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 프로페셔널이 바라보는 정상회담 성공의 길 ①
1994년 제네바 합의 주역 갈루치 미 북핵특사의 조언
"가장 핵심은 합의의 투명성, 핵시설 모니터링 합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 소식은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북·미 정상회담까지 약 두 달. 말 그대로 '역사적 회담'이다. 따라서 북핵 협상을 일선에서 주도했던 프로페셔널 전문가들이 털어놓는 '복기'는 절대적이다. 이들의 조언과 전망, '성공으로 가는 길'을 시리즈로 정리한다.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주역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특사(전 국무부 차관보)는 살아있는 북핵 역사책이다. 그는 1993~1994년 2년에 걸쳐 북한의 핵 시설 동결과, 국제사회의 경수로·중유 제공을 바터(상호 교환)하는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다. 그의 북한 측 파트너는 강석주 외무성 부상(2016년 사망). 2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의 기억은 또렷했다. 그리고 북핵 폐기가 얼마나 힘들고 긴 여정인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터뷰 내내 "트럼프와 김정은은 '좋은 분위기'만 만들면 된다. 달리 말하면 '결렬'만 안 되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어차피 전문 협상팀이 긴 기간에 걸쳐 조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긴 대화 시리즈의 시작'이란 표현도 썼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오후 갈루치가 소장을 맡고 있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한미연구소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특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은 원샷으로 끝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이광조 JTBC 카메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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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북미정상회담에서 일괄타결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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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난 이 회담이 '원샷(one shot·한번에 해결됨) 협상'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북핵 문제의 복잡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북한과 협상 테이블장에 앉아 양국의 모든 견해차를 단 한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 않을 것이다. (일괄타결은) 상상할 수 없다. 정상회담은 협상의 시작일 뿐이다. (정상회담이 끝나면) '톱 다운'에 의해 양측 전문 외교관이나 정부 대표단이 오랜 기간 왔다 갔다 하면서 합의에 관한 세부사항들을 조율할 것이란 얘기다. 정상회담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난 미국과 북한 양측에 '서로가 실행하는 걸 보고 추가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라. 이른바 행동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야 주고 받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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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치열하게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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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1994년, 그리고 2000년을 되돌이켜보면 핵 무기와 운반수단을 제약하려는 협상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은 투명성, 검증, 그리고 모니터링이었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 측은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포기,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원할 것이다. 그럼 북한은 그에 대해 '그래, 다 끝났어. 우린 어제 모든 핵 무기를 분해했고, 원심분리기 시설도 해체했어. 또 모든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도 폐쇄했어. 모든 게 다 해결됐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잠깐만! 내가 너희 시설들을 다 돌아보고 그것들이 실제로 해체됐는지 사찰하려 하는데 어떻게 할래?' 아마도 북한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어딜 보고 싶은데? 누가 거기에 갈 건데? 얼마나 거기에 있길 원해? 가서 뭘 보려는 거지?'. 그럼 우리는 '우리 생각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다시 들어가 그들이 전방위적인 안전조치(full scopes safeguards)라 생각하는 것들을 해야 할 것'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북한은 받아들일 수도, 안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가장 핵심적이고 민감한 부분은 북한으로부터 합의의 투명성, 그리고 모니터링에 대한 합의를 얻어내는 것이다. 합의를 준수하는 지 검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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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하지만 북한 어디에 어떤 핵 시설이 숨겨져 있는지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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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일리있는 지적이다. 그래서 검증이 '가능'하게끔 합의의 프레임(frame·골격)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만일 제대로 프레임을 잡지 못하면 검증은 불가능해진다. '핵 프로그램 일체를 포기한다'는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핵 분열성 물질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모든 시설과 우라늄 농축, 기체 원심분리 공장 및 원자로, 재처리 공장 등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을 멈추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모든 핵 무기와 핵 물질을 포기한다'는 프레임으로만 가면 검증에 실패할 것이다. 사실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핵폭탄 분열 물질은 여성의 주먹만큼 작다. 우리로선 북한이 그걸 폐기했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게 사실이다. 침대 밑에라도 숨길 수 있는 것들이다. 현실적인 한계상 그런 검증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쨋든 실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것들을 검증하려는 시도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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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북미정상회담 의제 뿐 아니라 개최장소도 주목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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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시각적으로도 최선의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여러 곳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판문점, 서울, 베이징, 하와이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워싱턴이나 시애틀 같은 미 본토에서는 개최하지 않을 것 같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빅 서프라이즈'가 있을 수도 있다. 난 또 놀랄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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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정상회담 결과를 한마디로 전망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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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사실 모르겠다. 단 참사(disaster)를 만들지 않기를 원한다. 치사하고 더러운 싸움, 서로를 모욕하는 상황이 안 되길 바란다. 내가 정상회담에서 기대하는 최대의 목표치는 '좋은 분위기'로 (추후 협상팀이)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핵화) 원칙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건 내 예상보다 더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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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그렇다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로드맵이 마련될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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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다. 근사한 만찬 한 끼 함께 하고 하루 이틀 회담하는 것으로는 그런 것(로드맵)이 나오기 힘들 것이다. 너무 짧은 시간이다. 매우 일반적 원칙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합의를 원한다'와 같은 미사여구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의미는 없다.
로버트 갈루치 미국 북핵특사(왼쪽)가 1994년 10월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과 함께 북미 제네바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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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겠다. 당신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회담을 이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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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먼저 (회담 전에)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무엇을 원할지, 우리가 북한에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서로 매칭되는지도 챙겨야 한다. (북한이 원하는데) 우리가 줄 수 없는 것이라면 대신 줄 수 있는 게 뭔지도 알아야 한다. 북한 측으로부터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원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북한이 에너지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회담 전에 동맹의 목소리를 잘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의 결과로 한국이나 일본 등 동맹관계가 훼손되선 큰 일이다. '우리는 한 팀'이란 느낌을 공유해야 한다. 중국·러시아, 호주나 유럽연합 같은 동맹들과도 이해를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회담장. 예전에 이태원에 가 '이 손목시계 얼마에요?'라고 물었을 때 점원이 'X원'이라 답하면 난 그 가격에 시계를 살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흥정이 시작된다. 이번 북핵 협상도 마찬가지다. 한 두번 본론으로 들어간 뒤 내가 원하는 것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지를 얘기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를 좋아하니, 이(정상회담) 또한 '딜(deal)'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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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하지만 역으로 정상회담이 잘 안 될 경우 한반도에 군사적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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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그걸 '위험한 비즈니스'라고 표현을 했다. 두 정상이 만난 다음에는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난 (이번 정상회담이)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위기만 잘 만든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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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경질되고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새 국무장관으로 지명됐는데,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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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보다는 폼페이오의 도움을 받는 게 더 (일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이 대화를 함에 있어 틸러슨 장관보다는 자신과 확실하게 의견이 같은 국무장관과 하는 편이 더 쉽고 좋을 것이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특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민감한 부분은 북한으로부터 합의의 투명성, 그리고 모니터링에 대한 합의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이광조 JTBC 카메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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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정상회담을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쌍두마차가 이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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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아니다. 트럼프·폼페이오 콤비여만 한다. 대통령이 있는 상황에서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이 함께 정상회담을 이끄는 게 가능하지 않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폼페이오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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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미국이 앞으로 유의할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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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하려면 '우린 미국과 정상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하지만 미국으로선 북한과 진정한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려면 인권 문제를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양측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대사를 상호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진정한 정상 관계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사우디의 체제가) 미국의 인권정책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듯, 인권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앞으로 북한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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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25년 전의 북한과 지금의 북한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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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25년 전 처음 접한 북한은 핵 무기도 없었고 장거리 탄도미사일도 없었다. 또 이런 협상을 하는 데도 경험이 없었다. 큰 소리도 지르고, 투박하고 거칠었다. 반면 우리는 소련·러시아와 수십 년간 핵 협상을 했기 때문에 경험도 많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 북한은 핵무기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등 핵 물질을 많이 모았다. 그리고 협상 전문가들이 전면에 배치돼 있다. 최근 베를린과 쿠알라룸푸르에서의 1.5트랙(반관반민 회의)에서 만나보니 그들은 훨씬 세련된 협상가가 돼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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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비교적 최근에도 북한과 접촉을 했는데, 느낌 상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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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 (포기할 지 여부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재작년(2016년)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한 당국자를 만났을 때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들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핵 보유) 유일한 이유로 드는 게 '미국이 북한 정권 붕괴를 시도하는 걸 단념하게 하기 위해서'라 말하는 데 그건 모순이다. 당신들(북한)이 정권, 체제붕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온다면 핵이 필요없는 것 아니냐'고 말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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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그랬더니 뭐라 답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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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어떻게 우리가 그걸 확신하겠는가라 되묻더라.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은 왜 우리(미국)가 침략하거나, (한국의) 수도를 점령할 것이라 걱정하지 않는지 아나. 바로 동맹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미국과) 동맹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너희(북한)가 핵 무기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을 순간이 올 수 있음을 생각하라. 그러니 가능성을 열어두라." 내가 보기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은 지나야 할 것이다. 당장 다음 주에 포기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 좀 지나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들고 우려들이 사라질 때 그렇게(핵을 포기) 할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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