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계렬조사보도 《길림성 산재지역 조선족학교에 가보다》(32)
■ 교하시조선족실험소학교편
학교연혁:
1940년, 선인국민우급학교(교하조선족실험소학교 전신)로 설립.
해방후 선후로 동송완전소학교, 민주완전소학교로 개칭.
1987년 5월 교하시조선족실험소학교로 개칭.
2003년, 교하시 향진 5개 조선족소학교가 조선족실험소학교에 합병, 현재 교하시 유일한 전일제조선족실험소학교.
현 재직교원 62명, 재적학생 143명, 유치원생 58명.
현임교장 박장남.
현임 박장남교장
교하시중심에 위치하고있는 교하시조선족실험소학교, 70여년 세월의 풍랑을 이겨온 교정에서는 오늘도 《아야어여》글 읽는 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온다.
련 5년간 교하시 교육선진의 영광
조선민족특색문화를 앞세워 3어교육, 조선족전통례의교육을 주선으로 문명하고 례의바른 교정문화를 만들어가자는 방침하에 특색교육의 길을 걷고있는 교하조선족실험소학교는 전체 사생들의 부단한 노력끝에 오늘날 수많은 영광을 안아왔다.
길림시민족단결진보선진집체, 길림시소선대홍기중대, 학교전염병방역선진학교, 교하시교수관리사업선진학교, 학적관리선진사업터, 교원직업기능선진사업터, 문명례의교육시범사업터, 련속 5년 교육사업목표관리선진사업터 등등 교하시 교육전선의 모든 영예는 빠짐없이 교하조선족실험소학교로 돌려졌다.
교하조선족실험소학교 교직원대오 일동
례절바른 교정문화를 가꾸어
교하시조선족실험소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의 덕육교육을 첫자리에 놓고 례절바른 교정문화를 가꾸어가자는 구호를 걸었다. 조선민족의 전통례절규범을 정해 인사말과 인사법을 현장체험을 통해 생생히 가르치고 또 생활화시켰다.
례절법뿐아니라 전통음식 만들기, 력사알기 등으로 폭넓게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학교에서는 매 학기마다 학생들을 조직해 경로활동을 벌여 조선족독거로인, 양로원을 위문한다. 학생들은 절약한 소비돈으로 약간의 위문품을 장만해가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말동무 해주기, 손발 주물러드리기, 문예공연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례절비른 교정문화 만들기 언약식
학교시설 부단히 개선, 채무자가 된 학교
학교시설은 다년간의 노력을 통해 멀티미디어실, 컴퓨터실, 도서실, 무용실, 미술실 식당칸을 두루 갖추어놓았다. 아직 완벽한 현대화시설이라고는 말못하지만 최선을 다해왔다.
“대신에 학교가 채무자로 되였어요. 빚을 져서라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어야지요. 쌀이 떨어졌다고 애들 밥을 굶길순 없잖아요.” 아직 20여만원의 부채를 떠안고있다고 이실직고하는 박장남교장의 말이다.
학교식당과 화장실이 린근해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급정부에 수차 재건자금 청원을 했지만 자금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자 먼저 공사부터 착수해놓은터다. 이번 새학기전에 공사는 거의 무마리가 되여가고있다.
민속풍속 례의범절 주제반회에서
졸업생 100% 조선족중학교로 진학
금년에도 교하조선족실험소학교 졸업학급 20명 학생들이 100% 교하조선족중학교로 진학을 한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학교에서 작년에도 27명 졸업생 전원이 교하조중으로 진학을 해서 제가 큰집에 큰소리치고살지요.》
교하조선족중학교와 교하조선족소학교는 큰집, 작은집으로 사이좋게 지내고있는터, 박장남교장이 유세를 쓰는 대목이다.
학교는 또한 3어교수를 바탕으로 조선족우량전통례의교육을 특색으로 학생들의 개성을 살리고 교원대오자질제고에 노력을 경주해오며 형제학교들과도 경상적으로 학과교류를 진행하고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온데서 교육목표관리 1류표준에 도달해있다.
교하시 조선족 학부모들이 신뢰하고 인정하는 학교로 거듭 태여난 교하시조선족실험소학교, 례절바른 교정문화는 예서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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