 진행했다. 10분간 잭마의 얘기를 들은 뒤 손마사요시가 입을 뗐다.
“얼마면 되겠는가?”
“1000만엔에서 2000만엔 정도는 필요할 듯하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2억엔을 투자하겠다.”
당시 20여 중국 IT회사들이 받은 투자금은 평균 2000만엔, 즉 20만달러 수준이었다고 한다. 올해 9월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과 함께 손정의의 알리바바 주식총액이 800억달러를 넘어섰다. 14년 전 투자금의 4000배 이익을 낸 셈이다.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 후 손정의는 당분간 알리바바 주식을 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1년 내에 배로 뛸 것이란 것이 주식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멀리서이지만, 필자가 손정의를 직접 본 것은 올해 3월 11일 워싱턴에서다. 백악관 북쪽 문 반대편에 있는 미 상공회의소 본관에서였다. 미국 통신 시장의 미래와 과제를 테마로 한, 미국에서 행한 그의 첫 번째 공식 연설이었다. 사실상 미국에서의 데뷔에 해당한다. 미 상공회의소는 워싱턴, 나아가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로비단체 중 하나이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첨병에 해당한다. 손정의의 연설은 IT 관계자 정부요인 로비스트 등 500여명이 모인 곳에서 이뤄졌다. 스티브 잡스처럼 단상에 올라가 혼자서 영어로 행하는 프레젠테이션이다. 연설의 주된 내용은 통신 이용객들의 편리와 이익을 높이자는 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AT&T와 버라이존(Verizon)으로 대표되는 2강(强)과, 스프린트(Sprint)와 T-모바일(Mobil)의 2약(弱) 구도를 3강체제로 바꿀 경우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정의는 지난해 7월 216억달러를 투자해 스프린터를 구입했다. T-모바일도 구입해 AT&T와 버라이존에 필적하는 대형 통신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것이 연설의 주된 취지였다. 결국 8월 초 소프트뱅크가 T-모바일 구입을 자진 철회하면서 3강 체제는 무위로 돌아가지만, 손정의의 연설은 미국을 대표하는 기존의 통신사에 대한 선전포고쯤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통신사가 문을 열 경우 일본 IT제품들도 미국으로 몰려올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 의회 관계자들에게 전달됐다. 미국에서 통신 분야는 인·허가 때 의회의 재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소프트뱅크가 일찌감치 T-모바일 구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52분간 이뤄진 미 상공회의소 연설을 지켜보면서 필자가 놀랐던 점은 두 가지이다. 먼저 손정의의 탁월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다. 일본의 그 어떤 경영자도 할 수 없는, 영어를 통한 발제다. 문장을 외워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머릿속의 생각을 전하는 순간형 연설이다. 발음만 들으면 일본인이 아닌 듯하다. 팔을 크게 움직이는 등 몸동작을 크게 하면서 행하는 연설 모습도 특이하다.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정열 같은 것이 프레젠테이션 곳곳에서 느껴졌다. 둘째 미국에 대한 존경과 찬사이다. 10대에 미국에 와서 배우고 익힌 프런티어 정신에 대한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자유와 풍요의 나라 미국을 “정말 사랑(Love)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1860년대 철도, 1930년대 전기, 1950년대 고속도로, 1990년대 인터넷을 잇는 모바일 브로드밴드가 도래했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세계의 리더로 지속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모바일 브로드밴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을 만든 나라가 미국이지만, 모바일 브로드밴드는 한참 처져 있다는 것이다. 157㎝가 채 안 되는 키지만, IT세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손정의의 시각은 그 어떤 IT거인보다도 원대하다. 비용절감이나 효율성 같은, 소비자 중심의 IT를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일본 특유의 서비스 정신을 엿볼 수도 있었다. 미국의 강점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약점도 충분히 알고 있는 연설이었다. 미국의 부족한 부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의회가 그의 사업 구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손정의는 미 상공회의소 연설이 끝난 저녁, 미국 공영TV인 PBS의 간판 프로그램 찰리 로즈(Charlie Rose) 토크쇼에 등장했다. 32분간 얼굴을 맞대고 진행하는 인터뷰 스타일의 프로그램이다. 손정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미 상공회의소 연설의 연장선이지만, 보다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면서 미국 IT업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아이폰이 나오기 2년 전에 스티브 잡스를 찾아가 애플의 ‘신무기’가 등장할 경우 독점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애플 아이폰이 나올 것을 예상해 200억달러를 투자해 통신회사를 미리 사들였다는 기업비밀도 소개했다. 아이폰은 현재 일본 전체 모바일 시장의 7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를 미리 만났기에 애플 독점공급권을 따냈고 그 덕에 소프트뱅크의 주가도 수직상승했다.
‘하얀 집(白戶家)’ 시리즈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텔레비전 광고이다. 도시의 4인 가족을 모델로 한 소프트뱅크의 30초짜리 광고이다. 전형적인 일본 가정인데 출연자의 모습이나 배경이 특이하다. 어머니와 딸은 평범한 일본 여성이지만 남성 배역인 아버지(お父さん)가 흰 개(犬)이다. 더불어 장남은 코지로(小次郎)라 불리는 흑인이다. 가정부 배역은 영화 ‘맨 인 블랙(Man in the Black)’의 주연인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가 맡고 있다. 하얀 집 식구들은 소프트뱅크의 다양한 모바일 프로그램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이들 출연진이 식사를 하거나 쇼핑을 하면서 스토리 중간중간에 소프트뱅크 광고를 전한다. 포스트모더니즘적 발상의 광고로, 사실 처음 보면 뭘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바뀌며 새로운 스토리가 선보인다.
일본인들은 소프트뱅크의 광고를 다민족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발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면에 자리 잡은 이 광고의 해석 가운데는 일본인들이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바로 손정의의 출신 배경이다. 어머니와 딸을 일본인으로 내세웠지만 개, 흑인, 우주인이 등장하는 가족들의 배경이 재일동포 손정의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재일동포로서 자신의 배경을 하얀집이란 가공의 세계를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얀집은 손정의의 배경이자 근본에 해당한다. 구글에 들어가 키워드로 ‘손마사요시’를 치면 곧바로 나오는 것이 ‘손마사요시 국적’이다. 재일동포 3세라고 하지만 일본으로 귀화했는지 여부가 일본인의 관심사 중 하나이다. 손정의는 현재 일본 국적을 가진 일본인이다. 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파친코나 식당 같은 분야에 국한된다. 중앙정부의 허가나 도움이 필요한 분야의 비즈니스에서 비(非)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적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발언을 할 경우 언제 어디서 일격을 당할지 알 수 없다. 2006년 1월 일본 전역을 놀라게 한 검색 포털사이트 라이브도어 설립자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의 추락은 손정의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호리에가 만약에 귀화한 재일동포가 아니었다면 체포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란 소문이 일었다. 손정의가 일본 최고의 부자로 등장한 상태에서 ‘설마’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소프트뱅크가 아닌, 개인 손정의의 추락은 결코 상상밖의 가설이 아니다.
“당신은 한국인입니까?”는 손정의를 만나는 한국인들이 던지는 공통 질문 중 하나이다. 한국 기자의 그 같은 질문에 대해 손정의는 “지구인”이라 답한 적이 있다. 중국인 영어선생인 잭마를 세계적 IT 리더로 만들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시킨 인물이 손정의다. 국가와 민족, 나아가 피(血)에 근거한 2~3세 경영인 문제로 점철이 된 한국 기업의 풍토 속에서는 100년이 가도 손정의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다. 단언컨대 손정의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오늘과 같은 성공 스토리를 연출해 낼 수 있었을까. 일본 비즈니스 풍토에서 탄생된 일본 IT 기업인이 손정의의 본래 모습이다. 손정의가 아니라 손마사요시다.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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