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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과 왕위계승 서열1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외교단지에 있는 5성급 리츠칼튼 호텔은 다음달 1일(현지시간)까지 예약을 받지 않는다. 지난 4일 부패 혐의로 체포된 왕자들, 사우디의 유력 기업인과 전직 장관들 수십명이 이곳에 갇혀 있다.
숙청의 주역인 왕위 계승 서열 1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24일 이곳에서 세계 각국의 투자자 2000명을 모아놓고 탈석유 국가개조계획 ‘비전 2030’에 맞춰 사우디에 투자하라고 설득하고 ‘열린, 온건한 이슬람 국가’를 천명했다.
사우디의 개혁과 변화를 가장 사우디다운 방식으로 추진하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역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무함마드의 방식은 거침없고 또 위험하다. 사우디 정국뿐 아니라 예멘·레바논·시리아 등 주변 국가와 중동의 운명도 그의 손에 휘말릴 수 있다.
무함마드의 공개적·대대적 숙청은 왕실 내 부족·파벌 갈등도 비밀에 부치는 암묵의 룰을 깬 파격이다. 데이비드 오타웨이 우드로윌슨센터 중동 연구원은 성명에서 “사우디 왕실이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무함마드의 행보는 수년간 사우디 왕실의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 전 왕세자의 아들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가 지난 5일 밤 예멘과 접한 남쪽 국경에서 헬리콥터 추락으로 사망했다. 사우디 밖으로 나가려다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우디의 최고종교기구 울라마는 5일 밤 성명을 내 “부패와 싸우는 것은 이슬람의 의무”라며 무함마드에게 힘을 실었다. 송상현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는 6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울라마는 역대로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면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많았다”며 “무함마드에게 사실상 권력이 넘어갔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무함마드가 이끄는 반부패위원회는 초법적이다. 조사, 구금, 출금은 물론 자산 동결과 몰수까지 가능해 권력 뿐 아니라 사실상 나라의 모든 부(富)를 장악할 수 있다. 알아라비야는 이날 “사우디 당국이 부패 혐의로 체포된 이들의 계좌를 동결하고 부패에 관련된 자금은 국고로 환수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체포된 인사들이 소유한 기업은 건설, 통신, 미디어 등 전 분야를 망라한다. 사우디의 유력 일간 오카즈는 6일자 1면에 큰 헤드라인으로 체포된 기업인을 겨냥하는 ‘당신들은 이게(재산) 다 어디서 났는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이 6일 리야드에서 지난 4일 사우디 방문 중 사임을 발표한 알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사우디국영통신
무함마드의 정치 도박은 주변 중동 국가들까지 담보 잡고 있다. 시아파 맹주 이란과 벌이는 대리전은 확산일로다. 여기에는 중동 내 시아-수니 갈등을 고조시켜 수니를 결집시키면 국내 정권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담겨 있다. 6일 사우디국영통신(SPA)에 따르면 사우디 연합군은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이 리야드를 향해 미사일을 쏜 다음날 예멘의 영토, 영해를 봉쇄하고 공항도 닫았다.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이 “이란에서 온 것”이라며 이란 무기가 후티 반군에 넘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이유다.
사드 알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4일 암살 위협을 이유로 갑자기 사임을 발표한 뒤에는 사우디가 있다는 것이 지배적 시각이다. 6일 국영언론은 살만 국왕이 리야드에서 하리리를 접견해 두 손을 잡는 모습을 보도했다. 이후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뒤에 있는 이란과 사우디의 정국 주도권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샤피로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중동담당 보좌관은 5일 하레츠에 기고한 글에서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는 예멘부터 시리아, 레바논까지 모든 전선에서 이란을 시험하려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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