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떻게 하면 작문을 잘 지을 수 있을가요?” 하고 묻는다면 학생친구들은 “평소에 많이 쓰고 많이 단련해야 합니다.”, “좋은 문장들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생활소재를 루적하기에 주의해야 합니다.”는 허다한 방면으로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작문에 대한 흥취를 배양하는 것이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흥취만 있으면 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고 또 그 어떤 깨달음도 얻게 된다. 작문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농후한 흥취가 있을 때 사고가 특별히 민첩해짐을 느낄 수 있고 글을 쓰기 시작해서는 아주 류창해져 힘들이지 않고 단꺼번에 써내려갈 수 있다.
그것은 흥취가 친구들의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친구의 전부의 감정, 심지어 글을 쓸 때 산생되는 모종의 격정 즉 사람들이 늘 말하는 령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문장은 생각밖에도 정채롭게 된다.
어느 한 친구는 작문을 쓸 때의 감수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작문에 흥취가 없었을 때 작문을 짓는 일을 압력으로 느꼈고 심지어 부담으로 느꼈지만 작문에 아주 짙은 흥취를 가진 후부터는 작문수준이 재빨리 제고되였을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의 련습과 선생님이 포치한 작문숙제에 만족할 수 없어 과외시간에도 습작을 견지하였다.
매 한편 작문을 완수한 후에는 부모나 다른 동학들에게 읽어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긍정을 받을 때마다 일종 정신상의 향수를 느끼군 했다.”
흥취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양해야 된다. 송나라 대문학가 구양수는 다음과 말하였다.
“내 평생에 쓴 글들은 많이는 세가지 장소에서 남긴 것이다. 즉 말우에서, 베개우에서, 변소에서 썼다.” 하여 후세사람들은 그를 “3상작가 즉 세가지우의 작가”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바 구양수는 글쓰기에 흠뻑 빠져있었는데 그의 글쓰기 흥취는 없을 때가 없고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흥취는 일조일석에 배양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사물에 대해 장시간 동안 감정을 한결같이 몰부은 결과이다.
물론 흥취가 중요하다고 해서 절대 글쓰는 방법, 열독, 생활루적의 작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작문을 쓰는 일에 흥취가 생겼을 때 많은 좋은 글쓰기방법들은 동무의 작문수준을 더욱 빨리 제고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흥취가 없다면 좋은 글쓰기방법을 장악할 수 없으며 령활한 운용은 더구나 운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글쓰기를 배울 때 흥취배양은 단순히 학습방법을 강조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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