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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수기] 늦봄 _ 조미향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29일 06시16분    조회: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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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심양의 늦봄, 비닐봉지가 하늘에서 강남갔던 제비들보다 더 신나게 날아예는 더러운 계절. 내가 어릴 때의 봄은 항상 따스한 기운을 전해주는 일년 중 가장 산뜻한 계절이였거늘 지금은 전혀 기다려지지 않는다. 오늘도 역시 더러운 날씨 탓을 하며 교실문을 터벅터벅 걸어들어갔다. 꽉 차있는 책걸상을 원했건만 그는 또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의 숙제를 안한 벌로 연속 10일간 일기를 써오라는 선생님의 “명령”이 싫었나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한것 마냥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저 ..할머니예요. (숨을 헐떡이시며) 우리 손녀가 또 아프대요. 위가 너무 아프대요. 선생님 어뜩함 좋아요. 아예 방바닥에서 데굴데굴 굴어요." 나는 무턱대고 어제의 “처분”을 따르기 싫어 꾀병을 부리는거라 단정 짓고는 화가 난 어조로 할머님께 병원에 데리고 가보시라는 제안만 간단히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풀리지 않아 나는 그 학생의 집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똑똑똑...”


“쾅쾅쾅...”

나는 내 속의 분노를 참지 못해 애꿎은 출입문을 발로 걷어찼다. 병원에 안 갔을거란 확신이 더 앞섰기 때문이였다.


“누구시라요?”
“네. 저 반주임인데 얼른 문 좀 열어주세요!” 본의 아니게 짜증 섞인 말투로 여든이 넘으신 할머님께 예의없이 대답드렸다.
“찌익~”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발 뒷꿈치가 들리워졌다. 집안 구석구석은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벅찬 할머니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였고 그 아이는 어릴 때 엄마의 사랑을 못 받아서인지 사춘기여서인지 모를 전교에서도 유명한 “문제아”여서 전혀 노할머니의 고생과 걱정따윈 손톱만큼도 안하는 그러기에 집안일을 도와줄 애는 절대 아니였다. 

 

그래서인지 집안은 한두마디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2인용 침대가 나란히 있는 침실안에는 침대위며 방바닥이며 죄다 옷들이 널려있었고 모든 가전제품은 어느 재활용센터에서 얻어왔는지 낡아빠져서 볼품없었고 커텐이라고 하나 걸려있는데 그야말로 시장에서 파는 천을 뚝 잘라다 붙여논거였다.


하아~


엄마는 이 친구가 태여난지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빠는 재혼하여 여동생 한명을 낳고는 다시 이혼하여 한국에 나가 있는 상황이고 할머니는 그런 아들이 애처로와 손녀딸 둘을 노할머니께 맡겨놓고 같이 한국에서 돈을 벌고 계시는 상황이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이런저런 예기를 여든이 넘는 할머니입을 통해 듣고 있으려니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이 애는 무슨 죄고 노할머니는 또 무슨 죄인가! 노할머니는 심장병이 있어 말을 조금만 많이 하시면 숨이 가빠서 헐떡거리시며 유치원 중반 여자아기까지 두 애를 키우고 계셨다.


 “선생님, 여기 좀 앉으세요.”하시며 제 손을 잡아당기시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앉아 그 친구가 건네는 저번에 떼온 병원진단서를 쳐다보았다. 아픈건 사실이였나보다. 한창 크는 애들이 자주 걸리는 병으로 몸을 차게 건사하여 장이 꼬여서 아픈거란다. 

 

가정상황이며 건강상태를 확인한 나는 순간 지금까지 했던 내 행동을 돌이켜보며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이런저런 정황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무턱대고 “문제아”로 단정짓고 화를 내고 꾸지람을 했던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지면서 말이다.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머금고 그 애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담화를 시작하였다.


“그간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가? 많이 외로웠지?”란 말로 일단 그 학생의 얼어있는 마음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이 들켜버렸는지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흘릴 것 같지 않은 그 애의 두 눈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맴돌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선생님이 너무 무관심한것 같구나. 지금부터라도 선생님이 엄마가 되여줄께요. 사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 선생님께 예기하렴! 무조건 들어준다는 약속은 못 하겠지만 할수 있는데까진 노력할테니...”나는 더이상 말을 이어나갈수가 없었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그 친구가 어렸을 때 받았을 공포심과 외로움이 얼마나 컸길래 애가 이 지경이 되버렸을가 하는 걱정부터가 앞섰기 때문이다.


“친구가 가야 할 길은 오로지 한길 뿐이예요. 다른 친구들은 잘 나가는 부모님이나 친척을 두었을지 몰라도 친구는 오로지 열심히 살아서 자신이 성공하는 길 뿐이니까요. 참 불공평한것 같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게 친구가 살면서 헤쳐나갈 숙제예요. 하지만 친구가 가진 누구보다 똑똑한 머리로는 그 어떤 잘 나가는 부모님을 둔것보다 꼭 더 크게 성공할거예요. 절대 선생님이 지금 근거없는 예기로 공부하란 말을 이렇게 빙 둘러 한단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애당초 공부할 과가 아닌 학생이였음 선생님이 이렇게 애타게 집까지 찾아오며 어뜩해든 친구를 잡으려 하지 않을테니까요.”

 

말을 마치고 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채 걱정 마시라는 말씀만 드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나왔다. 그 곳에 머무른 시간이 길수록 내 죄책감은 땅굴을 파고 깊숙이 깊숙이 느껴질것만 같아서...


숙제면 숙제, 임무면 임무 죽어라 하지 않고 하루종일 학교에서 하는 일이라곤 가방 메고 등교햇다가 8교시가 끝나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 게임만 하던 그 애가 진짜 미칠듯이 미웠었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아무리 노력해도 이뻐지지가 않던 애였는데. 이젠 더이상 밉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다른 애들보다 더 보석처럼 빛나게 키우고싶은 욕심마저 생긴다. 그간 못 받은 엄마 사랑, 가족 사랑을 내가 다 대신 할순 없지만 어느 정도만이라도 깡깡 얼어붙은 그 애의 마음속에도 따뜻한 다소나마 늦은 봄날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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