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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태풍 '제비'에 난타당한 일본
지난 25년간 일본을 강타한 태풍은 수없이 많았지만 태풍 '제비'처럼 일본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것은 없었다. 일본인들은 다른 곳도 아니고 서(西)일본의 관문(關門)인 간사이공항이 침수돼 폐쇄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더구나 공항이 침수된 4일은 간사이공항 개항 24주년 기념일이었다. 공항 생일날 최악의 침수 피해로 먹칠한 것이다. 바깥세상과 고립된 채 정전(停電) 상태에서 밤을 새운 여행객 3000명이 5일 지친 모습으로 공항을 빠져나오는 모습은 일본인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태는 4일 오후 1시 2000t이 넘는 대형 유조선이 강풍에 밀려 간사이공항과 연결되는 3.8㎞ 다리에 강하게 충돌하면서 시작됐다. 충격을 받은 다리 상판이 비틀어지면서 오사카 방향의 차량 운행이 어렵게 됐다. 다리가 분리돼 있어서 반대편 방향은 무사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공항을 연결하는 전철은 오전에 운행이 중단됐다.
그러자 일본 국토교통성이 이날 오후 3시 공항 폐쇄를 결정했다. 이후 초현대식 간사이공항은 악몽의 현장으로 변해버렸다. 공항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내·외국인 3000여명은 편의점을 찾았지만, 곧 물과 음식이 떨어져 버렸다. 공항 직원들로부터 받은 1인당 5개의 비스킷과 물로 허기를 채웠다. 휴대폰 중계 안테나도 일부 파손돼 통신 상태도 원활하지 못했다. 공항 대부분이 정전돼 불빛이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무더위와 불안감 속에 하룻밤을 지새웠다.
일본 정부는 5일 새벽 5시부터 '구출 작전'에 나섰다. 유조선 충돌로 충격을 받은 다리는 통제한 채 공항 방향 다리 한쪽만 사용했다. 50인승 리무진 버스 수십 대를 통해서 진행된 수송 작전이 마무리되기까지는 10시간 이상 걸렸다. 여행객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2~3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다. 바다에서는 정원 110명의 배 3척을 동원해서 22㎞ 떨어진 고베공항까지 왕복하며 여행객들을 실어 날랐다.
간사이공항은 한국·중국·일본이 1990년대 '아시아 허브 공항' 경쟁을 벌일 때 계획돼 만들어졌다. 해상의 인공 섬에 세워져 두 개의 활주로를 24시간 가동한다. 오사카·교토·나라 등 유명 관광지를 방문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해 왔다. 최근 일본을 찾는 여행객들이 늘면서 지난해엔 2880만명이 간사이공항을 이용했다. 올해 '3000만명 이용객'을 목표를 세웠지만 이번 사태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간사이공항을 언제 재가동할 수 있는지 확답을 못하고 있다. 활주로를 가득 채웠던 물은 대부분 빠졌지만, 활주로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활주로를 점검·보수하는 기간이 얼마가 될지 예측도 못 하고 있다. 항공사 관계자는 "활주로가 재개되더라도 화물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침수돼 있으면 여객을 받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간사이공항 정상 가동이 늦어질 경우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간사이공항의 화물 수송 능력은 하루 평균 약 2300t. 지난해 간사이공항을 통해 수출된 물품 총액은 5조6000억엔(약 56조2000억원)이 넘는다. 특히 간사이공항에서는 반도체 등 중국·아세안에 수출하는 부품이 많아 다른 나라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부 회사는 다른 공항을 이용하는 등의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인데, 납기 지연 등의 피해가 속출할 수도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국토교통성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간사이공항의 조기 운영 재개를 위해 관계 부처가 하나가 돼 대처해 달라"고 지시했다. 일본 정부는 간사이공항 침수 원인에 대한 조사에 나서는 한편 조속한 복구를 위한 대책팀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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