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사진: 2018년 5월 10일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승리한 신야권련합 희망련대(PH)의 총리 후보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9일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61년만의 첫 정권교체를 이뤄 낸 마하티르 모하마드(93세) 전 총리의 삶은 영화에나 나올법한 인생역정을 보여준다.
그는 가난한 농업국가였던 말레이시아를 제조업강국으로 변모시켜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우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철권통치한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1925년 영국 식민 치하의 말레이 반도에서 태여나 의사가 된 그는 1957년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1969년 툰쿠 압둘 라만 당시 총리가 중국계의 경제적 지배에 짓눌린 말레이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다가 한때 정계에서 축출됐으나 1972년 툰쿠 총리의 사임으로 복귀한 뒤로는 각부 장관과 부총리 등 직을 력임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결국 1981년 후세인 온 당시 총리가 건강악화로 사임하자 총리직을 승계했고 이후 2003년까지 무려 22년간 장기집권을 이어갔다.
이 기간 그는 경제성장을 먼저 이뤄낸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룩 이스트(Look East)' 정책과 말레이시아를 2020년까지 선진국 대렬에 올려놓겠다는 '와와산 2020' 등을 주창하면서 강력한 국가주도 경제발전정책을 펼쳤다.
[웃사진: 2018년 5월 9일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승리한 신야권련합 희망련대(PH) 지도부가 일제히 환호성을 울리고 있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 들어 신흥공업국 대렬에 올라섰고 국내총생산(GDP)은 1981년 250억딸라에서 2003년 1100억딸라로 급격히 증가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일축하고 고정환률제 채택, 외국자본류출 금지 등 독자적 조치로 경제를 회복시킨 것도 높이 평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사법부를 정부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등 독재와 인권탄압을 자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미주의적 태도로 서방과 줄곧 마찰을 일으킨 것과 '부미푸트라'로 불리우는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고수해 중국계와 인도계를 차별한 것도 실책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의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의 총리복귀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큰 것으로 전해졌다.
연변일보넷 편집부 편집/외신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