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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선물은 '생선'
마음의 상처는 '마상'
수학은 '솩'으로 불러
"재미·즐거움 넘어 세대간 소통 단절 낳아"
서울 사당동에 사는 은행원 김형수(45)씨는 최근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앞으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집에서 줄임말을 쓸 수 없다"고 선언했다고 했다.
"아빠 따아 마실 거야(아빠 따뜻한 아메리카노 마실 거야)?" "날마다 새등하고 열공하는데 이번 생선은 좀 심멎하게 해주지(날마다 새벽 등교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이번 생일 선물은 심장이 멎도록 좋은 걸로 주지)?" 같은 아들의 말을 해독하다가 지친 그가 내린 처방이었다. "줄임말만 쓰다 보면 우리의 진짜 말맛을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일주일에 이틀만이라도 풀어서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김씨는 제안했다. 김씨는 "아들은 그러나 '할많하않'이라고만 대답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할많하않'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줄임말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ㄱㅅㄱㅅ'(굽신굽신) 'ㅎㄷㄷ'(후덜덜) 같은 줄임말이 나오던 게 2000년대 중반이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흠좀무(흠 그게 정말이라면 좀 무서운데)' 같은 단어를 온라인 상에서 재미 삼아 쓰던 시절을 넘어서서, 요새 10대들은 이제 거의 모든 문장에 줄임말을 섞어 쓰다시피 한다. '생선(생일 선물)' '맥날(맥도날드)' '마상(마음의 상처)' '시강(시선 강탈)' '비담(비주얼 담당)' '인싸(인사이더)' 등이 최근 두루 쓰여온 줄임말 단어다.
단어의 첫 음절만을 따서 줄여쓰던 것을 넘어 더 짧게 더 압축적으로 줄일수록 신조어로 사랑받는 것도 최근 줄임말의 특징이다. '고'(극혐의 줄임말) 'ㅎㄹ'('헐'의 줄임말) '#G'(시아버지를 일컫는 말) '잇님'(이웃님의 줄임말) '솩(수학)'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도 줄임말이 쏟아지다 보니 '별다줄'이라는 말도 나왔다. '별걸 다 줄인다'라는 뜻이다.
한글학회 성기지 학술부장은 "10년 전만 해도 학자들 사이에선 줄임말이라는 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예전 줄임말은 초등학생을 '초딩', 선생님을 '쌤'으로 줄여 부르는 식으로 누구나 발음만 들으면 대충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특정 집단이 아니면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기괴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성 학술부장은 "줄임말이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정도를 넘어 소통의 장애까지 낳고 있다면 큰 문제"라고 했다.
권순희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무조건 줄임말을 쓰지 못하도록 막을 순 없겠지만, 어른으로서 이런 줄임말이 얼마나 소통을 어렵게 하는지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정 집단만 나누는 언어는 그만큼 다른 집단을 배제시킨다는 것, 그 언어 유희 때문에 누군가는 소외될 수 있고 그래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일깨워야 한다. 그 줄임말이 무슨 뜻인지 계속 묻고 전체 뜻을 제대로 설명하도록 연습시킬 필요도 있다. 언어는 통하라고 있는 것이고 말은 흐르라고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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