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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숲을 이루어야 봉황새가 날아든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7월4일 13시55분    조회: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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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 새농촌건설 견문
 

봉림촌, 향토마을에서 새농촌으로
 
봉황 “봉(凤)”자에 수풀 “림(林)”자로 이름을 딴 봉림촌은 글자그대로 봉황이라도 날아들듯 수풀이 우거진 향토마을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배초구진에 위치한 봉림촌은 가야하를 사이두고 배초구진 소재지와 마주하고 있다. 거침없이 흐르는 가야하 우로 간이 철교 하나가 놓여있었다. 봉림촌 서기 오기철의 소개에 따르면 이 철교는 봉림촌을 외부와 련결해놓은 유일한 경로이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철교는 생명선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다 어느 한번 량식을 가득 싣고 다리를 건느던 소차가 다리의 부하량을 초과하는 바람에 그만 가야하에 빠지는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철교는 크게 파손되였고 그 뒤로부터 사람만 건널수 있지 차량은 절대로 철교에 오르지 못하도록 되였다. 따라서 마을 농민들이 농산물을 내다 팔고 또한 농사짓는데 필요한 화학비료, 농기구 등 생산자료를 들여다오는데 어려움이 생기였다.

다행히도 정부에서 주도하는 소수민족발전기금의 투자로 새 다리가 올해내로 준공된다고 한다. 교통은 농촌의 발전을 좌우지하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였다. 봉림촌의 경우 가야하를 건너야만 외부와 교류를 할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다리는 촌민들의 명줄과도 같았다. 교통이 편리해야 농산물을 계절에 따라 즉시로 시장에 내다팔수 있으니 말이다.
5월 중순의 봉림촌은 한창 써레질하고 파종을 하는 농망기였다. 마을길에는 가끔씩 요란하게 “덜커덕”거리며 지나가는 뜨락또르외에는 촌민들의 행적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오기철 서기는 기자일행을 마을입구에 위치한 연자방아앞까지 와서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봉림촌의 과거와 연자방아에 대한 일화부터 말한다.

“봉림촌은 지금까지 200여년의 력사를 갖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은 농사짓기에 안성맞춤한 고장이라 이름났지요. 이 연자방아가 곧바로 그 당시 활발했던 봉림촌의 농업생산활동을 말해줍니다. 마을의 중심위치에 깊이 파묻혀있던 연자방아를 지난해에 파내서 제사를 올리고 이곳에 옮겨놓았는데, 그 당시 제사를 지낼 때 마침 하늘에서 신이라도 내려온듯 돌개바람이 불었어요……”

약간의 신비로움을 보태가며 연자방아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어나가는 오기철 서기였다. 연자방아가 그토록 신성한지는 알 리가 없지만 마을 입구에 옮겨 정히 섬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연자방아는 봉림촌의 유구한 농경생활의 상징이며 또한 새농촌건설의 증증견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촌에서 농사를 가장 많이 짓는 집안은 년간 순수익이 20만원에 달합니다.” 오기철 서기의 소개대로 봉림촌은 불과 몇년 사이에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다. 농업생산방식이 조방형(粗放型)으로부터 집약형으로 바뀌고 단일한 벼농사에만 의거하던 데로부터 버섯재배, 과수나무재배, 양돈업, 소사양업 등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키는데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농민들의 수입은 크게 제고되였다. “다같이 부유해지는것이 바로 우리들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오기철 서기의 말이다.
 
농촌산업발전은 오서기의 포부와 꿈
 
1956년 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의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오기철은 어릴적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1974년 19세가 되던 해에 그는 능란한 손풍금 재주로 부대에서 문예병사로 뽑혀 길림성예술학원에서 학습할 기회를 얻었다. 1978년 제대하면서 예술특장으로 장춘시문화국에 배치받았으며 조선족군중예술관의 부관장직을 담임하였다. 그렇게 16년 동안 민족문화사업에 몸 담아오던 그는 1994년에 길림성경제무역발전그룹으로 전근되면서 경제의식을 머리에서 싹 티우기 시작했다. 일반사람들의 인생궤적대로라면 도시에서 남의 부러움을 자아낼 직장을 다니면서 농촌사람들과 다른 생활을 했을것이다.

1997년 고향 봉림촌에 놀러와 며칠을 묵으면서 그의 생각은 바뀌였다. 농촌의 독특한 자연조건을 토대로 특색산업을 발전해보는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도시생활을 꿈꾸던 마을사람들로서는 도무지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1998년 43세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 오기철 서기는 우월한 도시생활을 뒤로 한채 봉림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양돈장을 꾸렸다. 오기철서기는 그해에 봉림촌의 당지부서기직을지부서기직을 맡게되였고 촌민들을 이끌고 다같이 부유해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분투하여왔다.

오기철 서기는 봉림촌의 실제와 결부하여 농촌산업발전의 구체적인 계획을 제정하였다. 자금마련을 위해 부지런히 쫓아다닌 결과 소수민족발전자금과 빈곤구축자금을 쟁취하였다. 근년래 봉림촌은 주택개조와 도로건설를 추진하였으며 공공위생소, 도서열람실, 문화광장도 새롭게 건설하였다. 이처럼 봉림촌은 기초시설들을 일일이 갖추면서 마을 전체가 변모됐다.

“옛말에 부유해지려면 길부터 닦으라고 했지요. 몇해 사이에 우리 마을은 아스팔트길을 닦았고 홍수방지뚝을 쌓았으며 가야하대교도 새롭게 건설했습니다.” 오기철 서기는 산업발전을 위한 제반 기초를 하나하나씩 마련해나간 것이다. 편벽하고 락후한 농촌일수록 신심을 갖고 착실히 해나간다면 해당 정책과 자금적 지원을 받을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봉림촌은 벼농사, 사양산업 등 전통산업을 제외하고 민속관광산업의 발전을 알뜰하게 준비해나가고 있다. 마을 한 복판에 위치한 조선족 민속문화정원이 한창 건설중이였다. 농촌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조선족 농촌민속문화를 펼쳐보이는것이 민속문화정원을 건설하는 취지였다.

봉림촌은 예로부터 조선족과 한족이 함께 어울려서 생활하는 마을이였다. 봉림촌의 총 173세대중 조선족이 95세대로서 총인구의 55.3%를 차지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이후 많은 조선족들이 봉림촌을 떠나 연해도시나 외국으로 진출하면서 현재 실제로 봉림촌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은 20세대도 안된다고 한다.

인구류실은 그들이 보존하고 있던 문화도 함께 소실됨을 의미한다. 한때는 농후했던 조선족 세시풍속도 봉림촌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으며 사라져가는 추세였다. 이 마을에서 태여나서 자란 오기철 서기로서는 이런 현상을 가만히 지켜보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였다.

민속관광산업을 개발하여 특색마을을 건설하는것은 날로 황페화되고 있는 농촌의 현실을 대처하는 좋은 방도이다. 봉림촌의 민속문화정원은 지난 세기 30년대로부터 7,80년대를 거쳐 조선족농촌풍속을 반영하는 물품들이 진렬될것이다. 이를 위해 오기철 서기는 이미 수백종의 소중한 문물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퇴마루가 달린 7채의 조선족전통가옥이 들어선 민속문화정원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서로 어울리면서 민속 분위기를 한층 돋구어준다. 오기철 서기는 민속문화정원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조선족 풍토인정이 깃든 농촌문화체험의 좋은 무대가 될것이라 밝혔다. 동시에 그는 봉림촌을 부유하고 민속특색이 있는 마을로 구상하면서 “산업이 있어야 농민들도 잘 살수 있지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술과 자금은 새농촌건설의 무기
 
“앞으로 농촌이 도시보다 살기 좋지 않을까요?” 취재중 오기철 서기는 농촌이 더욱 살기 좋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봉림촌의 교통이 좋아지고 환경이 좋아짐에 따라 고향을 떠났던 일부 촌민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다. 오기철 서기는 농촌에서도 기술과 자금만 있으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수 있고 부유해질수 있다고 했다.
새농촌건설은 지난 세기 50년대부터 제기된 과제로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농촌의 발전이 없으면 초요사회를 이룩할수 없고 농업의 현대화가 없으면 국가의 현대화도 있을수 없다. 그토록 새농촌건설의 전략적 의의가 중요했다. 올해는 국가 측면에서 전면적인 초요사회건설이 결승단계에 들어서는 첫해이고 “제13차 5개년계획”을 실시하는 첫해이기도 했다.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농촌 발전에 투입이 많을것이라고 오기철 서기는 확신하고 있었다.
날로 좋아지고 있는 농촌생활을 두고 오기철 서기는 로무수출로 외지에 나간 조선족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자금을 챙겨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봉림촌의 발전전망을 내다보며 오동나무숲을 이루었으니 봉황들이 날아드는것은 다만 시간문제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글 김향덕/ <중국민족>잡지 2016년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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