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건 괜찮은데 사람이 없어 말 못하게 심심해요”.
수수한 옷차림에 퉁퉁한 몸매로 인심 좋아보이는 아저씨, 그 남자를 만난 건 초여름 해빛이 쨍쨍한 5월의 마지막 날 오전이였다. 서란시 평안진 춘광촌. 조용한 마을길을 따라 춘광촌 학교의 옛터를 찾아다니던 취재팀은 전날 가보았던 이 마을 부녀주임 오정숙(52세)네 집을 찾아 들어갔다.
잘 정돈되고 깨끗한 마당 한 가운데 반듯하게 서있는 벽돌집, 문을 떼고 들어서니 마침 부녀주임은 회의 나가고 남편 리동관(59세)씨만 집에서 한족 촌민으로 보이는 분과 텔레비죤을 보고 있었다.
기자의 취재를 받고 있는 리동관씨
마당까지 나와 학교옛터를 친절하게 알려주던 아저씨와 취재팀은 자연스레 이야기가 오고 갔다.
“왜 이 마을에 그냥 남아있나요?”라고 묻는 취재팀의 물음에 리동관씨는 어머님 때문이였다며 말문을 연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 가려했다구요. 올해 설 며칠전에 어머님께서 88세로 세상 떴고요. 어머님 시중을 드는 바람에 한국 못 갔어요,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한국 가려 하니 촌 부녀주임을 한다꼬 안해가 한국 못가게 해요.”
5월 31일,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옥수수밭
리동관씨네는 8무 가량의 옥수수 밭을 다루는데 올해는 가물어서 아직까지 옥수수 싹이 나오지 않은 밭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4월 20일이후부터 비가 내리지 않았꼬요. 10일전에 소나기가 살짝 때리고는 지금까지 비가 안 와요.”
“4월 20일전에 심은 강낭이(옥수수)는 이미 싹이 터 나오고요. 그후에 심은 강낭이는 싹이 돋아나지도 않았다구요.”
벼농사를 하는 촌민들은 지하수를 뽑아 논에 물을 대야 하는데 기름값이 올라 물을 퍼올리는 데만 하루 700-800원씩 든다 한다. 년말에 가 남는 것이 있기나 하겠는지 라고 말하는 리동관씨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리동관씨가 사는 동네 이름은 방신툰, 이 툰은 4개 촌민소조에 원래는 조선족농가가 200호가 넘었단다.
허물어져 가는 누군가의 농가집
“먹고 사는건 그런대로 괜찮다구요. 제일 큰 문제는 사람이 없어서 말도 못하게 심심한 거요. 원래 우리 마을에는 여기 앞 길을 따라 집들이 쭉 늘어서 있어 아담한 마을이였는데 지금은 다들 집문만 잠그고 도시로, 외국으로 떠나버렸다구요. 지금은 우리 집과 저 앞집 장애자 전성국이네 집밖에 안 남았어요.”, “없어, 없어, 사람이 없다구요. 그러니까 길에 나서서 얘기를 나눌 사람도 없다꼬요.”
“앞으로 그냥 이 마을에서 살 생각이세요?”라는 물음에 리동관씨는 “한국 가는 것도 별 재미가 있을 것 같지 않고요. 한국 가 갔고 돈 버는 사람이 벌지 못 버는 사람은 돈 못 번다고 하더라고요. 8무 되는 옥수수밭에서 비용을 다 빼고 1년에 1만원, 2만원 벌때도 있으니 살만은 해요. 로후요? 그때그때 봐야죠 (走一步算一步吧) !”
리동관씨는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마을을 돌아다니다 6시쯤에 아침식사를 하고 8무 되는 옥수수밭을 다루고 농사 여가에 낚시하러나 다닌다.
저녁이면 텔레비죤을 보고 휴대폰을 보다가 9시, 10시면 잠자리에 든단다.
이것이 그의 하루 일정이란다. 아주 오래전부터…
길림신문/ 사진 글 최승호 홍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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