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사회가 시리아 영토로 인정하는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포고문에 25일(현지시간) 서명하면서 중동이 벌집을 쑤신 듯이 어수선해졌다.
당사국인 시리아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중동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최대 적성국 이란이 즉시 이를 강하게 반대하는 성명을 앞다퉈 냈고 유엔과 유럽연합(EU), 러시아 등 국제사회도 이를 반대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데 이어 골란고원까지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함으로써 수십년간 유지됐던 중동의 '불편하지만 암묵적인 안정'을 과감히 수면위로 드러냄으로써 중동을 휘저어 놓았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골란고원 포고문'으로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의 실질 점유권을 기정사실로 하는 조처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골란고원이 군사적 요충지인 만큼 이스라엘은 자국 영토임을 확인하기 위해 군대를 증편하고 무기 배치도 늘릴 수 있다.
대아랍 문제에 강경 보수 성향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는 다음달 9일 총선을 앞두고 이런 분쟁지에 대한 주권 확인 조처가 긴요해졌다.
중도성향 정파의 연합,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의혹으로 이번 총선은 여느 때보다 박빙이어서 이스라엘 집권당 리쿠드 당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탓이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에 대해 최근 부쩍 비대칭적인 규모의 반격을 가하는 것도 군사 긴장을 고조해 총선을 앞두고 보수 시온주의 표심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에 군대를 증파하면 시리아 남서부에 주둔한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시리아군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헤즈볼라는 "골란고원 주변에 이스라엘을 공격할 로켓포 10만발이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이 지역에서 일전을 불사할 각오를 밝히곤 했다.
골란고원 인근에는 이란 혁명수비대도 군사 고문 역할을 이유로 주둔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지난해 5월 10일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의 자국군 초소를 향해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 쿠드스군이 직접 로켓포 20여발을 쐈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유로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이 이란군 주둔지로 지목한 시리아 내 군기지 10여곳을 대규모로 폭격했다.
이란은 로켓포 발사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부인하지도 않았다.
국제사회마저 부정하는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인정하면서 시리아, 이란, 헤즈볼라는 '골란고원 탈환 작전'의 명분을 얻게 됐다.
이스라엘도 자국 영토를 수호한다면서 이에 정면 대응할 공산이 매우 커 최악에는 중동 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
골란고원 탈환 작전의 열쇠는 최전선에 서게 될 시리아군, 헤즈볼라의 기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이란이 쥐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로 경제난에 직면한 이란이 이스라엘과 본격적인 군사 충돌을 감행할지는 미지수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이스라엘과 전면전은 미국과 전쟁이나 다름없는 데다 현재 중동은 이란과 사우디의 대립으로 일치된 행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 이슬람권 전체가 반대한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때와 같이 이번에도 중동 측의 거센 반발이 구두 경고와 우려에 그치는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슬람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유대 민족의 수도로 인정한 당시 미국의 결정에 중동 이슬람권은 앞다퉈 비난과 규탄을 담은 성명을 냈지만 이를 되돌리기 위한 실제 행동은 사실상 없었다.
중동 이슬람권 각국은 '아픈 손가락'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원칙적인 지지만을 확인하는 종교, 정치적 '선명성 경쟁'에 그쳤다.
정착촌 건설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야금야금 차지한 이스라엘의 경험은 골란고원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제사회 질서가 힘의 원리에 지배되는 만큼 이스라엘이 미국의 골란고원 포고문을 근거로 국제사회의 비판과 일부 군사 충돌을 감수하고 결국 '사실상의 영토'를 넓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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