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오동나무숲을 이루어야 봉황새가 날아든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7월4일 13시55분    조회:174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 새농촌건설 견문
 

봉림촌, 향토마을에서 새농촌으로
 
봉황 “봉(凤)”자에 수풀 “림(林)”자로 이름을 딴 봉림촌은 글자그대로 봉황이라도 날아들듯 수풀이 우거진 향토마을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배초구진에 위치한 봉림촌은 가야하를 사이두고 배초구진 소재지와 마주하고 있다. 거침없이 흐르는 가야하 우로 간이 철교 하나가 놓여있었다. 봉림촌 서기 오기철의 소개에 따르면 이 철교는 봉림촌을 외부와 련결해놓은 유일한 경로이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철교는 생명선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다 어느 한번 량식을 가득 싣고 다리를 건느던 소차가 다리의 부하량을 초과하는 바람에 그만 가야하에 빠지는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철교는 크게 파손되였고 그 뒤로부터 사람만 건널수 있지 차량은 절대로 철교에 오르지 못하도록 되였다. 따라서 마을 농민들이 농산물을 내다 팔고 또한 농사짓는데 필요한 화학비료, 농기구 등 생산자료를 들여다오는데 어려움이 생기였다.

다행히도 정부에서 주도하는 소수민족발전기금의 투자로 새 다리가 올해내로 준공된다고 한다. 교통은 농촌의 발전을 좌우지하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였다. 봉림촌의 경우 가야하를 건너야만 외부와 교류를 할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다리는 촌민들의 명줄과도 같았다. 교통이 편리해야 농산물을 계절에 따라 즉시로 시장에 내다팔수 있으니 말이다.
5월 중순의 봉림촌은 한창 써레질하고 파종을 하는 농망기였다. 마을길에는 가끔씩 요란하게 “덜커덕”거리며 지나가는 뜨락또르외에는 촌민들의 행적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오기철 서기는 기자일행을 마을입구에 위치한 연자방아앞까지 와서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봉림촌의 과거와 연자방아에 대한 일화부터 말한다.

“봉림촌은 지금까지 200여년의 력사를 갖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은 농사짓기에 안성맞춤한 고장이라 이름났지요. 이 연자방아가 곧바로 그 당시 활발했던 봉림촌의 농업생산활동을 말해줍니다. 마을의 중심위치에 깊이 파묻혀있던 연자방아를 지난해에 파내서 제사를 올리고 이곳에 옮겨놓았는데, 그 당시 제사를 지낼 때 마침 하늘에서 신이라도 내려온듯 돌개바람이 불었어요……”

약간의 신비로움을 보태가며 연자방아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어나가는 오기철 서기였다. 연자방아가 그토록 신성한지는 알 리가 없지만 마을 입구에 옮겨 정히 섬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연자방아는 봉림촌의 유구한 농경생활의 상징이며 또한 새농촌건설의 증증견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촌에서 농사를 가장 많이 짓는 집안은 년간 순수익이 20만원에 달합니다.” 오기철 서기의 소개대로 봉림촌은 불과 몇년 사이에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다. 농업생산방식이 조방형(粗放型)으로부터 집약형으로 바뀌고 단일한 벼농사에만 의거하던 데로부터 버섯재배, 과수나무재배, 양돈업, 소사양업 등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키는데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농민들의 수입은 크게 제고되였다. “다같이 부유해지는것이 바로 우리들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오기철 서기의 말이다.
 
농촌산업발전은 오서기의 포부와 꿈
 
1956년 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의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오기철은 어릴적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1974년 19세가 되던 해에 그는 능란한 손풍금 재주로 부대에서 문예병사로 뽑혀 길림성예술학원에서 학습할 기회를 얻었다. 1978년 제대하면서 예술특장으로 장춘시문화국에 배치받았으며 조선족군중예술관의 부관장직을 담임하였다. 그렇게 16년 동안 민족문화사업에 몸 담아오던 그는 1994년에 길림성경제무역발전그룹으로 전근되면서 경제의식을 머리에서 싹 티우기 시작했다. 일반사람들의 인생궤적대로라면 도시에서 남의 부러움을 자아낼 직장을 다니면서 농촌사람들과 다른 생활을 했을것이다.

1997년 고향 봉림촌에 놀러와 며칠을 묵으면서 그의 생각은 바뀌였다. 농촌의 독특한 자연조건을 토대로 특색산업을 발전해보는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도시생활을 꿈꾸던 마을사람들로서는 도무지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1998년 43세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 오기철 서기는 우월한 도시생활을 뒤로 한채 봉림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양돈장을 꾸렸다. 오기철서기는 그해에 봉림촌의 당지부서기직을지부서기직을 맡게되였고 촌민들을 이끌고 다같이 부유해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분투하여왔다.

오기철 서기는 봉림촌의 실제와 결부하여 농촌산업발전의 구체적인 계획을 제정하였다. 자금마련을 위해 부지런히 쫓아다닌 결과 소수민족발전자금과 빈곤구축자금을 쟁취하였다. 근년래 봉림촌은 주택개조와 도로건설를 추진하였으며 공공위생소, 도서열람실, 문화광장도 새롭게 건설하였다. 이처럼 봉림촌은 기초시설들을 일일이 갖추면서 마을 전체가 변모됐다.

“옛말에 부유해지려면 길부터 닦으라고 했지요. 몇해 사이에 우리 마을은 아스팔트길을 닦았고 홍수방지뚝을 쌓았으며 가야하대교도 새롭게 건설했습니다.” 오기철 서기는 산업발전을 위한 제반 기초를 하나하나씩 마련해나간 것이다. 편벽하고 락후한 농촌일수록 신심을 갖고 착실히 해나간다면 해당 정책과 자금적 지원을 받을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봉림촌은 벼농사, 사양산업 등 전통산업을 제외하고 민속관광산업의 발전을 알뜰하게 준비해나가고 있다. 마을 한 복판에 위치한 조선족 민속문화정원이 한창 건설중이였다. 농촌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조선족 농촌민속문화를 펼쳐보이는것이 민속문화정원을 건설하는 취지였다.

봉림촌은 예로부터 조선족과 한족이 함께 어울려서 생활하는 마을이였다. 봉림촌의 총 173세대중 조선족이 95세대로서 총인구의 55.3%를 차지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이후 많은 조선족들이 봉림촌을 떠나 연해도시나 외국으로 진출하면서 현재 실제로 봉림촌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은 20세대도 안된다고 한다.

인구류실은 그들이 보존하고 있던 문화도 함께 소실됨을 의미한다. 한때는 농후했던 조선족 세시풍속도 봉림촌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으며 사라져가는 추세였다. 이 마을에서 태여나서 자란 오기철 서기로서는 이런 현상을 가만히 지켜보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였다.

민속관광산업을 개발하여 특색마을을 건설하는것은 날로 황페화되고 있는 농촌의 현실을 대처하는 좋은 방도이다. 봉림촌의 민속문화정원은 지난 세기 30년대로부터 7,80년대를 거쳐 조선족농촌풍속을 반영하는 물품들이 진렬될것이다. 이를 위해 오기철 서기는 이미 수백종의 소중한 문물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퇴마루가 달린 7채의 조선족전통가옥이 들어선 민속문화정원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서로 어울리면서 민속 분위기를 한층 돋구어준다. 오기철 서기는 민속문화정원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조선족 풍토인정이 깃든 농촌문화체험의 좋은 무대가 될것이라 밝혔다. 동시에 그는 봉림촌을 부유하고 민속특색이 있는 마을로 구상하면서 “산업이 있어야 농민들도 잘 살수 있지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술과 자금은 새농촌건설의 무기
 
“앞으로 농촌이 도시보다 살기 좋지 않을까요?” 취재중 오기철 서기는 농촌이 더욱 살기 좋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봉림촌의 교통이 좋아지고 환경이 좋아짐에 따라 고향을 떠났던 일부 촌민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다. 오기철 서기는 농촌에서도 기술과 자금만 있으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수 있고 부유해질수 있다고 했다.
새농촌건설은 지난 세기 50년대부터 제기된 과제로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농촌의 발전이 없으면 초요사회를 이룩할수 없고 농업의 현대화가 없으면 국가의 현대화도 있을수 없다. 그토록 새농촌건설의 전략적 의의가 중요했다. 올해는 국가 측면에서 전면적인 초요사회건설이 결승단계에 들어서는 첫해이고 “제13차 5개년계획”을 실시하는 첫해이기도 했다.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농촌 발전에 투입이 많을것이라고 오기철 서기는 확신하고 있었다.
날로 좋아지고 있는 농촌생활을 두고 오기철 서기는 로무수출로 외지에 나간 조선족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자금을 챙겨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봉림촌의 발전전망을 내다보며 오동나무숲을 이루었으니 봉황들이 날아드는것은 다만 시간문제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글 김향덕/ <중국민족>잡지 2016년 3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070
  • 국경절 황금련후기간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정책과 더불어 주내 많은 관광지에서 입장료 할인정책이 실시되면서 관광시장이 호황세를 보였다. 돈화륙정산풍경구에는 지혜의 등을 밝히고 기복카드를 거는 등 행사를 조직했는데 륙정산풍경구 책임자에 의하면 “국경절기간 입장료를 30% 가량 할인했으며 관광객들은 옥불...
  • 2013-10-08
  • 27일, 전국 500강 기업인 장춘구아집단과 연길백화청사가 공동으로 훈춘시에 일떠세운 원스톱 쇼핑쎈터가 개업했다. 장춘구아집단주식유한회사는 국내 대형상업기업으로서 1984년에 설립되였다. 29년 동안 리사장 조화평...
  • 2013-10-05
  • 하서촌 당지부서기겸 촌민위원회 주임 관언영   기지에서는 남새 외 딸기,수박,참외 등 과일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지 면적이 10여헥타르 늘었고 온실 16개, 비닐하우스가 90여개에 달합니다.     온실   촌민들이 유기비료를 발효시키는 온실에 비닐박막을 씌우고 철사를 고정시...
  • 2013-10-04
  • 지난 9월 29일에 열린 주 및 화룡시기계화가을걷이 현장회   올해 저온랭해 등 자연재해를 이겨내고 어거리풍작을 거둔 우리 주 농촌들에서 기계화가을걷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평강벌일대에 있는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 벼재배기집니다.    알알이 염근 벼이삭들이 서늘한 가을바람을 타고 황...
  • 2013-10-04
  • 《10.1》황금주를 앞두고 북경시의 첫 시급 관광안내소가 정식으로 천안문광장 동쪽에 설치돼 관광객들을 맞이하고있다. 《일찍 북경시의 적지 않은 풍경구에 관광안내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마침 천안문안내소개업날에 천안문에 오게 됐다》. 26일 집식구들과 함께 천안문광장 유람을 온 호북 리박의 말이다. 국가박물...
  • 2013-09-28
  • 김광서 씨(오른쪽)와 저장성 중국 단독투자법인 관계자가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본사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조선족 기업인이 경영하는 국제 선진 친환경 건자재제품 헤이룽장 총판이 지난 25일 개업했다.   하얼빈의 기업가 출신인 김광서(47)씨는 일본 최대 친환경 건설 및 인테리어 업체인 '다이켄(大建)...
  • 2013-09-27
  • -도문형통양조유한회사 최형길사장의 일가견 《우리는 살아있는 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늘 감주의 질에 대해 강조하는 최형길사장(중간사람). 최근 《연변의 여름》-2013 두만강문화관광축제와 연길두만강투자무역박람회에서 《미아리(米阿利)》 표 100%활성화 막걸리로 현지 한족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인 ...
  • 2013-09-27
  • 부동산관리국 감독관리 실시   개발상이 분양주택 구매자의 예매금을 람용하는 불법행위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분양주택 거래 쌍방의 합법적리익을 수호하는데 도움을 주고저 일전 연길시인민정부 제8차 상무회의는 “연길시 분양주택예매금 감독관리 실시세칙”(이하 “세칙”으로 략함)을 실시...
  • 2013-09-26
  • 9월 30일, 10월 13일 시운행 중국, 조선, 로씨야 3국 주요관광지를 잇는 연길-평양-울라지보스또크 전세기관광상품이 곧 출시할것으로 알려졌다. 연변천우국제려행사 지금녀총경리에 따르면 관련 관광코스는 5박 6일(가격 인당 5280원)로서 오는 9월 30일과 10월 13일에 시운행을 하고 래년에 정식운행을 할 계획이다. 소개...
  • 2013-09-26
  •   길림시 길림-료녕초시(吉草)고속도로 부근에 높이 6메터되는 팽이조형물이 경사진 형태로 당장이라도 넘어질듯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있다. 설계자의 한 사람인 동북사범대학 미술학원 조각전공 곽수의교수에 따르면 이 팽이는 높이가 6메터, 직경이 5메터, 무게가 약 5톤이다. 길림신문
  • 2013-09-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