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을 관념적인 안보 상황으로 인식했던 국제 사회는 우크라이나 국민 개개인이 처한 삶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목격할 수 있게 됐다.
무너진 다리의 상판 아래 교각 사이 공간에 빽빽이 서 있는 이들은 키이우 북서쪽 소도시 이르핀의 주민이다.
토요일이었던 3월5일 새벽 러시아군의 급습을 받은 이르핀 주민들은 제대로 짐을 챙기지도 못하고 키이우를 향해 허겁지겁 피란길에 올랐다.
키이우까지 거리는 20㎞. 주민들은 걸어서 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피란길을 떠났을 테다. 키이우까지 가는 기차도 있었지만 주민 모두 태우기엔 턱없이 모자랐던 데다 러시아군은 주요 보급선인 철로를 집중 공격해 피란 수단으로는 매우 위험했다.
키이우에 가려면 폭 15m 정도의 이르핀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다리를 폭파한 뒤였다.
뒤에선 기세를 올린 러시아군이 턱밑까지 추격해 오고, 건너야 할 다리는 앞에서 끊어졌으며 머리 위로는 언제 포탄이 떨어질지 몰라 오도가도 못하게 된 피란민이 다리 아래에 모인 장면을 카메라가 포착했다.
사람이 너무 밀집해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포격 소리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은 당시 우크라이나가 몰린 위태로움을 대변했다. 이렇게 이르핀 다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징적인 현장이 됐다.
석 달 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이곳을 찾았을 때도 다리는 사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당시 피란민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널빤지 몇 장을 이어 만든 임시 다리도 여전했다.
혼자 건너도 삐걱삐걱 소리가 나면서 위아래로 흔들렸다. 이 불안한 널빤지를 딛으며 아이와 늙은 부모의 손을 잡은 수많은 피란민이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널빤지 다리 옆에 얼기설기 엮어 세웠던 손잡이는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었고, 강바닥에는 한쪽 문짝이 날아간 자동차가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널빤지 다리를 따라 양옆으로 줄지은 나무 십자가는 희생자를 기리는 흰색 리본을 두른 채 주인을 잃어버린 신발과 모자, 장갑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늦겨울 삭풍 속에 급작스레 떠난 피란길에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부모가 챙겨왔을 장난감 자동차와 구피 인형도 버려져 있었다.
흙먼지에 뒤덮인 채 버려진 유모차는 포성 속에 갓난아이를 태우고 내달렸을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게 했다.
다리가 끊어진 지 석 달이 지난 지금은 이르핀 강 위에 차가 다닐 수 있는 차로는 복구지만 보행자는 여전히 나무로 만든 간이 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피란민의 피와 눈물이 얽히고설킨 이 다리를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 대신 옆에 새로운 다리를 놓기로 했다고 현장 공사 관계자가 말했다.
임시 다리엔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르핀의 다리를 러시아의 침공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인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선포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다리 곳곳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으킨 전쟁의 잔혹함을 알리는 그림과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기원하는 다양한 언어로 적은 글들이 걸려있었다.
우크라이나 국기 아래 러시아군 군복과 군모가 못 박혀 있는 한 캔버스 상단에는 "메시지를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 해달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곳의 고통은 푸틴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지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바로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 암흑기에서 단결한 우크라이나인이 파도처럼 일어나 위대한 땅을 지켜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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