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 부자, 90세인 내년 은퇴
청쿵그룹 수석자문으로 남아 큰아들 경영승계 도울 계획, 둘째는 독립… 분쟁의 싹 없애
1950년 플라스틱 조화로 사업 첫발, 문화대혁명기 부동산 투자로 떼돈… 19년째 홍콩 제1부자 자리 유지
내년 은퇴를 선언한 홍콩 사업가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89). 그는 시계 수리공으로 시작해 아시아 최고 거부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동아일보DB
홍콩의 작은 시계점 수리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홍콩 최대 재벌그룹을 키우고 아시아 최고 부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인 리카싱(李嘉誠) 청쿵그룹(CK 허치슨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예정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리 회장 측근들의 말을 인용해 2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리 회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된 큰아들인 빅터 리(李澤鉅·52) 부회장 등 내부 핵심 그룹에 자신의 은퇴 계획을 밝혔다. 은퇴 시점은 90세가 되는 내년이나 빠르면 올해 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WSJ는 전했다.
리 회장은 은퇴 후 홍콩 도심에 위치한 청쿵그룹 본사 70층 사무실을 유지하고 수석자문으로 남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슈퍼맨이 완전히 물러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여전히 남아서 배를 몰지만 아들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도록 하면서 원만한 경영 승계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빅터 리 부회장은 2012년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으며 30년 이상 아버지의 그늘에서 묵묵히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동생 리처드 리(李澤楷·50)는 1990년대에 청쿵그룹을 떠나 미디어와 통신회사를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아들 둘을 둔 리 회장은 일찌감치 그룹 조직을 정비하고 경영 수업을 착실히 시켜 경영권 분쟁 없이 물려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리 회장이 2015년 허치슨왐포아그룹과 청쿵그룹의 구조를 단순화한 뒤 2개 회사를 하나로 합쳐 CK 허치슨그룹으로 만든 것은 투자자에 대한 매력을 높이고 경영권 승계를 원만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WSJ는 평가했다. CK 허치슨그룹의 시가총액은 490억 달러를 넘어 포드자동차보다 많다.
광둥(廣東)성 차오저우(潮州) 출신인 리 회장은 일본군이 남쪽으로 밀려오던 1939년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피란 간 뒤 부친이 사망하자 14세에 다니던 중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1950년 22세에 미화 7000달러로 플라스틱 조화를 만들던 ‘창장(長江) 플라스틱 공장’을 설립해 초석을 닦았다.
리 회장은 1960년대 말 중국 문화대혁명의 불안이 홍콩까지 번졌을 때 투자를 주저했던 다른 사업가들과는 달리 홍콩 부동산을 사들였다. 결국 부동산값이 치솟으면서 그의 선견지명이 입증됐다. 그는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1970년대 후반 화교 출신으로 중국에 처음 들어간 외국 기업인 가운데 한 명이다. 당시 주위에선 “중국 공산당에 돈을 뜯길 수도 있다”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돈을 뜯겨도 결국 내 고향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라며 적극 투자에 나섰다.
포브스에 따르면 리 회장의 재산은 330억 달러(약 37조6200억 원)로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 부동산 엔터테인먼트의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그룹 회장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으며 19년째 홍콩 제1부자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동아일보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