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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작은 어려워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편집한 고전명작은 괜찮지 않나요?”
강연을 할 때마다 받는 단골 질문 중 하나입니다.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 중에 고전명작을 독서교육의 목표점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공인된 최고의 책이 고전명작이니, 아이가 그 최고의 책들을 읽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최고의 책이고, 독서 효과도 큽니다. 문제는 이 책들 대부분이 아이가 읽기에 너무 어렵다는 점입니다. 부모님들마저 재미를 느끼며 읽기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읽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의 과정도 원활하지 않다는 뜻이고, 글자를 읽겠지만 독서 행위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독서능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고전 명작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내용을 축약하고 문장을 쉽게 바꾼 소위 ‘문고판 고전명작’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이가 재미있게 읽어낸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충분히 훌륭한 독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고전명작 하면 떠오르는 어떤 특별한 독서 효과에 대한 기대는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모든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완결된 구조를 갖춥니다. 이 구조는 매우 엄밀해서 단어 하나, 설정 하나만 빼거나 바꿔도 문제가 생길 정도입니다. 주인공이 입은 옷이 ‘보라색 망토’라면 보라색인 이유, 망토인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보라색 망토’라는 묘사를 빼버린다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 하나가 실종돼 버립니다. 독자가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장 자체를 쉽게 바꾸고 에피소드를 덩어리째로 덜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윌리엄 제럴드 골딩의 ‘파리대왕’은 섬에 조난당한 아이들을 통해 인간의 무서운 본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문제적 작품인데, 만약 이 작품을 축약한다면 다소 불쾌한 버전의 ‘15소년 표류기’처럼 변하고 말 것입니다. 원래의 고전명작과는 다른 작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독서 효과 역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훌륭한 독서가 될 수는 있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고전 명작들 대부분이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충분히 재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고판 고전명작을 재미있게 읽었을 때 발생하는 독서 효과는 자기 또래가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동화를 읽었을 때의 독서 효과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어떤 책을 더 재미있게,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느냐가 독서 효과를 좌우할 뿐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문고판 고전명작을 읽겠다고 하면 말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아이는 낯선 시대, 낯선 인물들을 접하며 색다른 자극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아이가 자기 또래 동화책에 푹 빠져 문고판 고전명작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억지로 강권할 이유도 없습니다. 아이는 책 속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훌륭하게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독쌤’ 최승필은?
독서교육전문가이자 어린이·청소년 지식 도서 작가다. 전국 도서관과 학교 등지를 돌며 독서법 강연을 하고 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쓴 책으로는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과 ‘아빠가 들려주는 진화 이야기, 사람이 뭐야?’(창비) 등이 있다. 교육 잡지 ‘우리 교육’에 독서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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